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1. 22:33ㆍ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슈리 푼자 : 한 극단이 연극을 공연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왕의 신하역활을 해야 하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아파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대역을 맡을 다른 배우들고 없었기에, 극단의 소유주가 그 역활을 하도록 투입되었습니다. 그 연극에서 소유주의 고용인들 중 한 사람일 뿐인 왕은 그 신하에게 명령합니다.
"나의 신발을 가져 오너라. 나는 산책을 나가고 싶다" 그 소유주는 온순하게 복종을 하고 그 명령을 따릅니다. 그러나 그가 그 회사의 소유주라는 것을 잊어본 적이 있겠습니까? 그가 그 역활을 연기하고 있는 동안 내내 그는 자신이 소유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하의 역활을 맡아도 행복합니다.
자신이 참나라는 것을 알고 이와같이 산다면, 당신은 어디에서든지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당신의 모든 활동은 아주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고통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 텅빔에 대한 지식을 잠깐이라도 보았다면, 이 모든 현상계, 이 모든 삼사라가 자신의 투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에, 당신은 항상 행복할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계가 어디로부터 일어납니까?
잠을 잘 때는 그곳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문자 : 그때는 또 다른 종류의 꿈이 존재합니다.
슈리 푼자 : 저는 꿈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상태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깊은 수면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저는 리쉬케시에서 한 그릅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심리학자, 생리학자, 심지어 초월심리학자들을 포함하여 25명의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깨어있음과 꿈이라는 두 상태만이 있다는 매우 독창적인 명제를 가지고 그것을 시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깨어있음과 꿈이라는 이 둘 중의 하나에 있으며 잠과 같은 상태는 실제로 없다고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그들 중 한사람이 저에게 "그것이 우리가 서구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잠자는 사람의 뇌에 뇌파를 재는 기구를 부착했을 대 깊은 잠으로 보이는 기간조차도 꿈이 늘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에서는 깨어있음. 꿈꾸는 상태, 잠, 뚜리야, 두리야따따와 같은 다섯가지 상태가 있다고 말합니다.
방문자 : 마지막의 것은 무엇입니까?
슈리 푼자 : 뚜리아띠따입니다. 깨어있음, 꿈, 잠은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 이후에 네 번째 상태인 뚜리야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세 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상태입니다. 그 너머에는 뚜리아띠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네 번째의 너머'라는 것입니다.
이들 과학자들은 그들의 도구로 시험하기 위해서 스와미들을 찾으러 여러 아쉬람을 다녔습니다.
몇몇 과학자들은 우주비행사 훈련과정을 담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히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서 수면을 잘 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들이 수면을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하여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명상이나 요가가 그들의 수면방식을 개선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학자들은 시험의 대상이 될 스와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와미들이 명상하고 있을 때 그들의 머리에 전극을 부착하여 명상 중에 뇌파릐 변화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시도하였고 결국에는 스와미 라마라고 하는 사람에게 시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스와미 라마는 아쉬람에서 정원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곳에 있지는 않았으며, 이것은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그에게 예의 바르게 다가가서 그들의 목적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앉거나 누워서 명상하는 동안 그의 뇌파를 검사해도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가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줄들을 부착해도 됩니다. 저는 명상하기 위해 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의 머리에 줄을 부착했는데 그 스와미가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일상적인 정원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마음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감명을 받았으며, 심도 있는 실험을 하기 위하야 그를 데리고 갔습니다.
당신이 알고서 그 바탕에 자리를 잡는다면, 수많은 활동이 진행되드라도, 그 활동을 할 마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참나가 이 모든 것을 돌볼 것이고 당신은 늘 평화 속에 있을 것입니다.
깨어있음, 꿈, 잠과 같은 세 가지 상태와 텅빔의 바탕이 되는 네 번째 상태로 돌아가 봅시다.
세 가지 상태는 바탕에 투사된 것입니다. 그 바탕은 잠이 오고 가고 꿈이 오고 가고, 깨어 있음도 오고 가는 그 배경인 것입니다. 어떤 바탕, 즉 어떤 근본적인 토대가 있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 갑니다. 그 토대, 그 현존, 그 공간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외부의 일들에 너무 몰두해 있으면 그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 부류가 있습니다.
첫번째 부류는 절대로 잊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들은 모든 것이 이 바탕에서 일어나는 것을 압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반묵따입니다. 지반묵따는 그들이 몸을 가지고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에 완전한 해방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번째 부류는 때로는 기억하고 때로는 잊어버리기 때문에 스스로 어려움이 처하게 됩니다. 텅빔에 대한 자각은 잠시 동안 일어나지만,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이 일어나 갑자기 슬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에 집착함으로 텅빔에 대한 자각을 잃습니다. 이런 종류의 텅빔은 영속적이지 않고, 정신적인 활동의 변덕에 의존해 있습니다.
