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기초교리 공부] 6.멸성제-1

2023. 6. 19. 22:48카테고리 없음

 

(1) 죽음과 해탈의 차이

 

산스크리트어로 해탈은 ‘moksa’, 빠알리어로 열반은 ‘Nibbna’의 번역어이다.

불교에서는 열반, 힌두교에서는 해탈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해탈은 해탈하는 자, 즉 진아(眞我)와 그 진아에 결박된 몸을 전제로 하고, 몸을 해탈의 장애로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몸을 벗어난 사후에 얻어지게 된다.

그에 반해 열반은 탐(貪),진(嗔), 치(癡)라는 3독의 숲(vana)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하며, 생전에도 얻을 수 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열반은 불교적 개념이고 해탈은 힌두교적 개념인 것이다.

그러나 해탈은 후기 불교 역사에서 열반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해탈에는 선정 해탈과 지혜 해탈이 있다.

선정 해탈은 당면한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차가 있어서 괴롭다면 차를 버리고, 가족이 있어서 괴롭다면 가족을 떠나고, 친구들 때문에 괴롭다면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것이다.

지혜 해탈은 차가 있어도,가족이 있어도,친구가 있어도, 마음만 잘다스리면 고통의 요소들을 나와 대상을 위한 행복의 수단이나 계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 혹은 마음 씀씀이 등과 관련되어 있다.

즉 외부의 현상은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자기 안의 생각을 다스려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지혜 해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과 열반에는 유사성이 있는가. 죽음처럼 사람을 충격에 빠트리는 것은 없다.

죽음은 냉엄한 현실이다. 회피하고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아도 반드시 따라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이세상이 파괴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과 같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향해 내달린다.

죽음의 고통중 가장 최악의 고통은 나 자신의 죽음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통채로, 즉 나의 몸과 마음,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대상들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다.

지인들의 죽음은 나의 죽음에 비하면 준비에 불과하다.

 

죽음은 몸의 고향, 열반은 마음의 고향이다.

궁극에 몸이 이르러야 할 곳은 바로 죽음이고, 마음이 이르러야 할 곳은 열반이다.

죽음은 소유로부터의 강제적 박탈, 열반은 자발적 박탈과 포기이다.

단돈 천원이라도 보시하는 것과 준비되지 않은 채 강제로 뺏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열반과 죽음은 다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 옳고 그름에 대한 집착, 그리고 여러 부조화된, 잘못된 욕망으로부터의 죽음,

이것이 바로 열반이다.

 

병듦과 늙음, 죽음의 고통은 모두 태어남이 근본 원인이다.

인간관계의 고통은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데서 오고,

마음의 고통은 사랑과 미움에 대한 기억에서 온다.

태어나는 것 역시 사랑과 미움이 원인이 되어 행위를 일으키고,

그 행위의 결과가 나의 현실, 삶 또는 태어남이 되는 것이다.

 

해탈은 바로 이 삶의 괴로움, 인간관계의 괴로움,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의 원인인 갈애 즉 욕애(欲愛)와 유애(有愛), 비유애(非有愛)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다시 말해 ‘나’와 ‘내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을 바로 ‘해탈’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한다면, 건강한 몸, 조화로운 인간관계, 번뇌에 물들지 않은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

 

- 등현스님 저 [초기 불교에서 선까지, 불교의 진수] 불광출판사-

저자 등현스님 :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새벽녁 한강줄기 전경(2023..6.19. 새벽 아차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