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8. 23:41ㆍ성인들 가르침/현대선지식들법문
조선 후기 영조 때 채영(采英)이라는 스님이 쓴 <불조원류(佛祖源流)>라는 책이 있습니다.
과거 칠불에서부터 이어온 불교의 법맥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용성진종 조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68세의 법손이며,
그 제자인 고암상언화상은 69세, 고암 노스님의 제자인 정호성준 선사는 70세,
그리고 나는 71세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사자상승의 법맥은 무슨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佛法)은 심법(心法)이라 마음과 마음으로 전합니다.
누구라도 불조(佛祖)의 마음을 잇는다면 그가 적손(嫡孫)이요,
부처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잇지 못하면 방계(傍系)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마음을 잇는 적손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 산중의 책임을 맡아 대중을 통리(統理)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지(住持)라고 합니다.
주지는 예로부터 부처님의 적손들이 맡아온 중요한 자리로,
다른 말로 하면 그 절을 지키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직책을 맡아도 잘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자리를 못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심(佛心)을 잘 쓰는 사람과 잘못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지로서 그 마음을 바르게 쓰고 불조의 적손이 되는가.
예날 중국의 송대에 오조법연(五祖法連)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문하에 이른바 '삼불(三佛)로 불리는 불과극근(佛果克勤)을 비롯하여
불안청원(佛眼淸遠), 불감혜근(佛鑑慧勤)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법연선사의 가르침 가운데 '법연사계(法演四戒)'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종의 일화를 뫃아놓은 <종문무고(宗門武庫)>라는 책에 의하면
불감혜간이 어느 날 서주(舒州)에 있는 태평사(太平寺)의 주지를 맡아 하직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 법연선사는 스승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경계할 점을 일러주었습니다.
勢不可使盡 권세를 다 쓰지 말라.
福不可受盡 복을 다 받지 말라.
珪矩不可行盡 모범을 다 행하지 말라.
好語不可說盡 좋은 말을 다 하지 말라.
첫째 '권세를 다 쓰지 말라'는 것은 높은 자리, 책임있는 자리에 앉는 사람일수록 뒷날을 조심해서 권세를 아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세란 어떤 자리에 주어지는 권력과 힘을 말합니다.
어느 절의 주지는 주지로서, 사장은 사장으로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심지어는 초등학교 반장이나 마을 동장에게도 직책에 따른 권한과 힘이 부여되지요.
그런데 이 권력이라는 것의 속성을 보면 한마디로 '남을 불편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무엇인가 시켜야 하므로 자연 남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이때 그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게 되면 반드시 부림을 받는 사람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행사하되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정당한 권력이라도 아껴가며 행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국의 조짐이 일어납니다.
둘째 '복을 다 받지 말라'는 말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재력을 다 쓰면 뒷날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북이라는 것은 마치 창고에 쌓아놓은 보물과 같은 것으로, 창고에 넣어둔 보물은 꺼내쓰고 채우지 않으면, 아무리 무진장한 재화가 있더라도 이내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과소비를 일삼으면 질시와 바난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소비는 그 끝이 좋지 않습니다.
'삼대가는 부자없고 삼대가는 가난뱅이 없다' 는 말은 복이란 돌고도는 것임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복 많은 사람이 복을 지키는 것은 근검과 절약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형편이 좋다고 낭비하면 만석꾼도 금방 망하고 맙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고 했듯, 복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다하면 구렁텅이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모범을 다 행하지 말라'라는 말은 너무 잘난 척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 어른이 되는 사람이 남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묘한 것이어서 너무 완벽한 사람은 존경은 받을지 몰라도 사람이 따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모범생처럼 솔선수범을 강조하다모면 그로 인해 사람들이 도리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다 허술한 구석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어느정도 나태해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 너무 빈틈없이 행동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부담을 느낍니다.
심한 경우는 무서워서 옆에 가기도 싫어집니다.
그 앞에 가서 내 약점만 드러난다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딘가 빈틈도 보이고 적당한 약점이 있어야지 바늘로 찔러 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으면 숨이 막힙니다. 그러므로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도량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넷째, '좋은 말을 다 말하지 말라'라는 말은 말을 아껴서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과 교훈이 되는 말이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귀찮고 잔소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아무리 훌륭한 금언이라도 지나치거나 너무 세밀하면 그 맛이 반감됩니다.
교훈적인 말이라는 것은 여운이 남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세밀하면 잔소리로 들리고, 잔소리는 듣는 사람을 짜증스럽게 할 뿐이지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지도자들이 자기 생각을 다 말하고, 좋은 말이라고 다 가르치려고 하면
그 밑에서는 아무도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릇에 물을 부어도 7할 정도만 부어야 넘치지 않습니다.
법연스님이 말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내용은 간단하되,
그 뜻은 바다보다 깊고 태산보다 높습니다.
혼자 잘났다고 으스대지 말고 대중과 함께 가려고 할 때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실제로 불감혜근 선사는 이 잠계를 항시 잊지 않고 잘 지킴으로써
'벼룩 서 말은 몰고 가도 중 셋은 함께 데려가기 어렵다'는 총림의 주지를 잘 수행했다고 합니다.
참고할 만합니다.
오늘 취임하는 주지도 이 가르침을 오래 잊지 말고 주지 소임을 다해서
산문을 크게 일으키기 바랍니다.
-신흥사 주지 취임식 축하 법어(2009년 6월 23일)
-설악무산의 방할(棒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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