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7. 21:42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2) 3안(眼) : 혜안, 법안, 불안
[본문]
①천 가지 차이가 같지 않으므로 '법안(法眼)'의 이름이 저절로 선다.
②하나의 고요함이 다름이 아니므로 '혜안(慧眼)'의 기호가 이에 존재한다.
③진리(理)와 헤아림(量)이 함께 사라지므로 '불안(佛眼)의 공덕이 완만하게 나타난다.
[해설]
마음의 아는 능력을 세 단계의 마음의 눈으로 구분하였다.
①법의 눈인 법안(法眼)은 현상세계의 천차만별의 상들을 하나하나 다 아는 눈이다.
②지혜의 눈인 혜안(慧眼)은 현상적 차별상 너머 마음근원의 본성인 진여를 알아보는 눈이다.
③부처의 눈인 불안(佛眼)은 법안이 보는 세속의 다(多)와 혜안이 보는 진여의 일(一)을 함께 보면서 동시에 그 둘을 넘어서는 눈이다.
진여의 일에 관한 앎이 '여리지(如理智)이고, 세속의 다(多)에 관한 앎이 여량지(如量智)'이다.
불안은 이 둘을 모두 포괄하며 넘어선다.
행정은 법안과 혜안과 불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① 법안에 대해 "법안은 속제를 비추니, 크고 작은 것이 훤하게 나뉜다."고 하고,
② 혜안에 대해 "혜안은 진제를 비추니, 염오와 청정이 모두 고요하다"고 말한다.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안에 대해 " <섭대승론>에서 '여리와 여량이 통달하여 자재하다'라고 하였다.
여량은 속제를 비추고 여래는 진제를 관하니, 진리와 헤아림을 함께 잊음을 불안(佛眼)이라고 한다. "고 설명한다.
함허는 "진리 자체의 차원인 3제(三諦: 진제,속제,제일의제)와 진리인식의 차원인 3관(三觀)을 구분하여 논한다. "3제(三諦)는 법(法)에 대해 말한 것이고, 3관(三觀)은 인(人)에 대해 말한 것이다.
법이 이러하므로(法如是), 득입도 이러하다(得入如是)고 한다.
진제는 일체법을 없애고 속제는 일체법을 세우며, 제일의제(第一義諦)는 성(性)과 상(相)이 함께 원융하기도 (俱圓)하고 함께 사라지기도 하니, 이것이 법여시(法如是)이다.
리지(理智)는 진(眞)을 비춰 범성(凡聖)이 함께 가라앉고 량지(量智)는 속(俗)을 비춰 상(相)마다 밝아지며 리량쌍소(理量雙消)는 성상이 함께 가라앉기도 하고 함께 원융하기도 하는 뜻이 그 안에 있으니,이것이 득입여시(得入如是)이다."
-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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