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기억하면 참나를 잊어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잊으면 참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2023. 4. 11. 22:40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질문자 :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것은 뭔가를 하는 것입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란지트 마하리지 :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체가 환이기 때문입니다. 듣는 것도 환이고, 제가 하는 말도 환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을 하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참됩니다. 말하는 것도 환입니다.

저는 제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제가 이야기하는 것, 곧 실재는 참됩니다.

말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실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종이에 쓰여있는 주소에는 아무 실체가 없습니다.

그것이 가리키는 장소만 참되며, 그대가 그곳에 당도하면 주소는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말이 사라집니다. 의미만 남습니다.

계단들은 그대가 방에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말을 듣는 것은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서지만, 말 자체는 거짓입니다.

그대가 찾고 있던 사람을 만나면 주소는 더 이상 쓸모없습니다.

모든 것이 환이므로 저도 환입니다. 저도 거기에 예외일 수 없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둘 다 환이지만, 실재는 있습니다.그대와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말은 여러분에게 실재에 대한 어떤 이해를 안겨 줄 수는 있지만,

그런 다음 여러분 스스로 그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스승은 여러분을 어떤 지점까지 가르쳐 줍니다. 그 지점 너머에서는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이원성이 없습니다.

단일성만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스승과 구도자 둘 다 환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 처럼 말입니다. 스크린만 참됩니다.

만약 여주인공이 자신을 알고 싶어 한다면, 그녀는 사라지고 스크린만 남겠지요.

제가 말하는 것과 여러분이 듣는 것이 환이라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최종적 실재만이 존재합니다. 그 이해가 여러분을 뚫고 들어오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실재 안에는 진리도 없고 무지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실재는 늘 실재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마법이고 기적입니다. 일체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카드 트릭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환을 제거하려면 이해라는 트릭이 필요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실재할 수 있습니까?

이해라는 트릭에 의해 여러분은 그것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뭐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환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어떤 체험이 있자마자 '체험하는 자', '체험되는 대상' , '체험'의 3요소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실재는 단일성일 뿐입니다. 실재 속에는 세계가 없습니다.

세계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말입니다.

단일성을 체험하는 것은 늘 환입니다. "나는 단일성을 체험했다" 고 말하는 것은 거짓된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단일성은 체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그러면 실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들의) 말과 가르침에서 얻은 실재에 대한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실재인 사람은 주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체가 거짓이고 환(幻)이 실재 위에서 보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계단 위에 머물러 있으면 방에 어떻게 들어 갈 수 있습니까? 계단은 잊어버리십시오.

방이 있습니다. 무지로 인해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한다"고 말합니다.

실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실재에 도달하는 데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행위하기'라는 환에서 그냥 벗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성품상 자신이 '행위자'라고 생각하기 좋아하고, 또 그렇게 믿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모든 것과 여러분의 모든 습관은, 여러분이 이해할 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 마하리지님, 만일 일체가 환이라면 우리는 왜 여기 있습니까?

왜 우리는 침묵이나 깊은 잠 속에 머무를 수 없습니까?

 

마하리지 : 여러분은 깊은 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깊은 잠 속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영(zero)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왜 있습니까?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십시오.

여러분은 무지로 인해 깊은 잠 속에서 영(無)으로 들어 갑니다.

그러나 여기 생시의 상태에서는 먼저 이 영(無)의 지점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런 다음 이 무(無)를 넘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재는 그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영(無)의 지점을 넘어서면 실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은 "비록 내가 행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행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없고 '있다'도 없고, 실재만 있습니다.

내가 보고 지각하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생시의 상태가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무지 속에 있습니다. 그들은 무지 속에서 태어나고, 무지 속에서 살고, 무지 속에서 죽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있는 것은 이 '무지의 원(圓)'에서 나오기 위해서입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일체를 잊어버립니다.

여기서는 (생시의 상태에서는) 잊어버리기가 기억하기이고, 기억하기가 잊어버리기 입니다.

그것이 트릭 (속임수)입니다.

기억하는 것이 잊어버리는 것이고, 잊어버리는 것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실재를 발견하려고 하거나 그것을 회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기억하면 즉시 여러분자신이 잊어버려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실재 아닌 어떤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생시와 잠의 이 두 상태는 다르게 보이지만 실은 같습니다.

실재는 하나의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태가 없습니다.

 

                                                               -란지트 마하리지 대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