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해소에 대하여

2022. 11. 28. 20:21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의심의 해소

강의를 듣는 청자(聽者)가 말했습니다.

"먼저 거친 육체가 있고, 그 때문에 5가지 상태(내적기관, 사고 작용,기억,지성,에고자아)를 가진 내면마음(antahkarana)이 있습니다. 이해하는 것과 분별이 가능한 것은 거친 육체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현상화 된 우주가 없으면 원초적 환상에 대한 지식은 없습니다.

모든 기능은 거친 육체와의 중간 매체인 마음을 통해서만 수행됩니다.

만약 물질적 육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내면의 마음이 머물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강의를 듣는 청자(聽者)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제 답변을 들어 보십시오,

"누에나 껍질이 있는 다른 벌레들,그 외에 크고 작은 생물들이 몸 바깥 쪽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신들의 집을 만듭니다.

소라와 달팽이, 그리고 등에 딱딱한 껍질이 있는 다른 많은 생물들이 있습니다.

생물이 먼저 생겨났는지, 집이 먼저 생겨났는지는 조사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물이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그들이 집을 지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직접적인 경험입니다.

이와 같이, 먼저 미묘한 것이 온 다음, 거친 것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 단순한 비유로 청자(聽者)의 질문에 답변이 되었습니다. "

 

그런 다음 청자(聽者)가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질문을 더 해도 될까요?

출생과 죽음의 분별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누가 태어나며, 죽은 후에는 누가 다시 태어납니까?

이 경험은 무엇이며, 어떻게 발생합니까?

브라마 경은 탄생을 창조하고, 비슈누 경은 생명의 유지자이며 보호자이고,

시바 경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지만, 이 말은 실제 경험을 이해하는데는 부족합니다.

이 경험을 얻으려고 애쓰다 보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가 브라마 경을 창조했습니까?

누가 비슈누 경을 지탱해줍니까?

누가 시바 경을 멸망시킵니까?

이것은 모두가 환상의 성질을 가진 창조적 유희의 일부분입니다.

어떻게 행위자가 어떤 변화도 없는 고요한 신이며, 속성없는 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환상(幻想)이 사물을 낳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스스로가 확장되었다고 말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탐구를 통해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태어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인식됩니까?

과거의 행위가 축적된 까르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도 또한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성품의 공덕과 죄악에 대하여 말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또한, 이 말들을 사용해서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여기에서 행위자는 누구입니까?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습니다.

욕망이 출생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붙잡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면 마음의 다섯 가지 측면은 욕망,애욕,상상력,의도,감정,지성 등,

한없이 다양한 사고방식과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의 모든 기계적인 기능이며, 지식 자체는 기본적으로 기억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기억은 탄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육체는 오대 원소로 만들어지며,

그 중에서 바람(風大)은 모든 것의 움직이는 동력이고.

"아는 것"은 마음의 기본적이고 자연적인 기질입니다.

오대 원소가 모두 뒤섞인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어떻게 낳았습니까?

이 모든 것을 조사해 보더라도 다시 태어나거나 다시 살아나는 어떤 탄생이나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아무도 태어남이 없다면, 성인들의 친견 단체에 가입하여 무엇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까?"

위의 글들은 강의를 듣는 청자(聽者)들의 질문 사항들입니다.

 

연사(演士)가 답변합니다

"원래는 기억도 없고 망각도 없는데, 어떤 지점 사이에서, 기억이 약간 떠오릅니다.

내면의 마음이 의식의 자리(의식중) 임을 이해하십시오.

 

의식하고 있는 느낌은 기억이 있는 반면에,

의식이 있는 느낌을 잊어버리면 기억의 결핍이며,

기억을 잃은 것은 존재가 죽을 때입니다.

 

기억과 건망증을 모두 잃어버리면 몸에 죽음이 찾아오는데,

그러면 나중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누구에 의해 태어날 수 있습니까?

 

따라서 탄생도 없고, 죽음 후의 고통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불필요하지만 강력한 상상력일 뿐입니다.

