무욕(無欲)에 대하여

2023. 11. 3. 21:38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무욕(無欲)에 대하여

 

세상 삶이란 마치 온갖 야생동물과 독사들이 우굴거리며 먹이를 찾아 다니는 무한하고 거대한 홍수 물결과 같습니다. 갈망,그리고 '내 것'이라는 느낌은 마치 인체에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악어가 한마리 물고기를 산산조각으로 찟어버라는 것과 같습니다.

욕망은 한 사람을 슬픔 쪽으로 끌고 가서 곤경에 빠뜨립니다.

 

에고는 한 사람을 낮은 세계로 던져 넣어, 거기서 그 사람을 익사시키는 악어와 같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그곳에서 탈출하거나 해방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욕망은 마치 손잡이를 풀지 않은 악어처럼 꽉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것은 증오가 일어날 때도 사라지지 않고, 자만심과 질투가 줄어들지 않을 때에,

이것은 환상에 빠지게 됩니다.

 

습관과 잠재된 욕망(習,바사나)은 마치 위험한 독을 내뿜는 혀를 가진 뱀이 목덜미 주위에 감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생활의 부담을 머리 속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시람은 "그 가정은 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물에 빠질 때 일지라도,자기 가정을 잊어버리지 않고,

오직 자기 가문에 대한 자긍심만을 내세웁니다.

사람은 망상의 어둠에 붙잡히게 됩니다.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도둑은 모든 것 중의 하나를 약탈하고, 에고는 유령처럼 문제를 일으킵니다.

대부분의 존재들은 소용돌이에 휩쓸려 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깊은 헌신의 느낌으로 신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신 자신이 홍수에 뛰어 들어 그들을 다른 해안가로 데려가는 반면에,

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자들은 그냥 홍수에 휩쓸려 버립니다.

 

신은 헌신에 굶주려 있습니다.

신은 자기를 숭배하는 사람을 보고 유혹되어,

헌신자를 위험 속에서 구출해주고 그를 보호해 줍니다.

세속적인 삶의 슬픔은 신을 구하고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사라집니다.

신에게 충정을 바치는 사람은 자신이 지닌 지복감의 축제를 즐깁니다.

그런 헌신적인 사람은 행운의 축복이 따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어떤 유형이든간에 신은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신은 모든 세상 존재들의 가장 깊은 의식 내면 속에 주재하는 아는 자입니다.

만일 사람이 기만적이라면, 신은 큰 기만자가 됩니다.

그런 신의 상호작용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떤 식으로든 신을 찬양하면, 같은 방법으로 신은 만족하게 해 줍니다.

만일 그 사람의 신앙이 조금 줄어들면 신은 멀어집니다.

거울 속의 반사 상(相)은 그 사람이 하는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 반사상(相)의 조절은 그 사람 자신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거울 속의 반사상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역시 눈이 큰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눈썹을 치켜올려 화난 표정을 지으면 반사상도 눈썹을 치켜 올립니다.

웃으면 반사상도 행복해 보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반영되듯, 신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신을 섬기는가에 따라, 신은 같은 방법으로 되돌려 줍니다.

'절대진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방법은

성도들의 회합에 참여함(다르샨)이 유지될 때 가장 높은 해탈상태로 이어집니다.

 

깊은 감정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게 정화되어 신과 하나가 되며,

그들이 스스로 행한 헌신의 힘이 그들의 조상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그들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믿음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홀로 그들의 삶을 성취한 것처럼,

비슈누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이들의 어머니들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 그 자신을 지키는 그들의 위대함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힘에 의해서, 그 사람은 슬픔이 해체되었습니다.

수많은 삶이 끝나고, 그 사람은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오직 인간의 몸만이 신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위대한 보물을 얻은 헌신자들은 복이 많습니다.

열매를 맺게 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윤회의 삶에서 얻은 가치인 것입니다.

