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6. 21:52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본질적인 것에 대한 분별
브라흐만은 형태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서는 수정이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하늘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브라흐만입니다.
브라흐만은 움직임이 없거나 정지된 것을 의미합니다.
내면의 자아(존재의식)는 움직이고 있으며, 보는 자 또는 주시자라고 부릅니다.
그 내면의 자아는 신을 의미하는데, 그의 성품은 움직임입니다.
그는 모든 생명체를 지탱하고 그들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물체는 무생물입니다.
자아가 없으면 육체는 쓸모가 없으며,
육체와 함께라면 영적 삶의 절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행위의 길, 헌신의 길, 지혜의 길, 최종 결론의 길, 참여의 길,
물러남의 길과 같은 모든 다른 길은 전부가 신(神)이 수행하는 작업입니다.
움직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움직이는 것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깊은 사색과 탐구에 의해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임 없는 것의 경계선에서 지성(知性)은 뒤에 남겨집니다.
따라서 의식(儀式)의 길과 행위의 길은 그 분별(지혜)의 길(Jnana)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길입니다.
신(神)은 이 모든 만물의 뿌리(근원)입니다.
그러나 신에게는 뿌리고 접촉점이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절대 실재(實在)인 파라브라흐만은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능(知能)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려깊은 탐구를 통해서 조사해 보면, 이러한 견해는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영적인 삶의 기초는 오대 원소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네 가지 큰 말씀(Mahavakyas)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몇 번이고 깊게 숙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 네 가지 큰말씀 : 4 가지 베다경전에서 하나씩 따온 성스러운 구절들, '그대가 그것이다'(Tat tvam asi),
'나는 브라흐만이다'(Aham brahmasmi), '이 진아가 브라흐만이다'(Ayam atma brahma), '완전지가 브라흐만이다'(Prajnanam brahma) 등 네 가지 구절을 말함]
첫번째 몸은 육체이고, 여덟번째 몸은 원초적 환상입니다.
8개의 몸이 모두 해체되었을 때, 어떻게 어떤 변화나 변상(變相)이 가능하겠습니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일종의 환술처럼 진짜 같이 보여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렇게(환술처럼)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실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변함이 없는 것은 창조,유지, 파괴의 과정과 다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며,
무엇이 비본질적인 것인지를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인 것이 동일하다고 간주될 때,
이것은 단지 분별력 활용의 부족함을 보여줄 뿐입니다.
두 가지의 구별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천해지고, 환상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 갑니다.
모든 곳에 펼쳐져 있는 그 자체는 내면 자아('내가 있다' 존재의식)라고 합니다.
이것은 많은 변상(變相)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변합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하고 자신의 경험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이지만,
파괴되는 것과 남는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은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파괴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직접 경험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울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짜증을 내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덜미를 움켜잡기도 합니다.
그들은 기근으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들 싸웁니다.
사람들은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말하면서 정의감이나 도덕성없이 행동합니다.
삶 속에서 그들은 돌을 버리고 금을 취하며, 음식을 먹고, 지구를 떠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리석게도 모든 것이 본질(실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 좀 더 숙고해 보고, 진리의 길 위에 머무르십시오.
분별력을 사용하여 이해의 이득을 얻으십시오.
만약 조약돌과 보석의 가치가 같다고 한다면, 탐구해 볼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을 현명하게 탐구해 보십시오.
탐구가 부족한 곳은 강펀치를 주고 받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받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여져야 하고,
받아 들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버려야 합니다.
더 높거나 낮은 수준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을 지혜(Jnana)라고 말합니다.
한 생애를 살게 된 사람들 중의 일부는 불멸의 혜택을 받는 반면에,
다른 일부 사람들은 불행해지고 속임수에 넘어갑니다.
그들은 인간 삶의 그 귀한 부귀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탐구하고 검토한 후에,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 가지고 있고,
비본질적인 것은 토사물처럼 내버립니다.
만약 토해낸 것을 먹는다면, 그것은 개나 하는 짓이라는 설명이 됩니다.
브라흐만을 아는 자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과거에 행(行)한 일(業)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 따른 결실(業報)을 경험합니다.
활동의 반복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 습관을 만듭니다.
어떤 이들은 좋은 품질의 음식을 먹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조상들의 위대함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어떤 종류의 더러운 음식을 먹습니다.
그냥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분별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런 말들은 단지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중 일부만이라도 주어진 설명을 계속 열심히 들으면서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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