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현각선사의 지관법문(34)

2022. 9. 30. 22:16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3) 3덕(德) : 법신, 반야,해탈

 

[본문]

① 이 때문에 3제(諦)가 하나의 경계이어서 '법신'의 진리가 항상 밝다.

② 3지(智)가 하나의 마음이어서 '반야'의 밝음이 항상 비춘다.

③ 경계와 지혜가 명합하여서 '해탈'감응이 근기를 따른다.

 

[해설]

앞서의 사마타송에서 논한 3덕(德)인 법신(斷德), 반야(智德), 해탈(思德)을 여기에서는 3제일경과 3지일심 그리고 경지명합의 관점에서 하나씩 논한다.

①법신의 3제(諦)는 진제, 속제, 중도제일의제로서 모두 법신의 하나의 진리가 드러난 것이다.

모두 청정한 법신이 드러난 진리이기에 결국 '3제가 하나의 경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② 반야의 3지(智)는 여리지, 여량지, 일체지로서 이러한 지혜는 모두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지혜이다. 그러므로 '3지가 일심'이라고 말한다.

③ 해탈은 경계와 지혜가 하나로 명합하여 더 이상의 능소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경지명합이 일어나는 그 지점에서 근기에 따라 해탈의 감응이 일어나게 된다.

행정은 ① 법신의 3제(諦)에 대해 " 3제의 이름에는 또 다름이 있으나, 경계는 오직 법신의 진리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② 반야의 3지(智)에 대해서는 "3지가 나뉘어 비록 다르지만, 일심이 통합하여 다르지 않다.

천태지의는 '세 가지 지혜가 일상에 있으니, 이것이 묘한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탈에 대해 행정은 법신의 3제, 반야의 3지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를 말한다.

"경계와 지혜가 각각 셋이고 해탈도 또한 셋이니, 본성의 청정함(性淨)과 방편의 청정함(方便淨)이다. 이런즉 하나이되 셋을 논하고, 셋이되 아홉을 논하니, 아홉이 오직 셋이고, 셋이 오직 하나일 뿐이다. 나누고 더하면 드르지만, 그 근본에는 다름이 없다.

<법화경>에서 '모든 것이 하나의 모습(相)이고 하나의 종류(種)이다.

성인이 찬탄한 바로서 능히 청정하고 묘한 제일의 즐거움을 일으키다'고 하였다.

반야의 3지와 법신의 3제에다 다시 해탈의 3정(淨)을 더하여 아홉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결국 근본인 일심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함허는 ①법신의 '3제(諦) 일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연으로 생긴 법을 나는 곧 공(空)이라 설한다. 그것을 가명(假名)이라고 이름하여 또한 '중도의(中道義)'라고 이름한다. 다만 인연에 이 세 의미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3제(諦)가 하나의 경계이다"라고 말한다. 법신에는 상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공(空)이고, 또한 상에 매이지 않으므로 이것이 곧 가(假)이다. 색과 공에 둘이 없으므로 이것이 곧 중도(中道)이다.

비록 공(空)이지만 불공(不空)이고 비록 색이지만 색이 아니므로 비공비색(非空非色)이되 즉중(即中)이다. 비록 즉중이지만 즉변(即邊)이어서 중과 변에 머무르지 않으므로 항상 맑다.

 

함허는 ②반야의 '3지(智) 일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허하면서도 신령하고, 고요하면서도 묘하다.

비었기 때문에 위로 진리와 명합하고, 신령하기 때문에 아래로 기연과 상응하니, 이것이 소위 여리지와 여량지 두 지혜이다.

여리지로써 진제를 비추고, 여량지로써 속제를 비춘다.

여량과 여리는 동일한 본체이니, 이것이 소위 곧 중도지혜를 비춘다.

일심에 이 세 의미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3지(智)가 일상이다'라고 한다.

이어 '반야의 밝음이 항상 비춘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반야가 반야인 까닭은 '고요하되 항상 비추고' '비추되 항상 고요하여 고요함과 비춤이 동시이며

비춤의 작용이 늘 항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야의 밝음이 항상 비춘다'고 말한다.

 

함허는 ③해탈의 '경지명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진리는 지혜 바깥에 있지 않고, 지혜는 진리 바깥에 있지 않다. 능과 소가 둘이 아니므로 '경걔와 자혜가 멸한다'고 말한다.

소위 '진여 바깥의 지혜가 진여를 증득할 수 없고, 지혜 바깥의 진여가 지혜에 의해 증득될 수가 없다'는 말이 이것이다.

우리의 일상의식은 지혜와 경계, 주와 객의 분별에서 출발하므로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해도 그렇게 알려진 것은 그것을 아는 나와 분리되어 있으며 나는 그것을 단지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삼인칭적으로만 알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경지명합'은 아는 나와 알려지는 대상, 지혜와 경계가 분리되기 이전의 무분별지를 말한다. 주와 객, 지혜와 경걔가 분리되기 이전의 경지는 계탁분별하는 제6식의 차원이 아니라 오직 심층마음에서만 자각될 수 있는 경지이다.

마음이 능과 소, 견분과 상분으로 이원화 되기 이전, 념이 일어나기 이전, 바로 경계와 지혜가 하나인 상태에서 아는 것이다.

이어 '해탈의 감응이 근기를 따른다'에 대해 함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근기는 주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3제(諦)와 3지(智)에 각각 그 근기가 있다.

ⓐ 진제는 일체를 없앰이 근기이고, 속제는 일체를 세움이 근기이며, 중도계는 함께 버리고 함께 비춤이 근기이다.

또 ⓑ 여리지는 연을 잊음(忘緣)이 근기이고, 여량지는 비춰살핌(照鑑)이 근기이며,

제일의지는 고요와 지(智)의 불이가 근기이다.

ⓒ 하나하나의 근기를 따르되 해당하는 근기를 돌아보지 않고 지견을 내지 않아 하나하나에 머무름이 없으면, 이것이 소위 '해탈의 감응이 근기를 따름' 이다.

3제(諦)와 3지(智)에서는 각각 근기가 드러나는 모습을 논하고, 해탈에서는 그렇게 드러난 근기를 따라 응하되 그 근기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논하였다.

근기를 따르되 근기를 돌아 보아 매이지 않고 근기에 대한 견해를 일으키지 않음,

곧 머무름이 없는 해탈의 길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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