 

생명 그 자체가 보석 상자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운 보석은 신의 찬양을 노래하는 형태(바바잔) 로 있습니다.

그런 찬양을 신에게 바치면 큰 기쁨을 얻습니다.

신에 헌신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부유함에 대해서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항상 만족하고 아무런 욕망도 없는 만큼 브라마와 다른 신들보다도 더 우월합니다.

 

세속적인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신의 의지만을 고수하는 헌신적인 신자들은 모든 방면에서 '천신(天神 :자가디사)'들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분별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세속생활일지라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반면에,학식을 많이 배운 바보들은 세속적 쾌락에 대한 탐욕 속에 사로잡힙니다.

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아의 지복 속에서 즐거워합니다.

 

그들의 풍요로움은 다른 사람들의 물질적인 부(富)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정신적 풍요로움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들은 행복해 하고,영원히 행복으로 남습니다.

세속적인 삶의 슬픔을 잊고 관능적인 만족을 누리는데 무관심하게 된 그들은,

지복 그 자체인 신과 일체가 되는 지복감을 누립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인 보물상자에서 이익을 얻어서 신에 대한 헌신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신에 대한 헌신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인간의 몸을 가졌을 때 주어진 절호의 찬스를 잃어버립니다

갑자기 값비싼 보물을 얻은 다음 얼마 안되는 소액권으로 교환할 때와 마찬가지로,

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삶은 낭비될 뿐입니다.

오랜 세월 가혹한 내핍생활을 겪어 온 사람은 그 결과 귀한 시금석을 받지만,

그러나 그는 불운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무지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역주: 시금석은 촉감으로만 쇠를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신화에 나오는 신비한 돌을 말함)

 

이처럼, 세속의 삶 속에 들어온 사람은 환영(幻影)의 그믈에 걸려들어서 살아가다가,

결국은 홀로 이 세상을 빈손으로 떠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영적인 상태를 성취한 것은 인체와의 적절한 연관성이 있어서 입니다.

다른 가난한 사람들은 생사윤회의 수뢰바퀴 속에 여전히 갇혀 있습니다.

 

인체를 가지고 있을 때에 성도와의 교제(다르샨)을 유지하여 자기 일생에서 서둘러 수행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전에 낮은 종(種)으로 출현하여 많은 고통을 겪어 온 바 있었습니다.

마치 열 군데 방향으로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는 새들처럼,

다음에 어떤 상황에 올지는 그 누구도 알거나 확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영광이나 성공도 똑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내나 자녀는 언제든지 떠나거나 그대와 헤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은 우리가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의 전체 생애도 역시 사라져 버립니다.

생명력이 소모되면,사람은 육체가 죽자 마자 곧 낮은 단계의 출생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개나 돼지와 같은 낮은 종(種)의 출생에서는 많은 재앙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높은 영적인 상태에 도달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과거에는 그대가 자궁 속에 거주하며 불행을 겪었고,

그 곳의 큰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행운을 받았습니다.

그대는 홀로 그곳에서 슬픔을 겪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대를 돌보아 줄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간 모습과 똑같이,

결국은 그대도 혼자 가야만 합니다.

 

어떤 어머니 또는 아버지, 형제, 자매, 또는 지지자,아내, 아들, 딸들이 그대와 함께 가겠습니까?

그대는 그들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친척들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대의 기쁨과 고통 속에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대의 집안살림과 성(姓)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그대는 왜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합니까?

그대의 모든 돈,식량, 재산은 앞으로 몽땅 사라질 것입니다.

 

그대의 집과 세속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결국 이런 것들은 모두 버리고 떠날 것인데,

왜 살아 있는 생(生) 동안에 이런 짐들을 짊어지고서, 걱정과 고생을 사서 합니까?

젊음과 영광, 기쁨과 축복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이 공허하고 환상의 속임수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순간에 한 사람이 "모든 것이 내것이다. 내것 !"이라고 말하면서 죽는다면,

이것은 마치 그것들이 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는 반복적으로 생(生)과 사(死)의 윤회를 수백만회 겪어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아내, 딸, 아들들이 몇명이나 있었겠습니까?

