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3. 22:20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상상(想像)의 소멸
연사(演士)가 영적인 담론을 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질문을 해도 짜증을 내지 않아야 하며,
가르침의 일관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강의를 듣고 있던 사람이 의심을 제기하면 즉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당신이 이전에 말했던 내용과 모순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만약 기존에 말한 내용과 모순되는 내용이 있으면,
강의한 모든 내용이 터무니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많은 어려운 상황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영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하고 싶지만 스스로 수영을 잘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출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 듣는 사람의 의심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연사가 모든 것이 어떻게 파괴되는 지에 대하여 이야기 한 다음,
그 다음에 다시 모든 것은 본질이라고 말하면, 이런 내용은 청중들이 혼동을 일으키게 되고,
듣는 사람이 환상을 넘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연사가 강연에서 어떤 미묘한 용어를 사용하든 간에,
청자들이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연사가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연사는 브라만, 원초적 환상, 8중 현시, 시바샥티, 여섯가지 속성을 가진 신,
그리고 구나(속성)의 평형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 신의 반 남성,반 여성의 상태,
그리고 세 구나(속성)을 발생시키는 구나의 기본적인 미묘한 진동 움직임의 초기 상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베다 경전에 제시된 1차 전제와 그것이 유용하다고 간주되는 정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미묘한 개념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현자입니다.
말을 잘하는 연사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지나치게 구구절절의 긴 해설에 도취되지 않습니다.
그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을 경험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연사는 한 순간에 오직 순수한 브라만 만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나서,
"모든 것이 브라만이다"라고 말한 다음에, 브라만이 보는 자요, 주시자이며,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할 때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움직이지 않는 브라만 자체가 움직이고 보이는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하거나,
움직이는 창조물이 브라만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많은 상황에서 명확한 결론없이 혼란과 논쟁만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모두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고유한 본성을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한 생명 에너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불필요하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해결할 수 없는 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것은 많은 결론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많은 혼란을 야기합니다.
만약 그가, '환상이 파라브라만이고, 파라브라만이 망상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의 언설을 통해 그의 지식의 망상적 본질을 보여 줄 뿐입니다.
만약 억지로 경전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설명을 하고 나서,
그 말에 대해 질문을 받게되면 마음이 극도로 동요하게 됩니다.
스스로 지식인이라 자처하면서 그 대가로 무슨 보답을 바라는 사람은 참으로 가련하며 진리는 말할 줄도 모릅니다. 훌륭한 연사는 무엇이 본질이며, 무엇인 비본질인지에 대해 결정적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실제 경험이 없는 사람의 상태는
어떤 것에 대한 치료제가 아닌, 엉뚱한 다른 약에 대해 칭찬하는 의사와 같습니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분별을 논의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본래 면목을 탐구하거나 성찰함이 없는 곳에는 무지의 어둠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브라만일 뿐이라고 하고,
덕행과 악행, 천국과 지옥, 분별과 분별의 결여 등을 모두 똑 같은 것이라고 말할 때에,
이런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듣고 있는 사람은 덕(德)과 부덕(不德)이 동등하다고 믿게 되며.
확신과 상상은 모두 브라만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믿음에 이끌리게 됩니다.
단 맛의 모든 것이 설탕일 뿐인데, 설탕 단맛의 본질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고 할 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까?
이와 비슷하게, 본질과 비본질을 하나라고 할 때, 무지각과 분별심의 결여만이 강화됩니다.
거기에서 명상하고 탐구할 곳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존귀한 자와 비천한 자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면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재물에 도취되어 그것들을 탐닉하는 사람들은 무의미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이와 같이 무지의 망상에 빠진 자는 속아서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에게는 덕인과 악인이 하나이며 동일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관능적 쾌락에 대한 고삐 풀린 방종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구별은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아무도 이 법을 버리거나 어긴다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입에 넣어야 할 음식 한 줌도 항문 입구에는 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감각기관에 적합한 대상은 오직 그 기관에서만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자연적인 질서입니다. 이 규칙은 어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환상의 속임수와 망상입니다.
실제 경험없이 말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주장일 뿐입니다.
미쳐서 헛소리만 하는 하인의 말처럼 무의미하게 주절거리는 것입니다.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말씀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십시요.
그런 사람의 말을 들음으로써 즉시 진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무엇이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은 그의 걸음걸이 자세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실체가 없는 말은 토사물처럼 내버려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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