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기초교리 공부] 5.제법무아(諸法無我)

2023. 5. 9. 22:03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나에 대한 집착인 아집(我執)이 사라지면 나의 것 즉 아소(我所)에 대한 집착인 법집(法執)도 모두 사라져 모든 고통의 원인이 사라져 버린다.

‘나’가 없는데 '나의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없앨 것인가?

이것이 바로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핵심이며,

불교의 모든 종파가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징 중요한 질문은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이다.

불교는 무아(無我)를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 이유는 '나'라는 것은 '나'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감각기관에서 받아들인 정보들, 그 정보들을 느끼는 느낌들, 그 느낌에 대한 생각함,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욕망들이다.

식(識), 수(受), 상(想),행(行)의 정신적인 작용들은 연기적 인과 관계가 있어서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인식론적인 인과관계의 상태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이것들을 ‘나’라고 착각하고 “나는 존재한다”라고 믿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선풍기의 다섯 날개가 너무도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원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나'라는 믿음은 가상의 실재 (virtual reality)이다.

오직 인간의 개념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것들은 다섯가지 감각기관인 색(色)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인 식(識), 느낌들인 수(受), 이것들을 생각하는 상(想), 그리고 그것들을 잡아당기거나 밀어내는 욕망들인 행(行), 그것들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변화하는 물질들인 색(色), 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끊임없이 상속하고 생성해 나가는 유(有)의 과정들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정체이고 실재이고 실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무아라고 하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상속 외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라고 하는 믿음은 선풍기가 작동할 때 다섯 날개가 마치 원처럼 잘못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제법무아 오온자성개공(諸法無我, 五蘊自性皆空) ' 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험되어지는 오온이 바로 나이고, 오온 외에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온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는 않는데 경험을 하는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경험적 실재’가 꼭 ‘존재론적 실재’라고 할 수 있는가 이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잘못된 믿음이라도 실재와 똑같은 결과를 주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길을 걷다가 노끈을 뱀으로 착각해서 몹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믿음은, 원인이 사실이 아니지만 결과가 사실이 되는 것이다.

오락에 너무 열중해서 건강과 공부를 해치는 소년에게 오락은 행복 그 자체이다.

그러나 행복하다는 그 느낌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되면 바뀔수 있는 착각의 감정인 것이다.

중증 당뇨병 환자가 단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믿음과 느낌들은 경험적 실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생겨난 믿음이므로 실재라고 할 수 없고, 오직 경험적 측면에서만 실재이다. 이와 같이 오온의 경험도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이다.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생겨난 하나의 심리적 현상일 뿐이다.

이것들을 실재이고 진실이라고 착각해서 일반화하면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이고 절대적 실재인가?

절대적 실재라는 것은 우선 보편타당성을 획득해야 한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자명(自明)함이 있어야 한다.

주관성을 배제해야만 하고 개인적인 감정, 업과 습관을 배제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오직 무위의 열반뿐이다.

열반만이 진실이고, 그 외의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열반은 무엇인가?

오온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오온에서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

다시 말해서 오온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것, 그것이 바로 열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진실 혹은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절대적 실재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불교는 경험적 실재를 중시하고,

대승 특히 중관학파와 선종은 절대적 실재를 실재로 중시한다.

 

- 등현스님 저 [초기 불교에서 선까지, 불교의 진수] 불광출판사-

 

저자 등현스님 :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