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4. 22:17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不起法坐, 安眠虛室
樂道恬然, 優遊眞實
無爲無得, 依無自出
四等六度, 同一乘路
법좌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텅 빈 방에서 평안히 잠을 잔다
평안히 낙도(樂道)하며,
여유롭게 진실(眞實)에서 노닌다.
무위(無等爲)이고 얻을 바 없어
무엇에 의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등(四等,四乘)의 육바라밀 행법이
모두 똑같이 일승(一乘)의 길이다.
[해설]
법좌(法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여여부동(如如不動)한 심성(心性)이 구현되는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텅 빈 방이란 공적(空寂,텅 지어 고요함)한 마음이니 항상 어느 때나 공적한 마음에서 여여부동한 심성이 구현되어 평안하고 고요하다.
평안한 가운데 도를 즐기면서 여유롭고 진실(眞實)을 체증(體證)하며 노닌다.
행위의 주체로서의 아상(我相)과 그 대상 및 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무위(無爲)의 행이 된다.
공(空), 무상(無相), 무원(無願, 無作)의 삼해탈(三解脫)이 요지(了知)되어야 무위가 된다.
무위를 억지로 하려 하면 유위(有爲)가 되어 버린다.
마음이ㅣ 본래 무소유(無所有, 지니는 바 없음) 임을 요지한 까닭에 무엇을 하든 얻을 바 없다.
그래서 어떤 경계나 경지가 무엇에 의해 어디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레서 그 경계에 마음의 끌림이 없다. 또한 영향 받음도, 취착(取着)함도 없다
사등(四等, 四乘)이란 곧 <법화경>에서 설한 성문승,연각승, 보살승, 일불승을 말한다.
이 사승(四乘)은 성불의 여정에 타고 가는 수레(乘)이고, 각각 원만하고, 빠르며, 멀리 궁극에까지 갈 수 있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육바라밀도 사승에 따라 그러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방편으로 세 가지 승(乘:가르침)을 시설하였으나 실은 모두 일승(一乘)에로 이끄는 법문이다. 이를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한다. 세 가지 승(乘)이 모두 일승으로 구현된다.
일승에서는 세가지 승의 일체 법문이 모두 회통(會通)된다. 걸리거나 장애됨이 없다.
성문이 성문승(聲聞乘)의 법에만 머물러 있다면 걸림이지만, 일승에서는 성문승의 법도 일심(一心)의 공용(功用)이고, 무생(無生)의 결정성(決定性)이다. 방편은 곧 여래의 밀의(密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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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빈방에서 편안하게 잠든다네.
不起法座 安眠虛室
만일 도를 즐김이 이렇게 묶이게 된다면
넉넉하게 노니는 그대로가 참된 것일세.
樂道括然 優遊眞實
억지로 할일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니
없음에 의지해서 저절로 (모든것이) 나타나게 되나니.
無爲無得 依無自出
사성제와 육바라밀이
똑같이 일승의 길이네
四等六度 同一乘路
- 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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