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화두와 선승의 화두

2023. 5. 15. 22:20성인들 가르침/현대선지식들법문

 

지난 2013년 3월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PORTUNE)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을 선정했는데, 그중 1위에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을 올려놓았답니다.

이분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관용을 추구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회를 강조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느닷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 분의 화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종교인의 생명은 화두입니다.

우리 스님(선사)들은 서로 안부를 물을 때 '화두가 성성합니까?' '화두가 깨어 있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화두에는 활구(活句)가 있고 사구(死句)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이분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 분의 살아 있는 화두, 즉 활구에서 나옵니다.

 

그 분은 한국 방문시에 빡빡한 일정 속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네 차례나 세월호 유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했고, 희망을 잃지 말라며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습니다.

지난 3월 로마 교황청을 찾은 염수경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 등 한국 천주교 주교단 일행 13명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황의 첫 물음이 세월호 문제와 유족들의 안부였다고 합니다.

사실상 세월호가 방한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푸란치스코 교황 이분의 화두는 살아 있는 오늘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결제 때 우리 스님들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알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다 천년 전 중국 선사들의 산중 문답이니까 말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화두와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시간 상으로 천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프라체스코 교황의 화두는 오늘의 문제가 화두인데,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천년 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道談)입니다.

 

불자들에게 존경받는 어느 노스님은 내가 어릴 때 저에게 '화두 들고 참선공부하다가 죽어라'라고 당부했습니다. 빨리 깨달아 깨달음의 삶을 살고자 참선하는 것이지 참선하다 죽으려고 참선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이 분이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지금 영적 치매에 걸리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 보고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한국에는 깨달은 선승들이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럽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화두를 타파하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왜 존재합니까? 중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필요 없습니다.

중생이 없는데 부처가 왜 필요합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이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 하듯이 중생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오늘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들 그 우비고뇌(憂悲苦惱)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승들은 아직도 천년 전 중국선사들의 도담에 머물러 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화두는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산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육도만행이라고 합니다.

육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보시바라밀, 지계바라밀, 인욕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을 말합니다. 만행(萬行)이란 이 육도바라밀을 실천, 봉행하는 만선(萬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육도만행, 육바라밀은 모두 실천하는 만선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해제라고 하면 방학했다는 기분이 드는데 오리혀 그 반대입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금족수행(禁足修行)을 했다면 이제는 금족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만행을 통해 다 보여주어야 해요. 만행의 길에서 육바라밀을 다 실천해야 합니다.

육바라밀이 만행이 되고 만행이 육바라밀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선승들의 깨달음의 삶은 이 육도만행 속에 다 있어요.

이 육도만행이 선승들의 깨달음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를 붙들고 참선만 해서는 부처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해서 부처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육도만행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육도만행이 깨달음의 삶이고 장부가 살아가는 수칙이고, 활로입니다.

 

나는 공부 잘하는 스님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면 어떤 스님들이 공부 잘하는 스님인가,

부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이것을 한 번 돌아 보시라고 내가 오늘 교황님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하늘에는 손바닥 하나 손가락은 다 문들어지고

이목구비도 없는 얼굴을 가리고서

흘리는 웃음기마저 걷어지르고 있는거다

                                    - 뱃사람의 말 -

[2015년 하안거 해제법어 (백담사,2015. 8월28일)]

 

- 김병두, 홍사성 엮음 <설악무산의 방할> 인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