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23:05ㆍ카테고리 없음
질문자 :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님은 지성이 무엇을 지각하든 지성은 그것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우리가 파인애플을 먹으면 파인애풀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체험자가 그 체험을 되는 것을 의미합니까?
란지트 마하리지 : 어떻게 우리가 파인애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대가 파인애풀을 먹을 때, 어떻게 파인애풀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파인애풀을 맛보는 것이지요. 생선을 먹으면 생선이 됩니까? 아니지요. 생선 맛을 보는 것입니다. 체험이 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옵니까? 세계에는 그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맛보겠습니까? 그 질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체험은 지(知)에 이를 뿐입니다. 지(知)에 이를 때까지는 체험을 얻습니다.
그런 다음 지(知)가 된다? 동의합니다. 지(知) 너머에는 영(無)가 있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영(제로)를 넘어가야 합니다. 영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대가 영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누가 체험합니까?
그 질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대가 잠 잘 때 만약 그대 자신을 안다면 무엇을 경험합니까?
거기서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않고, 그대가 영(제로) 속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민약 넘어선다면, 그때는 잠 속에서도 그대가 있습니다.
우리 인도의 관습에서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잠 잘 때 어디로 가요?"
엄마가 말합니다. " 천국에 간단다"
그녀는 천국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이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합니까?
우리가 천국에 가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릅니다.
그대가 비행기로 인도에 가고 싶은데, 인도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합시다.
그래서 인도를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내려야 하지만, 어딘지 모릅니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릴 수 있습니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체험에 이르기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체험자가 그 체험이 됩니다. 그것은 지(知)이지만, 지(知)를 넘어서야 합니다.
스승은 그대를 지(知)넘어로 데려 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대 자신입니다.
자아 없는 진아입니다. 거기에는 자아가 없습니다.
그대는 자신이 어떤 것이 된다고 느끼지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도처에 어디에나 있습니다.
구나들(속성들)이 있지만 그는 그 접촉을 받지 않습니다.
파인애플을 먹는다고 어떻게 파인애플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대가 무엇을 맛볼 때, 그것은 그대 자신이 아닙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을 체험할 때라 해도 그대는 에고 안에 있습니다.
체험의 문제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정에 의해 그대 자신을 증명해야 됩니다.
경전에서는 "네띠(아니다), 네띠(아니다)" 라고 합니다.
그 "네띠"가 무슨 뜻입니까?
그대가 눈이나 마음으로 보는 것은 그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도 넘어서 있습니다.
"네띠"의 의미는, 그대는 그대가 보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리석 계산대를 가리키며) 그대는 이것이 대리석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대리석이 아닙니다.
그는 대리석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나는 "지(知)이다"라고 말할 때도 여전히 지(知)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知)는 체험을 가져오는데, 그대는 어떤 체험을 원합니까?
(知 너머에서는) 어떤 체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그대가 그대 자신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거기 누구요?" 하면, 여러분은 "아무도 없소"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립니다.
그를 잊어버릴 수가 없는데도 그를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그가 있고, 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영화를 볼 때는 스크린이 사라지고 (왜냐하면 마음이 그 영상에 주의가 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상만 봅니다. 스크린을 볼 때는 영상을 보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차이는 늘 있습니다.
그런데 체험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그가 될 수 있습니까?
지(知)는 될 수 있습니다. 지(知)까지는 될 수 있다, 동의합니다.
그가 한 말은, 체험에 의해 그 체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체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 체험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이 여러분 자신도 아닙니다.
어떤 신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회백토입니다.
여러 색갈 위에 회백토를 칠하면 모든 색갈이 사라집니다.
일체의 위에 회백토를 칠하십시오.
회백토의 의미는, 그것(개별 사물들) 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지각하는 것들은 없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여러분이 보고 지각하는 것들은 없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여러분이 보고, 지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은 참되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을 넘어서 있습니다.
어떤 마음의 문제도 거기에 오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크리슈나는 "그대의 마음이 속박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해탈도 속박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해탈에서 자유롭고, 속박에서 자유롭습니다.
여러분이 "나는 속박되어 있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누가 여러분이 속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해주겠습니까?
몸으로 인해 여러분은 속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많은 것을 믿습니다.
이해가 와야 합니다.
스승이 그 이해를 안겨주고, 이해 너머로 여러분을 데려 갑니다.
여러분을 거기 놓아두고 " 오, 그대가 그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거기서) 여러분은 지(知)를 체험하지만, 지(知)는 참되지 않습니다.
지(知)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방안에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두 형제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쌍둥이 중에서 한 아이를 보면 다른 아이를 잊어버릴 수 있고,
다른 아이를 보면 또 다른 한 아이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쌍둥이 형제로 10분 차이로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나 저 아이를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그들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폴은 피터가 아니고, 피터는 폴이 아닙니다.
그는 그것을 잊어버릴지 모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실재를 잊어버린다면 누구의 잘못입니까?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만일 실재를 기억한다면 그때는 어떨까요?
여러분은 지(知)와 무지(無知)를 넘어서 있습니다.
지(知)는 무지(無知)에서 옵니다.
그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기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지(知), 지(知), 더 많은 지(知)를 좋아합니다.
그 지(知)를 알고 싶어합니다.
지(知)가 무엇입니까? 지(知)는 영(제로,無)입니다.
그 지(知)가 참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면 영(제로,無)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전세계는 어디서 시작됩니까? 허공입니다.
허공이 없으면 우리가 그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어떤 물건을 가리키며) 이것은 깨트려져서 일순간에 허공이 될 수 있습니다.
깨뜨리면 그것은 공중으로 날아 갈 것입니다.
그것은 허공이 됩니다.
여러분이 보고 지각하는 것은 단지 허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체험을 넘어섭니다.
- 란지트 마하리지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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