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 22:21ㆍ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본문]
-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뒤 질문을 시작했다.
밀린다 왕 : 당신은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가세나 : 동료수행자들은 저를 나가세나로 부릅니다만, 그 '나가세나'란 단지 이름이고, 호칭이며, 통칭에 불과합니다. (이름에 대응하는) '실체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해설]
우리가 '아무개'라고 하든, '사람'이라고 하든 우리가 이름을 사용할 때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불리는 존재가 그 자체가 영속성을 가지고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상(無常)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무상한 변화'에 이름을 붙여서 부르면서 마치 변치 않는 무엇이 있는 듯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바람이나 폭포는 한시도 머물지 않고 움직이고, 또 쏫아져 내린다.
이때 우리는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켜서 '바람'이라고 하고, '폭포'라고 하는가?
사실상 그 이름들이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대상은 화정할 수가 없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미 그것은 다른 것으로 변하게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름에 대응하는 대상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진실(眞諦)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편의상, 통념상(世諦) 그러한 무상한 대상에 이름을 붙여서 가리키고, 소통한다. 사람도 비유적으로는 바람이나 폭포와 다를 바 없다.
사람을 구성하는 정신적 요소(名)와 물질적 요소(色)가 모두 찰나간에 생멸을 거듭하며 흘러갈 뿐이다.
(이것을 '무상하다'고 말한다) 이 흐름은 단절된 것도 아니고, 연속된 것도 아니다(不斷不常)
거기에는 어던 영속성도 실체성도 없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다섯가지로 분류할 때는 오온(五蘊)이라 하고, 둘로 분류할 때는 명색(名色)이러고 하지만, 그 역시 '높새 바람'이나 '박연폭포'처럼 막연한 이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가세나'라고 불리는 실체적 존재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실체적 존재는 없다'는 것은 '진실한 의미에서(眞諦)'그렇다는 것이고, 통념상으로는(世諦) 그렇게 답하는 사람을 '나가세나'라고 부른다.
- 그러자 밀란다 왕은 대화를 참관하는 그리스인들과 승려들을 향해 나가세나의 대답을 재확인했다.
밀린다 왕 : "방금 스님은 나가세나라는 이름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
-그리고 다시 나가세나를 향해 물었다.
밀린다 왕 : 나가세나 스님, 만약 그 말이 옳다면, 스님에게 옷과 음식과 거처를 제공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청정한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살생을 저지르고, 남의 물견을 훔치고, 사음(詐淫) 을 행하고, 거짓맗을 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만약 스님 말이 맞는다면 선행과 행행을 저지르는 행위자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업(業)의 과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스님을 죽이더라도 살인을 한 사람은 없을 것이고, 교단의 스승이나 지도자도 없는 셈이 됩니다. 동료수행자들이 스님을 '나가세나'라고 부른다고 하셨는데과연 무엇이 나가세나 입니까?
살갗의 터럭이 나가세나입니까?
나가세나 : 아닙니다.
말린다왕 : 그렇다면 손톱이나 치아나 피부, 혹은 몸의 다른 부분들이 나가세나입니까?
나가세나 : 아닙니다.
밀린다왕 : 혹은 몸이나 느낌이나 지각이나 의지나 의식이 나가세나입니까?
나가세나 : 대왕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어떤 것도 나가세나가 아닙니다.
밀린다왕 : 제가 지금까지 물어보았습니다만 나가세나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나가세나는 공허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까? 대관절 내 앞에 서 있는 건 누구입니까?
(잠시 있다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스님의 답변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가세나 : 대왕께서는 고귀한 태생으로 호화로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여기 오실 때 걸어오셨습니까, 마차를 타고 오셨습니까?
밀린다 왕 : 마차를 타고 왔습니다.
나가세나 : 그렇다면 대왕께서 대답해 보십시오. 마차란 무엇입니까? 굴대가 마차입니까? 혹은, 바퀴가 마차입니까? 고삐가 마차입니까? 굴레가 마차입니까? 아니면 이것들이 아닌 다른 부속품이 마차입니까?
밀린다왕 : 스님이 가리킨 것 중에 어떤 것도 마차가 아닙니다.
나가세나 : 결국 '마차'라는 말도 공허한 음향에 지나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대왕께서 마차를 타고 여기에 오셨다는 말씀은 거짓말이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의 위대한 왕으로서 무엇이 두려워서 진실을 말씀하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 그리고는 논쟁을 참과하고 있는 그리스인들과 승려들을 향해서 말했다.
나가세나 : "밀란다 대왕께서는 마차를 타고 여기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차가 무어냐고 물었을 때 그것을 제게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덯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그러자 500명의 그리스인들은 나가세나의 편에서 왕의 해명을 촉구했다.
: "대왕께서는 나가세나 스님의 물음에 답하시길 바랍니다. "
밀린다 왕 : 나가세나 스님, 저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마차의 굴대와 바퀴와 차체 등 마차의 모든 부분들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마차'라고 부릅니다.
나가세나 :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마치'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바를 바르게 이해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32가지 신체의 장기와 개체를 구성하는 오온에 의해 '나가세나'라는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비구니 바지라가 붓다 앞에서 읊은 시구와 같습니다.
" 여러부분의 결합으로 인해
'마차'라는 명칭이 있듯이
오온이 존재할 때
'사람'이라는 이름이 있네"
밀린다 왕 :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저의 물음은 답을 얻었습니다. 붓다께서 여기 계시다면 스님의 답변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해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마차라는 이름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 문답을 포인트는 단순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쓰는 '이름'에 관한 문제다. 이름과 관련해서 두 가지 미망이 존재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매우 중요한 주제이므로 부연한다.
첫째, 우리는 이름을 쓰면서 은연중에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이 '이름과 같이' 변치 않고 영속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름'이라는 것이 그렇게 때문이다. 어릴 때나 늙었을 때나, 심지어 죽은 후에도 그 사람의 이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는 대상 자체는 이름과 같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너무나 신속하고 불안정한 흐름이요, 흔들림이다. 이름이 변화를 가리는 것이다.
둘째, 이름 (개념,기호 등)을 쓰면서 그 대상이 '이름과 같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말하자면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실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연기(緣起)적으로 상호의존해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데 불과하다.
그런데 마치 '그 자체의 본성을 지닌 실체'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름으로 인해 객관적인 진실인 연기와 무상이 가려지는 것이다.
- 서정형 역해 <밀린다 왕의 물음> 공감과 소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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