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진아(파라브라만)에 대하여

2023. 9. 11. 22:10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순수 브라만에 대한 이야기

 

만약 이것을 붙잡으려고 한다면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것을 포기하려고 한다면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파라브라만은 항상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것은 사방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외면하려 해도 항상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도 그것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서 걸어갈 때, 그 공간은 늘 그대로 입니다.

우리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공간은 항상 우리 앞에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돌아보든 주변 공간은 사방으로 널려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공간 밖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명체들은 사방팔방을 바라보는데, 그들을 마주보고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낮의 태양처럼 모든 생명존재들의 머리 위에 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오직 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 직유가 파라브라만에게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예는 단지 비유를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많은 순례지를 방문하는데, 순례자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많은 고생을 겪습니다.

파라브라만을 실현하기 위해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생명 존재가 한 자리에 앉아있든,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든,

파라브라만(절대진아,무아)은 항상 그 생명존재와 함께 있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아 다니고 그 주위에 하늘만 있는 것처럼,

파라브라만은 모든 곳에 편재해 있습니다.

 

파라브라만은 텅 비어있지만, 사방에 빽빽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끝나는 모든 것의 끝이며, 항상 모든 사람에게 존재합니다.

 

모든 가시적인 창조물은 브라만에 의해 외적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것의 순수성을 비유해서 무엇이 사용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비슈누, 시바, 하늘, 인드라 왕국, 14세계,

그리고 신성한 뱀 셰샤의 영역인 지하세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카시에서 라메쉬바르(이곳은 신성한 장소이지만, 권능과 진아를 위한 은유이기도 함)까지,

그것은 제한 없이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모든 외형을 넘어선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끝이 없습니다.

 

파라브라만은 단일하며, 혼자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모든 것에 스며듭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과 접촉하고, 모든 장소에 존재합니다.

 

파라브라만은 비에 젖지도 않고, 진흙에 더럽려지지도 않으며,

홍수에 떠내려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항상 앞, 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있습니다.

높든 낮든 모든 존재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공간이라는 그릇은 가득 차 있지만 결코 넘치지 않습니다.

상상을 초월하여 곳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공간은 모든 것에 무관심한 하나의 물체이며,그 안에서 나타나는 보이는 형상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파라브라만은 그 안에 외형이나 지각할 수 있는 대상들이 없다는 점에서

공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궁극의 체험을 한 성자와 성현, 신과 악마, 인간에게 파라브라만은

모두를 위한 안식과 평안의 장소임을 이해하십시오.

 

파라브라만의 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것,

어디로 갈 수 있으며,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거칠지도 미세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물질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육신과 우주가 해체될 때, 파라브라만은 어떤 모습도 없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 영원까지는 빈 공간과 같습니다.

 

파라브라만이 모든 곳에 펼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은 눈에 보이는 피조물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피조물이 없다면, 어떻게 그것이 어떤 것에 스며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파라브라만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없으며, 생각으로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 보이지 않는 실재는 분별의 힘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순수한 본질은 듣는 가운데 있으며, 명상을 통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궁극의 지혜를 얻으면 쉽게 "무심(無心)"이 됩니다.

 

무속성(無屬性)의 움직임없는 실재(實在)가 내면에서 확고하게 깨달아 질 때에,

영성수행의 열매를 얻은 것이고, 세속적 삶의 성취를 이룬 것입니다.

 

지금까지 환상의 성질과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분석했습니다.

목표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영적인 수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꿈에서 보던 것은 무엇이든지 깨어나자마자 사라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이처럼 분별의 힘으로 이해하십시오.

가르침(말)은 실제적인 체험을 얻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 체험적 이해에서 탄생과 죽음의 순환은 무(無)로 환원됩니다.

 

라마 경은 헌신자들이 함께 찬양하여 그가 그들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었고,

이들 문장들은 그의 권능에 의해 '다스보드'라는 이 책자의 글 형태로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 다스보드(Dasbodh)의 전체 20장을 듣고 연구함으로써

여기에 담긴 내용을 성찰하는 사람은 "신성한 이해"(Paramartha)를 얻습니다.

 

다스보드의 전체 20장과 200절을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함으로써

지성을 초월한 비범한 깨달음의 지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찬양하는 풍습이 있는데, 본문 내용만 찬양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제시된 증거를 스스로 검증하고, 이 책에 설명된 내용을 체험해야 합니다.

 

몸은 오대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것의 행위자는 진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적인 작품이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인데,

어떻게 이 시적인 능력이 인간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8개의 몸을 모두 버리고, 원소들이 하나씩 다른 것으로 녹아내리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탐구와 성찰의 활동이 설명되었습니다.

불필요하게 환상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이제 신(하나님)은 체계적인 순서로 모든 것을 단계별로 설명하셨습니다. (20-20)

 

                                                              <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DASBOD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