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31. 22:17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창조와 그 비밀을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긱된 대상에 실재를 부여하는 한, 속박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개념이 계속되는 한, 그것과 함께 속박도 지속됩니다.
여기 이 창조 속에서는 창조된 것만이 자라고 쇠퇴하며,
그 뒤에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며,그리고 해방됩니다.
우주적 소멸 때, 대상으로 있는 모든 창조물은 무한한 존재 안으로 용해됩니다.
의사소통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현자들은 무한한 존재를 아뜨만, 브라만, 진리등으로 다양하게 불렀습니다. 바로 이 무한한 참나는 자신 속에 자신과 타인이라는 이원성을 생각합니다.
바다의 표면이 흔들릴 때 물결이 일듯이(금은 팔찌가 되지 않고도 존재하지만, 팔찌는 금이나 다른 금속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조물의 성질들과 본성, 창조물의 잠재성은 창조자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마음은 무한한 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신기루가 진짜 강물처럼 보이듯이, 이 창조물도 완전히 실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너'와 '나'가 실재한다는 개념에 매여 있는 한, 해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존재의 개념을 단지 말로만 부인 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는 반대로 그러한 부인은 더 큰 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라마여! 사실 창조물이 실재라면 그것이 멈춰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실재하는 것에는 아무런 실재적 존재가 없으며,
실재하는 것은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행, 명상 및 다른 수행들은 그것을 중단시킬 수도 없으며,
깨달음을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창조물이라는 개념이 지속되는 한,
생각이 움직이지 않는 사마디는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마디에서 돌아 오는 순간에 슬픔과 동행한 창조물이 마음에 생깁니다.
생각의 움직임은 창조된 대상들의 개념을 불러일으킵니다.
참깨 씨 속의 기름처럼, 꽃 속의 향기처럼,모든 것 속에 정수가 존재하고 있듯이,
대상적 지각의 기능은 지각하는 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꿈의 대상들은 꿈꾸는 자에 의해서만 경험되듯이,
지각의 대상들은 지각하는 자에 의해 경험됩니다.
때가 되면 씨에서 싹이 돗듯이, 이 잠재성은 창조물이라는 개념으로서 나타납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아까샤자(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간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라는 신성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꾸준한 명상을 하였으며 가슴에 모든 존재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그를 삼키려 할 때까지 그는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죽음이 그에게 다가갔을 때, 죽음은 그 신성한 사람을 보호하는 격렬한 불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불을 피한 후에도, 침묵은 그를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유별나고 전에 없었던 일에 당황한 죽음은 운명을 관장하는 주인인 야마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 왜 제가 그를 죽음으로 데려 올 수 없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야마는 대답했습니다. "오, 죽음이여! 사실, 그대는 누구도 죽일 수가 없다. 까르마가 죽음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치명적인 끼르마를 찾아보도록 하여라 "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의 아이를 찾을 수 없듯이,
죽음은 세상의 그 어디에서도 그 신성한 사람의 가르마를 뱔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야마에게 보고했습니다.
야마는 말했습니다. "오, 죽음이여! 이 신성한 사람인 아까샤자는 진정으로 우주에서 태어난 자이다. 그에게는 까르마가 없다. 그는 우주만큼이나 순수하다. 그래서 그는 그대가 그를 잡아 삼키도록 하는 까르마를 초래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의 아이들처럼, 이 신성한 이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또한 전생의 까르마도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마음이 없다. 그대의 범위 안에서 그를 데려 올 수 있는 마음의 어떤 행위도 그는 하지 않았다. 그는 지성의 덩어리일 뿐이다.
우리의 눈으로는 존재하는둣이 보이지만,
그에게는 까르마를 일으킬 수 있는 아무런 개념이 없다.
의식은 의식 안에서 비추어진다.
그러면 비추어진 것은 독립된 모습을 취한다!
이것은 거짓된 가정이지 진정한 존재는 아니다.
이 신성한 사람은 이 진리를 알고 있다.
유동성이 물 속에 본래 존재하고 있듯이 텅빔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 신성한 사람은 최고의 영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원인이 없는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창조되었다고 얘기된다.
'나는 흙으로 된 몸이다.' 라는 어리석은 개념을 가진 사람은 문제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를 이길 수 있다.
이 신성한 자는 그런 생각이 없기에 그는 실제로는 아무런 몸이 없다.
그는 그대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너머에 있다.
이 신성한 사람은 결코 태어난 적이 없다.
그는 변화를 겪지 않는 순수한 의식이다.
한 시대가 시작되는 때에 무한한 존재 안에서 잠재된 무지로 인해서 진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우주적 꿈 속에서처럼 다양한 존재들로 나타난다.
이것에 관련되지 않은 채, 이 신성한 사람은 순수의식으로 있다."
<바시슈타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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