 

또한 누구에게도 환생은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다시 탄생하지 않습니다.

 

마른 나무는 다시 푸르지 않으며, 떨어진 열매는 다시 붙지 않습니다.

같은 방식으로,죽은 몸은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항아리가 깨지면 영원히 깨진 채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는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지식이 있든 무지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둘 다 똑 같고 평등합니다. "

이렇게 말하자, 강의를 듣던 청중(聽衆)들은 더욱 의심이 강해졌습니다.

 

연사(演士)가 다시 말합니다.

" 청중 여러분! 이 모든 의견에 상관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들 때는 분별력을 사용하여 분명하게 보십시오.

 

노력하지 않고도 일이 성사되거나, 밥 먹지 않고 배곺음이 해소되거나,

지혜가 없이 해탈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식사를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배고픔이 해소되었을 것이라고 느낄지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직접 식사를 해야 됨니다.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은 물에 뜰 것이고,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익사합니다.

누가 그것에 대해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진아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이 세상의 바다를 건너서,

속박이 끊어진 자만이 해방됩니다.

 

자유로워진 사람은 속박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속박되어 있습니다.

속박된 사람들이 어떻게 만족 할 수 있는가가,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청자(聽者)들이 보아야 할 포인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자신들의 슬픔에 무관심합니다.

해방된 사람의 경험이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다양한 원소와 근본적인 실재(實在)를 자각해 본 진아지혜를 가진 사람은 완전한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진아 지혜가 있어야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진아지혜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베다 경전, 영성과학 경전(Shastras) 및 신화 이야기(Puranas)의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베다와 다른 경전들에서 나오는 사상과 설명은 "위대한 체험"을 한 사람들에 의해서 진술된 것이지만,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곳에서 말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간주된다면, 그러면 어떤 권위를 따라가야 할까요?

실질적으로 진아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해방됩니다.

 

모든 사람이 해방되었다는 진술은 진아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진아지혜가 없으면 해방도 없습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진아 지혜를 얻으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거짓(환상)으로 알려집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외양(外樣)의 영향을 받는다고 느낍니다."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아 지혜로 해방된 반면에,

무지한 사람은 자신의 상상력에 얽매여 있게 됩니다.

 

무지(Ajinaan)를 궁극의 지혜(Vjinana)와 동일시하거나, 해방과 속박,

또는 확신과 추측을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속박과 같은 것은 실제로는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아 깨달음 없이는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먼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 놀라운 사실을 보십시오.

비실재(非實在)하는 그 속박이 거짓(환상)이라고 이해되지 않을 때, 사람은 속박감을 느낍니다.

 

단순한 믿음만으로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분별력을 사용하여 명확하게 보고 이해하면 해방이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음의 지혜(Jnana)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하늘처럼, 모든 것을 아는 자가 됩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은 무지(Ajnana)이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지혜(Jnana)이며,

지혜(Jnana)마저 넘어 가게 되면, 자신의 최고 진지(眞知)가 있습니다.

 

불멸의 감로를 마시고 불멸이 된 사람은 '어떻게 사람들이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별력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속박 안에 있는 어떤 사람(幻人)의 출산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귀신이 어떻게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독(毒)에 영향을 받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은 " 독이 어떻게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먼저 무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면,그것이 어떤 것인지 더 이상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분별력을 사용해서 얻은 이해는 그렇다 치고, 무지한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십시오.

 

깨어 있는 사람은 잠 속에서 잠꼬대하는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그 경험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는 스스로 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기질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 얽혀있는 무지한 사람과 다릅니다.

배고픈 사람의 경험은 배고픔이 충족된 사람의 경험과 같지 않습니다.

 

이제 이러한 설명으로 의심이 해소되었습니다.

해방은 오직 지혜를 얻은 사람에게만 일어나며,

분별력을 명확하게 사용해서 봄으로써 내면의 진아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9-7)

 

< 스승과 제자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