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탐구 실제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80)

2023. 4. 27. 22:24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전번 77회와 연결해서)

문(방문자) : 다른 한편, 그것은 관객에게 그 영화 화면 안에서 연기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몸유병을 배워야 하는군요!

 

답(마하리쉬) : 행위들과 의식의 상태들은 우리의 관점에 따른 것입니다.

까마귀, 코끼리, 뱀은 각기 신체기관 하나를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합니다.

까마귀는 눈 하나로 양쪽을 보고, 코끼리는 코를 손과 코의 두 가지 용도로 쓰며, 뱀은 눈을 가지고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역주 : 까마귀와 뱀에 대한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남인도의 미신에 속함) 까마귀 눈을 하나라 하든, 둘이라 하든 '코'라 하든, 혹은 뱀의 눈을 뱀의 귀라고 하든,

그것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인의 경우에, 잠-생시든, 생시-잠이든, 꿈-잠이든, 꿈꾸는 생시든, 모두 거의 같은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인 생시의 세계에서 하나의 육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일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잠을 잔다거나, 잠들어 있는 동안에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 일은 잘못될 것입니다.

 

 : 잠은 무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대의 순수한 상태입니다.

생시는 지(知)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지입니다.

잠 속에서도 완전한 자각이 있고, 생시 속에도 전적인 무지가 있습니다.

그대의 진정한 성품은 둘 다를 포함하고, 그 너머까지 이어집니다.

진아는 지(知)와 무지 둘 다를 넘어섭니다.

잠, 꿈, 생시의 상태들은 진아 앞을 지나가는 양상들일 뿐입니다.

그대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그것들은 진행됩니다.

그것이 진인의 상태이며, 그의 안에서 삼매, 생시, 꿈, 깊은 잠의 상태들이 지나갑니다.

마치 여행자가 (달구지 안에서) 잠들어 있는 동안 황소들이 움직이고, 서 있고, 멈애가 끌려지듯이 말입니다. 그런 답변들은 무지인의 관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질문들이 나오지 않겠지요.

 

 : 물론 진아에게는 그런 질문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질문할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행이도 저는 아직 진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 그것이 바로 그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대는 자신이 한 사람의 무지인이고 아직 진아를 깨닫지 못했다고 하는 그 관념을 없애야 합니다.

그대가 곧 진아입니다. 그대가 자기(진아)를 자각하지 못하는 때가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 그러니까 우리는 잠-생시를 - - - 아니면 백일몽을 실험해 봐야겠군요?

 

 : (웃음)

 

 : 저는 진아에 대한 끊임없는 내관(內觀)의 결과로 삼매에 잠겨있는 사람의 육신은, 그로 인해 움직임이 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힙니다. 그것은 활동할 수도 있고 활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관'에

자리 잡은 마음은 몸이나 감각기관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마음이 어지럽다고 해서 신체적 활동이 뒤따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은 신체적 활동이 확실히 삼매를, 곧 끊임없는 '내관'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합니다. 바가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당신께서는 제가 한 말에 대한 변함없는 증거이십니까?

 

 : 두 사람 다 맞습니다.

그대는 본연무상삼매(本然無相三昧, 사하자 니르비칼파 사마디) 를 말하고 있고,

그 사람은 합일무상삼매(知合一無相三昧)를 말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마음은 진아의 빛 안에 잠겨 있고(반면에 깊은 잠 속에서는 마음이 무지의 어둠 속에 놓여 있고), 그 주체는 삼매와 삼매에서 깨어난 후의 활동을 구분합니다.

더욱이 몸, 시각(視覺), 생기, 마음의 활동과 대상들에 대한 인식, 이 모든 것은 합일무상삼매를 실현하려는 사람에게 방해물입니다.

그러나 본연삼매(本然三昧, 사하자 사마디) 에서는 마음이 진아 속으로 해소되어 없어집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차별상과 방해물들이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존재가 하는 활동들은 잠자는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 때처럼, 곁에서 보는 사람은 지각할 수 있지만 그 주체는 지각하지 못합니다.

움직이는 달구지 안에서 잠이 든 여행자는 달구지의 움직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의 마음이 어둠 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본연적 진인(사하자 냐니)은 자기의 신체적 활동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찌다난다( 진아의 지복)의 활홀경 속으로 녹아버려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성 옮김 <마하리쉬의 복된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