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0. 21:30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마음은 항상 과거나 미래로 여행 중이지만,
(마음이 그 안에서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알려지며 그것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앎인 나 자신은 결코 마음과 함께 여행하지 않습니다.
앎은 시간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실, 앎은 시간을 알지도 못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몸과 마음을 아는 순수한 앎의 빛인 나는 몸이 태어날 때 태어나지 않으며,
몸이 자라고 나이 들 때 함깨 자라고 나이들지 않으며,
몸이 죽을 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몸/마음의 한계와 운명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런 발견을 일컬어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이 발견은 몸과 마음에 갑작스럽게 심오한 영향을 미칠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를 뒤집을 수 있으며,
우리는 잠시 세상에서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거나 관계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게 일어납니다.
이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는, 이 투명한, 사건이 아닌 깨어남은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에 적은 영향을 미칠수 있으며, 마음은 나중에야 달라지거나 변화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지금'에 대한 미묘한 거부를 매우 민감하게 알아차리십시오.
이렇게 거부할 때면 사람들은 늘 미래의 어떤 대상이나 상태를 추구하게 되지만,
여기에 있는 우리 중 다수가 추구하는 것은 이제 세상이 제공하는 세속적 대상이 아닙니다.
경험의 한가운데 다가갈수록 '지금'에 대한 거부는 점점 더 미묘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해롭지 않아 보이는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로 들어가는, 어떤 것을 특별히 추구하지는 않는,
하지만 '지금'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를 원하는 - - -
그것은 그저 아무 문제없는 공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공상의 한가운데에는 분리된 자아의 씨앗이 자라고 있으며,
이것은 나중에 갈등과 불행으로 자라게 됩니다.
해롭지 않아 보이는 이런 생각은 나중에 파괴적인 괴물로 자라날 귀여운 털복숭이 아기동물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미묘한 저항의 형태를 민감하게 알아차리십시오.
그것들은 종종 예컨대 지루함이나 기대감 같은 느낌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깨달음을 가져올 어떤 일이 미래에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기대하는 깨달음에 어떤 고상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지 분리된 자아가 자신을 몇십년 동안 지속시키는 많은 형태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분리된 자아가 깨달음의 추구라는 기치 아래 자신을 지속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저 무엇이 알려지든 그것을 아는 앎으로 존재하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알게 하는 그 앎의 존재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경험의 전면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것이 자신임을 알면서 그것으로 존재하십시오.
그것이 첫째 단계입니다.
다음에는 우리의 본질인 순수한 앎이 우리가 아는 대상의 한계와 운명을 공유하지 않음을 갑자기 또는 점차 발견하십시오. 이것이 둘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셋째 단계는, 끝이 없는 단계인데, 경험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이해와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늘 현존하며 한계없는 순수한 빛이며, 그러므로 이 순수한 앎은 자기 자신 외에 어떤 것도 알거나 만나지 않는다는 경험적인 이해와 일(햇빛)의 변형이듯이,
경험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것도 사실은 똑같은 순수한 앎의 변형입니다.
* * * * *
"나는 어떤 것이다"는 경험의 실상을 무시하거나 간파하는 무지의 입장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는 지혜나 이해의 입장이며,
우리의 참된 자기가 영원하고 무한한 앎임을 (자기 자신이 그러함을) 깨닫는 중간 단계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다"는 사랑 또는 아름다움의 입장이며,
우리는 나 자신인 이 '아무 것도 아님'이 모든 것의 궁극의 실재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그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종교와 영적 전통에서 말하는 궁극의 깨달음입니다.
"아트만은 브라흐만과 같다" 한정된 자아로 보이는 아트만은
우주의 궁극적 실제인 브라만과 같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나 자신인 이 "어떤 것도 아님"
즉 니르바나(열반)는 모든 현상의 총합인 삼사라(세상)과 같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색(色)이 공(空)이고, 공이 색이다)"
나의 본성인 공(空)은 모든 가득한 경험을 이루는 실체다.
모든 위대한 종교와 영적 전통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 경험적 이해를 가리키며,
각각은 우리에게 스스로 깨닫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이런 이해는 누구나 열려 있으며,
모든 경험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언제나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로 그러함을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루퍼드 스파이라 지음, 김인숙, 김윤 옮김 <순수한 앎의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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