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꿈,깊은 잠을 넘어서 있는 네번째 상태가 신이다

2022. 12. 14. 20:48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나'(에고)라는 느낌의 해소가 깨달음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요기이며, 그는 비춤의 힘을 성취합니다.

브라만 안에는 어떤 경험도 없습니다.

의식 안에 어떤 이원성도 갖지 않는 것이 브라만입니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외관상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표지입니다.

 

진아는 환과 세 가지 성질에 에너지를 주는 자입니다.

처음에는 세계 안에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시간,공간 원소가 그것입니다.

'내가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떨림이나 흔들림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흔들림'은 운동이나 진동을 의미합니다.

어떤 움직임이 있을 때 '나'라는 느낌이 창조됩니다.

움직임이 있을 때는 의식의 일어남이 있습니다.

진아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경험이 일어 날 때는 분명히 이원성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만이 있을 때는 어떤 경험도 없습니다.

경험이 일어나려면 어떤 다른 대상이 필요합니다.

브라만은 둘이 없습니다.

 

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에 대해 애정을 느낀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애정을 느끼시는데, 왜 저는 저 자신에게 그것을 느끼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나는 당신과 별개다'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知)를 얼핏 보기만 해도 기고만장해집니다.

모든 존재들과의 단일성의 성취가 자신의 내면에 있을 때는 어떤 능력들이 자연히 일어납니다.

그런 것들에 말려들어 그 능력에 만족하는 현자는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환에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약간의 공덕을 성취하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도 진보가 멈춥니다.

5대 원소는 늘 서로 어느 정도 대립합니다.

만일 고양이들이 한 번도 쥐들을 잡아먹지 않았다면,

쥐들이 너무 강해져서 인간들을 잡아 먹게 되었겠지요.

어느 한 원소에서 창조된 것은 결국 그 원소 속으로 도로 해소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그것이 아무 제약없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재앙을 초래하겠지요.

 

환(幻)은 행복을 방해하는 어려움들을 주의 깊게 설치해 왔습니다.

영적인 삶에서 영적인 능력은 함정이 됩니다.

그런 능력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함정에 빠집니다.

그런 받아들임이 우리에게 영향이 없게 해야 합니다.

능력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진아는 도처에서 동일하다는 앎을 가지고 머무르십시오.

실재 안에는 악도 선도 있을 곳이 없습니다.

브라만다라는 말은 '우주의 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그 자체의 목적을 배반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잘못된 방향에 맞추어져 있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해 설해지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목적은 영적인 능력에 대한 강조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능력들은 환에 대한 매혹을 창조하는데, 사람이 거기에 말려듭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이 조언을 해 드린 것 입니다.

비슈누는 '시대를 아는 자'이자 '시간을 아는 자'입니다.

또 그 둘 다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자입니다.

그는 의식 자체입니다.

그의 의식에 대해 명상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것',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개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장기는 개념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게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놀이를 합니다.

장기꾼들은 장기에서 졸과 말들의 움직임을 통재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신은 원동자(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자)가 아니고

지고아 빠라마트만이 원동자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 이것이 진정 앎의 기술입니다.

여러분이 '나'의 입장을 취할 때는 그 '나'의 한계에 종속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작아지고 한계가 있게 되지만, 브라만은 광대합니다.

창조주 브라마가 그의 창조솜씨를 구사하면 그것은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습니다.

 

'나'라는 느낌이 증가하는 곳에는 모든 배열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기이와 설탕을 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뺨이 말해 줍니다.

그 말은, 지복은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상한 생활방식이 유지되고 있는데,

우리가 세계는 거짓이라고 선언하면서도 마치 세계가 참되다는 듯이 계속 행동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모두의 심장 안에 거주하는 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비상한 능력을 성취합니다.

그러나 싯디는 진아 깨달음에 장애를 야기합니다.

빠라마트만은 속성을 가진 개아와 무형상의 신을 넘어서 있고,

심지어는 현상계의 근본 뿌리인 쁘라끄리띠도 넘어서 있습니다.

 

신은 생시, 꿈, 깊은 잠의 세가지 상태를 넘어서 있는 네번째 상태입니다.

보는 일과 보이는 것들을 포기해 버린 사람이 나라야나입니다.

존재의 네번째 상태는 다른 세 가지 상태를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네 번째 상태는 명민한 지(知)의 상태입니다.

 

"나는 만물의 일자(一者), 신들의 신이다. 나는 신들에게 신성(神性)을 하사하는 나라야나다."

이것이 네 번째 상태, 곧 뚜리야 상태입니다.

그를 삼계(三界)의 주(主)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이 상태는 다른 세 가지 상태, 곧 세계를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뜨리꾸따'라는 말은 내면에 있는 세 가지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 가지 상태 모두의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이것들 모두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야나입니다. 이 세 가지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삼세(三世) 속의 노예나 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인인 그는 하나의 개아입니다.

이 세 가지 상태 모두를 아는 자가 빠라마트만입니다.

 

- 그대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