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6. 21:54ㆍ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질문자 : 특정한 믿음들과 느낌들을 다루는 것이 행여 쓸모가 있습니까?
"누가 이것을 믿고 있는가?" 또는 " 누가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과 반대로,
이런 믿음들과 느낌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 말입니다. 특정한 믿음들을 다루는 것이
행여 실제로 소용이 있을까요?
슈리 푼자 : 당신의 믿음들은 모두 "나는 행위자다"라는 관념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 관념이 있는 한, 당신은 믿음들과 느낌들을 가질 것입니다.
이 행위자는 자아입니다. 자아는 "나는 이것을 하고 있어, 나는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개체입니다. 일어나는 첫번째 믿음은 "나는 몸이야"라는 관념입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믿음, 하나의 관념일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자각이야."라고 생각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처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모든 사람은 "나는 몸이야." 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이 몸이라는 관념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나'라고 말할 때, 당신은 언제나 이 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각을 일컷는 것이 아니지요.
"나는 그것을 했어. 나는 이것을 하고 있어. 나는 그것을 할거야"라고 말할 때, 당신은 몸의 활동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 이 사람은 내 친척이야" 또는 " 이 사람은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때, 이것은 당신이 생각하고 믿는 어떤것 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들은, 자신이 몸이라거나 몸 안에 있다는 이 확신을 그것들의 뿌리로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이 믿음이 자리 잡으면, 그것이 도전받지 않을 경우에, 당신은 이 거짓된 관념을 자신의 토대로 삼아 살고 분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입니다.
당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이런 '특정한 믿음들'을 조사해 들어가기 위한 근거로서 당신이 사용하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이 무지입니다.
이 모든 동일시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은 무지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책들과 모든 수뜨라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무지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수행은 똑같은 이들 무지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일단 깨달으면, "나는 자각이다. 나는 입고 있는 옷들이 아니다." 라고 올바로 동일시하기만 하면, 그때는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그냥 붕괴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나 다른 어떤 옷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당신은 "나는 자각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당신이 몸이 된다면, 당신은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이 잘못된 동일시는 엄청난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맞습니다.
"나는 몸이야" 라는 믿음이 당신의 생각들과 행위들의 근거일 때 현상계가 일어나며,
그리고 그것이 거기 있는 동안, 그것은 당신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지옥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천국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신들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종교들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몸이라고 생각하는 한, 이 모든 것은 당신에게 참된 것이요, 실제일 것입니다.
이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아를 탐구의 주제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들을 조사하고 분석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자아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우주 전체를 만들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몸이야"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게 "나는 의식이야"라고 말하십시오.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 곳으로부터 삶을 살려고 하는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자아로부터인지 의식으로부터인지 말입니다.
당신이 삶에서 하는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필요하지만,
당신은 의식에 무지합니다.
당신은 행위자인 자아에게 맡기며,
또 자아가 당신이 하기로 결심하는 모든 행위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지입니다.
그것은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모든 그림들과의 동일시입니다.
모든 그림들이 투사되는 바탕인 스크린과의 동일시가 아니지요.
당신은 스크린 위에 투사되는 그림들을 보면서 "이것이 나야. 이것이 나인 존재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크린 그 자체, 즉 의식은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모든 그림을 지탱해주는 토대입니다.
당신은 그 스크린이지, 그 위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이미지들이 아닙니다.
스크린은 그 위에 나타나는 모든 이미지들에 의해 절대 접촉하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이미지가 나야." 라고 말함으로써 이런 그림들 가운데 하나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일단 이렇게 하면 당신은 그 그림이 어떤 드라마에 관련될 때마다 고통을 겪습니다.
전쟁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맨스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춤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몸, 즉 스크린 위에 투사되고 있는 이런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스크린에 투사된 그림자(영상)와 같은 몸이 겪고 있는 모든 영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것이지만, 자신이 스크린, 즉 그 안에 나타나는 모든 그림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각이라는 것을 알 때, 당신은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자각인 빛은 이런 그림들 가운데 어느 것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거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각에게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런 이미지들의 행위들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것들이 거기에 전혀 있지않다 해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명상할 수도 있지만, 빛은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빛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 잘수도 있지만, 빛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 빛, 이 의식은 내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지들이 나타나게 만들며 또한 그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게도 하는 힘이지만,
당신은 이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든 것들에 관계하고 있는 몸이야, 나는 이 몸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당사자야." 라는 이 완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양의 빛을 통해 서로를 보지만, 서로를 바라보면서 상호작용하기에 너무 바빠서 태양이 있기 때문에만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각은 이 모든 현상계의 드라마가 일어나는 배경으로서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또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신경써서 알아보지 않습니다.
이 자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과 우리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대신에,
우리는 그것을 악용하여, 몸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몸 안에 살고 있다고 우리가 내세우는 상상의 '나'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 가공의 '나'로 하여금 당신의 인생을 떠맡게 할 때,
당신은 몸이 행하는 모든 행위들을 책임져야 할 것이며,
당신이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모든 행위들의 결과를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 자신의 어깨 위에 얹힐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생에서 생으로 짊어져야 할 커다란 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생기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빛, 이 자각이라는 것,
그리고 당신의 모든 행위들을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빛이라는 것을 알고 이해한다면,
당신은 몸이 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한 그 어떤 개인적인 책임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의식이 늘 그것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그냥 의식의 도구가 되십시오.
당신의 몸으로 하여금 의식의 지시에 따라 행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다만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몸과 같은 그 무엇도 '내 것'으로 내세우지 않고 의식 속에서, 의식으로서 산다면.
당신은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유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바탕이 되는 의식이지, 그것 안에서 현현하는 사소한 드라마들의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아주 잘, 아주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고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오거나 떠날 때, 당신은 괴롭거나 들뜨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바탕의 의식인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속에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 슈지 푼자 법문집 <빠빠지와의 삿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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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돌양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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