수백만명이 이르릅니다.

 

모두가 이전의 업행(業行,카르마와 연관됨)에 의해 맺어져서 함께 이 세상에 나왔지만,

동시대에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만난 사람들만 자기의 가족이라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보같은 믿음입니다!

육체일지라도 그대의 것이 아닌데, '그대의 것'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무슨 생각을 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신만이 그대의 것입니다.

그대는 강력한 믿음으로 신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위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비천한 사람들을 많이 섬겨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을 칭찬하고 아첨을 하는데 까지 기꺼히 나가야 할 것입니다.

위장에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을 위해 육체를 노예로 삼지만,

생명을 주신 신(神)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신(神)으로서 만물을 밤낯으로 염려하고,

그리고 신의 권한에 의해서 구름으로 비를 내리고,

바다가 그 한계 안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신의 권한 만으로 대지가 지지되고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자애로운 "신중의 신"은 그의 능력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를 자비로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그 분 입니다.

 

신, 주(主) 라마는 모든 사람의 진아입니다.

그를 제쳐두고 대신 관능적인 욕망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業)으로 인해 고통받는 천박하고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주 라마신을 제외하고 갈구하는 모든 것은 실망만 안겨줄 뿐입니다.

"내것, 내것," 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은 피로감만 쌓이게 됩니다.

 

관능적인 쾌락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피곤해지며,

즐거움의 대상을 얻지 못할 때는 매우 불안해 합니다.

신은 완전한 지복(至福, 아난다) 그 자체입니다.

그(신)를 잊어 버리고,관능적인 쾌락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열정에 빠져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사람이 어떻게 만족할 수가 있겠습니까?

 

행복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신(라마)을 사모하고,

슬픔의 뿌리인 다른 사람에 대한 애착을 포기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불타는 열정을 가질 때 그것은 슬픔을 일으키는 상처와 같습니다.

따라서 관능적인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면 행복해 집니다.

관능적인 쾌락으로부터 얻는 모든 행복은 결국 슬픔을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처음에는 기쁨을 주던 것이 결국 나중에는 슬픔을 가져다 주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낚시 갈고리에 꿰인 미끼를 삼킬 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이내 낚시줄이 잡아당겨져서 목구멍에 걸리게 되는 물고기와 같고,

또는 어떤 향기로운 풀에 홀려서 사냥꾼에게 붙잡힌 사슴과 같습니다.

이와 똑같이, 관능적인 쾌락을 쫓을 때도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지만,

결국 즐거웠던 것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신에 대한 열망만이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충실한 제자가 "어떻게 인생을 가치있게 보낼수 있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이 "어떻게 하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묻습니다.

제자가 묻습니다."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제가 그를 만날 수 있습니까? 세속적인 삶인 불행의 뿌리를 어떻게 하면 부수어 내버릴수 있겠습니까?

자비의 살아있는 상(相)인 스승님이,우리 무지한 중생이 신을 깨달아서 타락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나 같은 비참한 사람에게 치료법은 무엇입니까?"

 

스승이 이르기를,

"그대는 오로지 한 마음으로 신만을 숭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만족감이 자연스럽게 올 것이다."

제자가 묻습니다.

"신은 어떻게 숭배되어야 하며, 이 마음은 어디에 집중되어야 합니까? 신에 대한 헌신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부디 저에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승의 발을 붙잡으며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감정에 복받친 제자는 온 얼굴에 눈물이 뒤범벅이 되면서 목이 메여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제자의 범상치 않은 충성심과 깊은 감정을 보고, 너그러운 사드구루(참스승)가 감동했습니다.

"이제 다음 장의 각 절에서, '진아 지복(기쁨)'의 넘쳐흐름이 대폭 커지게 될 것이다."

 

                                                                                                 -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