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31. 23:04ㆍ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질문자 : 그러면 이런 모든 물음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음의 유용성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슈리 푼자 : 물음은 유용합니다. 의심들을 없애고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면 몸을 던져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숲 속에 있는데 어떻게 나가는지를 모른다면, 그곳의 사람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물음들이 필요없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는 무엇에 대해 물어야 할지를 물어야 합니다. 다른 한 부류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문제들을 해결해서 더 이상 물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사이에 구도자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물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질문자 : 그러나 당신은 분명하게 어떤 탐구도 이미 우리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구는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탐구가 저를 어느 곳으로도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정글 속에 있으며,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알기를 원합니다. 또한 최소한 저를 밖으로 나가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에게로 가는 길을 찾기를 원합니다.
슈리 푼자 :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고 아직 현먕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물음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중간에 있습니다. 당신은 숲 속에 있으며,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숲에서 편치 않으며, 숲에서 떠나는 방법을 찾는 것을 도와줄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땅거미가 지고 있음을 알고 야생동물들에게 먹이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 있음을 압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 늦기 전에 그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곳에서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면, 왜 도움을 구하고 방향을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는, 모르면서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를 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그를 피하십시오.
그의 집에 머물거나 그와 어떤 관계도 맺지 마십시오.
두 번째 부류는 모르면서 그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현명한 사람으로, 알면서 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 부류 중에서 당신이 결국 어느 부류에 들어서게 될 것인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선택하십시오. 첫 번째 또는 세 번째 그룹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이유가 더릅니다.
오직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아채고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겠다고 결심합니다.
현재의 환경에 행복한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즐거움과 쾌락의 숲이 위험한 곳임을 아는 사람들은 탐구자입니다.
물음은 던질 팔요가 있습니다. 물음은 당신의 상태를 드러나게 합니다. 물음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필요가 있고,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지를 드러나게 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물음의 주제가 적절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나 당신 밖의 것들에 대해 묻는다면 당신의 물음들은 끝이 없고 결국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현명한 물음, 분별있는 물음은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이것이 당신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던져야 할 물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물음은 당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답을 줄 것입니다.
이 물음은 당신이 자신에게 던질 수 있는 물음이어서, 당신에게 답을 줄 외부의 어떤 권위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것들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묻습니다.
이러한 핵심적이지 않은 질문들은 모두 과거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읋 수 있디면, 당신은 과거로부터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과거나 당신의 기억들 또는 경험듫이나 지식에서 찾아질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근본젃인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저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들을 계속 던집니다.
사람들은 때론 "신은 누구인가?"라고 묻기도 하지만, 이것조차도 답이 필요한 기본적인 물음들을 다루지 못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 진실한 하나의 질문을 똑바로 직면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는 것은 누구인가?" 이런 것들은 모두가 동일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정확한 답을 찾는다면, 모든 다른 의문들은 끝날 것입니다.
의문들은 끝장 날 뿐 아니라, 모든 현상이 끝날 것이고,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이고, 모든 현현이 끝날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묻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답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답은 시간 너머에 있는 순간 속에서 발견됩니다. 답은 수십 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물음을 던지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일 뿐만 아니라, 당신을 모든 질문의 원천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고요한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듭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해 놓은 채, 마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자유라 불립니다.
즉 모든 의문들로부터의 자유,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태어남과 죽음의 유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새로운) 질문자 : 당신은 우리가 '나'와 동일시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저는 완전히 '지금'에 있다고 느꼈던, 다시 말해 모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현상계가 더 이상 없다는 자각도 없습니다. 저는 가끔 '나'라는 것이 일어나 생각이나 개념에 달라붙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라는 것이 더 이상 생각과 이어지지 않게 되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때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슈리 푼자 : 현상이 나타나고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둘 다 개념입니다. 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있음과 없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질문자 : 그러면 어떤 일어남이나 일어나지 않음도 없을 때 당신은 그것들이 '나'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슈리 푼자 : 있음과 없음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마지막 경험과 마지막 지식에서 그들 둘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파들은 궁극의 실재는 공(空), 텅 빔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공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공과 공의 개념에 집착하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공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형상들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그것 모두는 마음입니다. 공을 만들어 낸 것도 마음입니다. 공은 마음의 투사물일 뿐입니다. 이 공의 투사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우리는 空의 개념에 점점 얽매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마음은 그것이 투사한 것이면 무엇에나 집착합니다. 만약 공이 궁극의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은 당신을 위해 이 상태를 창조하고 당신이 그것을 즐기도록 할 것입니다. 마음은 당신이 이 공을 맛보게 하고 그것에 만족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미리 결정된 목적을 가진 계획입니다. 당신은 마음으로 목표를 계획하고, 다음에는 그 동일한 마음이 그 상태에 들어가서 그것을 맛봅니다.
형태들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놓아두십시오. 공(空)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놓아두십시오.
당신은 현상계의 나타남이나 사라짐 어느 것에도 관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마음의 상태들이 쉬게 될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다른 어떤 곳이며 다른 무엇입니다.
그것은 묘사되지 않고, 묘사할 수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손에 닿지 않는 곳, 손에 닿지 않는 영역에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웃음)
질문자 : 하지만 그것은 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지 않겠지요? 이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어느 날 저에게 와서 그 스스로를 알리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적절한 시기에 찾아오지도 않겠지요?
슈리 푼자 : 당신은 그곳으로부터 어떤 메세지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손뼉을 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며 어떤 메세지도 나오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현상과 공은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현상과 공(空)은 무엇이 밑이 깔려 있는지 모르는 채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빠빠지와의 삿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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