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세계의 해체에 대하여

2022. 9. 6. 21:29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현상세계의 해체(解體)

 

이전에 한 청자(聽者)가 "보이는 것이 거짓이라면 왜 여전히 보이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제 나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할 것입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깨달은 이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단순히 보인다고 해서 실재(實在)하는 것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실재한다고 여긴다면, 

수천의 영성 서적과 위대한 성자,현인들의 가르침들도 모두 거짓이라고 간주되어야 합니다. 

 
만약 내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라고 여긴다면, 
이곳과 다른 곳에서 말한 모든 것이 잘못되거나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되어 의심에 차게 됩니다. 
사람은 그런 의심으로 가득 차서는 안됩니다. 
 

사슴은 신기루를 보고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달려갑니다. 

누가 사슴에게 거기에서 본 물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꿈 속에서 큰 돈을 보고,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거래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사실이라고 간주할수 있겠습니까?

 

만약 솜씨 좋은 화가가 여러 가지 멋진 색채로 된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 속에서 그 이미지에 대해  큰 정념(情念)이 생깁니다. 

 

야간의 아련한 불빛 속에서 많은 여인들과 코끼리와 말의 모습들이 보이며, 

마음은 그것들의 이미지에 매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밝은 대낯에 볼 때는 그것들은 밖에 널려있는 가죽으로 된 포대자루들로만 보입니다.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고 매우 아름답다고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은 나무와 돌로만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많은 사원에는 표정이 풍부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 이름다운 몸매를 가진 여성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느낌이 들겠지만, 거기에는 석회와 모래와 황마가 뒤섞여져 만든 시멘트만 있습니다. 

 

 

신의 열가지 화신에 대한 연극에서 여성처럼 제대로 차려입은 남자 배우들은 눈 표정을 예술적으로 이용하여 아름다운 여성의 역활을 연기합니다. 

 

전체 창조물들(현상세계)은 매우 화려하지만 실재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많은 형상과 활동들이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이 무지(無知)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짓이 진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탐색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시력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 때에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위를 올려다 보면, 우리 주위에서 하늘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모습을 보면 하늘이 위를 향하고 별들이 물 안에서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왕은 조각가들에게 사람과 똑같이 생긴 조각상을 만들게 할 수도 있고, 

그 조각상들은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진짜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눈동자에 반사되고, 이미지는 눈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진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거품방울이 생길 때에 주변의 많은 이미지들이 반사가 됩니다. 

단 몇초만에 거품 방울이 꺼지면, 그 반사된 이미지들은 사라져서, 

그 이미지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손에 거울을 많이 들고 있으면,거울수 만큼이나 얼굴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지만, 

모두 진짜 얼굴 이미지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사되는 진짜 얼굴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어떤 물건이 강물에 떠내려가면, 그 아래 두번째의 상(像)이 물 속에 거꾸로 비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큰 소리가 나면 즉시 메아리 소리도 동반됩니다

 

호수가에나 물에는 동물,새,인간,원숭이, 나무 등 볼 수 있는 많은 물체가 있고, 

육지와 물 속. 양쪽에 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어떤 무기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 두 개의 무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마찬가지로 악기의 현을 연주하면 그 진동으로 인해 두 개의 현(弦)처럼 보입니다. 

 

큰 거울이 있는 홀에 모임이 있는 경우 방의 크기가 두 배로 커 보이거나, 

많은 램프가 켜지면, 하나의 물체에 많은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모양이라는 것이 어떻게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환상(마야)이 마술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있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만약 거짓이 진짜라고 느껴지는데, 

누군가가 "왜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합니까?"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무지(無知)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마술사들의 마술은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것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거짓임이 확실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신화에서도, 미귀의 마법주문은 라마경에 의해 실재처럼 느껴졌는데, 

라마경은 사슴의 뒤를 따라 가도록 속았습니다. 

 

어떤 마귀는 몸의 형태를 바꿀 수도 있고, 어떤 마귀는 여러 마귀로 변환될 수가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피 한방울에서 많은 마귀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그런한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 형상을 취하고 나서 교활한 방법으로 드와르카라는 곳에 들어 갔다가 

크리슈나 경에게 살해 당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교활한 악마 라바나가, 어떻게 라마경의 가짜 머리를 만들고, 

그의 마법으로 아름다운 거짓 수도원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경전에서는 전해 줍니다.  

 

신들의 지배도 미치지 못할 만큼 교활한 방법을 가진 악마의 이야기가 있으며, 

결국에는 원초적인 힘인 샤크티가 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신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마귀의 속임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속임수나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불리는 것을 수행하고, 

악마는 마법을 수행하는데, 여러모로 이상한 신이 행하는 것을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이 환상은 마치 실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탐색를 해 보면 사라집니다. 

비록 그것은 거짓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그 모습은 계속해서 보여집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파괴됩니다. 
거짓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보입니다. 
어떤 말을 하든 마음은 두 가지를 모두 믿지 않습니다. 
 

환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환상의 비실재성에 대해서 깊히 생각해야하며, 

모든 형상은 꿈과 같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만약 환상이 당신에게 진짜라고 느껴진다면, 
이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보이는 것에 대한 환상은 무지(無知)에 기인합니다. 
육체는 이러한 환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분별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보여질 수 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마음으로는 그 환상이 진실이라고 집착합니다. 
이런 식으로 미묘체(마음)는 무지로 가득 차게 됩니다. 
 
무지함을 알고 나서도, 보이는 것이 진실하다고 믿는 것은 무지입니다. 
육체는 무지의 집합체입니다. 
 
"나는 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육체 동일성의 징표로, 
이 개념의 결과로 보이는 현상세계가 실재처럼 여겨집니다. 
 
육체가 진짜라는 개념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실재한다는 확신의 개념이 있는데, 
이 두 가지 견해가 함께 엄청난 의심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 그대가 육체 동일시를 강하게 고수하면서, 
브라만을 알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한다면. 
겉으로 보이는 형상에 대한 믿음이 
궁극의 실재로 가는 길에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면. 
그동안 그대가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러었는지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주제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겠습니다. 
브라만은 '개인적인 '나'라는 관념이 그대로 있고서는 도달될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세계에 대한 믿음은 육체와의 동일시가 되어 있다는 징표입니다.
 
뼈로 이루어진 몸은 살로 이루어진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눈으로 브라만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식도 없을 뿐 아니라, 오직 눈 먼 바보일 뿐입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과 마음에 나타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파멸됩니다. 
궁극의 실재인 파라브라만은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에 있습니다. 
 
파라브라만(절대진아)은 영원한 것입니다. 환상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경전 속에 기록된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육체 동일시의 징표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해서 자신이 누구라는 잘못된 개념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절(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나라는 에고'의 잘못된 느낌을 버리는 것은 오직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만족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6-8)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