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스 구나(세속적 활동성)

2023. 9. 15. 21:38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세속적 활동성(라자스 구나)

 

기본적으로, 인체는 세 가지 속성(세 가지 구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속성들은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라고 불립니다.

그 중에서 사트바가 가장 좋은 속성입니다.

 

사람이 신에 대한 헌신으로 바뀌는 것은 사트바 구나(순수성, 덕성) 때문입니다.

마음이 속세적인 관심사로 자꾸 되돌아오는 것은 라자스 구나(활동성)에 의해서입니다.

인간 존재 속에서 타락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타마스 구나(무지) 에 의해서입니다. ​

 

이들 세 가지 속성(구나)은 각각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첫번째는 오염되지 않았거나 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순수함입니다..

두번째는 더렵혀지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들이 명확하게 이해되어야 할 것들 입니다.

 

순수성의 징표와 오염된 속성에 대하여 주의 깊게 듣고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순수성(사트바)은 영적인 삶(파라마트마,진아)의 본질이며,

오염된 속성은 세속적인 삶의 본질입니다. ​

 

세속적인 삶에 사로잡힌 사람은 세 가지 구나(사트바, 라자스,타마스)에 지배받는 육체 속에 자기 자신을 자리잡습니다.

세 가지 구나 중에서 하나가 좀 더 지배적인 경우에는, 마치 다른 두 가지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삶은 사트바,라자스,타마스 세 가지 속성에 지배되어 활동합니다.

이제,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라자스,즉 세속성(활동성)에 지배되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들어 보십시오,

주의깊게 듣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듣기 바랍니다.

" 여기는 내집이고, 내 가족이다. 신이 어디서 온다는 것인가?"라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이와 같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속성에 지배적으로 물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머니,아버지,아내,아들,며느리,딸- -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걱정할 때,

이것이 세속적인 삶, 즉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맛있는 음식만을 먹을려고 한다든가, 고급스런 옷만을 입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탐낸다든가, 끊임없이 욕망을 느낄 때에,

이것은 세속적인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종교,자선,신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또는 명상 걑은 것 등에 대하여 관심이 전혀 없을 때,

그리고 무엇이 욿고 그른 것인지 묻는 것조차 관심이 없다면,

이것이 세속적인 라자스 성질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전(神殿)이나 역사적 고적에 대한 귀중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님들을 안내하는 대신에 범죄를 저지른다든가 하면, 이것은 세속적인 성질(라자스 구나)입니다.

어떤 사람이 재물과 곡식을 저장하는데만 혈안이 되고, 마음이 항상 돈에만 탐욕을 부릴 때,

이러한 구두쇠 생활은 세속적인 성질(라자스 구나)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젋고, 아름답고, 튼튼하고, 영리하며,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

라고 말하 때, 이것이 세속적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마을, 집, 그리고 자기 재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

마음에 그런 애착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세속적인 라자스 성질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재산을 망치게 하려고 생각할 때, 그러면서 그의 재산을 손상없이 그대로 남겨두더라도,

이것은 세속적인 라자스 성질때문입니다.

생각 속에서 나오는 배반, 질투, 증오, 욕망은 모두가 세속성, 즉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 아내에 대한 애착, 항상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길 좋아하는 것,

이것은 모두가 세속적인 라자스성질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시간이 지나서 자기 생각 속에서, 친구와 가족에 대하서 걱정하는 것을 알 때에,

그런 생각이 나중에 일어나는 것은 라자스의 활동성입니다.

 

이 속세에서는 많은 고난과 마주칩니다.

이것을 어떻게 끝낼 수 있습니까?

이것은 어떤 사람이 라자스 활동성으로부터 일어나는 재난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에

비로소 이것을 끝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기억되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고통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고 가끔 느끼는 그런 슬픔은, 세속적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성공한 것을 볼 때, 마음에 질투와 욕망이 생기고,

희망과 슬픔으로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데, 이것도 라자스 속성입니다.

눈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이 이끌리게 될 때,

그리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슬픔만 남을 때,

이 모든 것은 세속적 라자스 속성에 의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이 오락, 또는 음악, 낭만적인 노래로 가득찰 때, 또는 감정에 푹 빠질 때,

이것은 라자스의 성질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항상 장난하며 놀리고, 농담하고, 비판한다거나,

항상 그 결과에 논란의 여지를 만들어 대화를 이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은,

세속적인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나태함의 강한 느낌이 있을 때, 혹은 여러가지 다른 게임과 오락과 쾌락의 유형에 관심을 가질 때,

라자스 속성의 혼동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양한 배역으로 처신할 때, 연극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게임으로 많은 돈을 소비할 때,

이것은 세속적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주 술독에 빠져 있기가 일쑤고, 항상 장난기를 즐기거나, 혹은 장난꾸러기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것은 마음 속의 라자스 속성의 효과 때문입니다.

무엇을 훔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리고 남의 단점에 대해서 흉보고 싶을 때,

또는 마음이 매일의 자기 임무에 묶여 있을 때, 이것은 세속적인 라자스 속성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신을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할 때, 그리고 단순히 입에 풀칠 하기 위해서만 일 할 때,

혹은 가족생활에 정성들여 애착을 갖고 있을 때, 이것이 세속적 라자스 구나 때문입니다.

 

단 것을 먹는 것을 너무 밝히던가, 혹은 몸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영양섭취를 위해 항상 관심을 쓴다든가,

그리고 단 하루라도 금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우. 이것은 라자스 성품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취미생활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며, 예술과 전시회에 몰두하거나,

그러면서 종교적 헌신이나 명상적인 초연함에 대해서는 좋아하지 않을 때,

이것이 다 세속적 속성 때문입니다.

절대진아(파라마트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단순히 대상적인 허상만 숭배하며,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일으키는 이 힘을 라자스 구나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세속적 속성", 즉 라자스 구나입니다.

그것은 세속생활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탄생과 죽음을 부여해 줍니다.

이 라자스 성품의 힘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극심한 슬픔에 고통을 겪는 원인이 바로 그것임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바로, 경향성(바사나)과 잠재된 욕망과 세속생활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라자스 구나에 대한 설명입니다.

 

치료법이 무엇일까요?

만일 세속적인 삶에 대하여 집착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치료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스승의 말을 따라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헌신은, 신선한 잎과 꽃, 과일 ,물로 헌물을 만들고, 몸과 말,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바쳐야 합니다.

사람은 신에게 자기 마음을 바쳐야 하고, 자기 일생을 수행으로 완수해야 합니다. .

그대의 능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자비를 베풀고, 신에게 의지하시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신을 생각하십시오,

시작 속에도, 그리고 끝 속에도, 오직 하나의 신(神)만이 있습니다.

그 중간에서 나온 것이 환상, 또는 마야(마야라는 뜻은 '없는 것"이라는 의미) 입니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깊은 감정이 충만하도록 하십시오.

 

​이와 같은 것이 세속적 성품인 라자스 구나의 힘입니다.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지금, 해탈 열망자가 지니고 있는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라자스 성품에 대해 설명하겠으니

잘 들어 보시십요.

순수한 형태의 라자스의 식별징표는,

그것이 모든 헌신적인 활동의 완전성이며 기원인, <사트바 구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세속적 성품" 또는 라자스 구나를 설명해 보았습니다.

독자들은 마음 속에서 이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무지의 성품" 인 '타마스 구나'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