세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원래의 공간, 그 텅 빔을 잠시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들에게는 삼사라가 결코 끝나지 않으며,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이 극소수 뿐인 첫번째 그룹의 회원이라면, 드러나는 모든 현상이 자신의 참나에 나타난 겉모양이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신이 눈을 뜨게 되면 현상계는 일어나지만, 그 모든 것이 오직 투사라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잠 잘 때는 어떤 현상계도 존재하지 않지만 당신, 즉 당신의 참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은 당신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어떤 것이 당신 자신의 참나입니다.
방문자 : 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그 현존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슈리 푼자 : 그렇습니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고, 그 '당신'을 통하여 당신은 살아갑니다.
'당신'에게 현존이 느껴지는 유일한 때는 현존에 대한 자각에 어떤 장애가 있을 때입니다.
방문자 : "장애가 있을 때는 현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장애가 없을 때는 현존을 느낄 수 없다." 이 말은 매우 역설적인 것 같습니다.
슈리 푼자 : 자신이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장애입니다. 당신의 모든 경험이나 경험을 부족과 같은 이 모든 것은 개별성이라는 이러한 생각을 통해 중재됩니다. 이 장애는 현존으로부터 일어나며,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통하여 현존을 느끼거나 현존의 없음을 자각합니다. 현존은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깊은 수면상태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중재자가 그 상태에서는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나'가 앖을 때 어떤 것을 자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존은 제가 잠이 들 때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런 장애들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의 본질적인 정당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샨티, 즉 평화는 장애물이 생기기 전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장애가 사라지면 산티는 여전히 가득합니다. 당신의 본성이 샨티입니다. 경험하는 자가 있을 때도, 경험자가 없을 때도 그것은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방문자 : 그렇습니다. 그것은 명백합니다. 물고기는 평생 물에서 헤엄쳐 다니지만, 물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고기에게 물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때는 물고기를 물 밖으로 꺼내 놓으면 됩니다. 그러면 물고기는 즉시 물이 무엇이고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합니다.
당신의 말씀은 현존을 방해하는 것이 없으면, 현존에 대비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존을 알기 위한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슈리 푼자 : 지금 우리는 강에서 여전히 살고 있지만 "나는 목말라요." 라고 외치는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근원을 이루고 있는 바탕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 공간, 그 텅빔이 당신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것은 항상 존재합니다.
(방문자가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슈리 푼자 : 그는 박사입니다. (빠빠지 역시 웃기 시작한다)
방문자 : 참으로 후련합니다 ! (방안의 모든 이가 웃는다. ) 이것이 이렇게 간단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군요. 흐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새로운 질문자가 웃고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당신은 잊어버렸습니까? 저는 저 자신을 지켜보며 "누가 화내고 있지?"와 같은 질문들을 합니다만, 항상 잊어버립니다.
슈리 푼자 : "잊어버렸다"고 말할 때, 당신은 잊어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잊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문자 : 그러나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망각이나 기억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이 그냥 화를 내는 대도 있지요.
슈리 푼자 : 당신은 망각하거나 기억하는 이 실체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망각하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잊어버렸든 거억했든지 간에 동일한 사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의 전과정을 통해서도 그 사람은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망각하는 '나'릃 찾아내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절대 망각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나'는 의식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현존 그 자체입니다.
그 현존 안에서는 당신은 어떤 것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빛이 사방에 있다면,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물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역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은 아주 선명해질 것입니다. 어떤 것도 잊혀지거나 감추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꿈을 꾸는 수면의 상태가 있습니다. 깨어 있는 상태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당신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그 너머에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의식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참된 본성입니다. 그것을 획득하거나 쟁취하거나 달성하거나 성취하거나 열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결코 잃은 적이 없으므로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 그것을 향해 쫓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으며, 늘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여기에 없다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새롭게 얻는 것은 언젠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잃지 않는 것, 즉 영원하며 영속적이고 자연스러우며 ,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을 찾으십시오. '지금'을 보십시오. 현존을 보십시오. 공간을 보십시오. 당신 자신의 텅 빔을 보십시오.
모든 것은 티끌만 한 이 텅 빔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는 거기에 있습니다.
온 우주는 그곳으로부터 나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 이 모든 현상계의 근원을 보십시오.
그리고 난 뒤에 삶을 즐기십시오.
-빠빠지와의 삿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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