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2. 22:38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3. 관심십문(觀心十門)
[본문]
그 다음 마음을 관하는 10문이다.
1) 처음에는 그 '항상 그러함'(法爾)을 말한다.
2) 그 다음은 그 관하는 본체(體)를 드러낸다.
3) 세 번째는 그 상응을 말한다.
4) 네 번째는 그 교만(上慢)을 경계한다.
5) 다섯 번째는 그 게으름(疏怠)을 경계한다
6) 여섯 번째는 관하는 본체를 다시 드러낸다.
7) 일곱 번째는 그 '옳고 그름(是非)을 밝힌다.
8) 여덟 번째는 그 말(詮)과 취지(旨)를 가려낸다.
9) 아홉 번째는 닿는 곳마다 관을 이룬다.
10) 열 번째는 현묘한 근원이 묘하게 계합한다.
[해설]
이하에서는 마음을 관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하는 것인지를 열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여기에서는 일단 그 제목만을 열거하였다.
행정은 이상 열 단계의 진행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1) 우선 '진제의 진리(諦理)를 보이고,
2) 그 진리(理)에 의거해서 관(觀)을 세우고,
3) 관의 상응을 말한다.
4) 상응하지 못하면 곧 큰 교만과,
5) 게으름에 빠지니,
6) 이 때문에 거듭 관을 세우고,
7) 옳고 그름을 결정적으로 가려낸다.
8) 그런 연후에 지종(旨宗)을 보이고,
9) 가든 머무든 관(觀)을 이룬다.
10) 그 관이 깊게 들어가면 환중에 묘하게 계합한다.
1) '항상 그러함'(法爾)을 말함
(1) 심성(眞如)와 현상(萬法)의 불이
[본문]
첫째로, 그 '항상 그러함'을 말한다는 것은
무릇 마음의 본성은 허하고 통하여서 움직임과 고요함의 근원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설]
여기에서는 앞으로 열 가지 방식으로 관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존재인가를 우선 말한다.
대승은 마음을 만법의 근원으로 본다.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마음은 주객분별, 능소분별, 색심분별, 자타분별 등 일체의 분별을 넘어서되 다시 그 일체를 자신 안에서 포괄하는 전체로서의 마음, 궁극의 마음인 일심 내지 진여심이다.
마음이 전체를 자신 안에 포괄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그 자체 비어 있어 만물과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 현상의 궁극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본래 이와 같이 항상 그러함을 '법이(法爾)라고 한다.
행정은 '법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러함을 '법이(法爾)라고 이름하니, 진여법이 법이하여 연을 따라 만법이 모두 일어나고, 법이하여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본래 저절로 이와 같으므로 '법이'라고 말한다.
진여법은 일체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진여심이다.
일체 만법은 이 진여심으로부터 인연을 따라 생겨난 갖가지 상(相)이며, 만법의 본성은 결국 무자성의 공이므로 공의 마음인 진여심으로 되돌아간다. 일체가 본래 그러함을 '법이'라고 한다.
행정은 이러한 법이의 마음,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횡(橫)적으로 3제(際)에 다하고 수(竪)적으로 시방에 펼쳐지므로 '허하고 통한다(虛通)'고 말한다.
움직이되 항상 고요하고 고요하되 항상 움직이므로 '둘이 아니다'(莫二)라고 한다.
가로 횡은 3제,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지평을 말하고, 세로 수는 10방, 즉 상하와 8방의 공간적 지평을 말한다. 마음은 시공간적 지평의 근원으로서 만법을 모두 포괄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본문]
진여는 사려(慮)를 끊지만, 반연하고 헤아리는 념(念)과 다르지 않다.
[해설]
일체 사고와 존재의 근원이 진여이다. 진여 자체는 일체 대상을 반연하는 사려분별이나 그러한 사려분별의 대상이 되는 차별적 존재를 넘어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진여로부터 일체의 생각인 념(念)이 일어나므로, 념은 진여를 떠난 것이 아니고 모두 진여 안에 포섭된다. 진여 또한 념 바깥에 있지 않고 일체 념을 모두 포섭하므로 념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정은 설명한다. "하택은 '진여는 무념인데, 념이란 것은 진여를 념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진여자체는 사려를 끊은 무념이지만 일체 념은 그 진여로부터 일어난다.
그러므로 념의 궁극 실상은 바로 진여다.
[본문]
미혹한 견해는 어지럽게 치달리지만 그것을 궁구하면 오직 하나의 고요함일 뿐이다.
신성한 근원은 형상화 되지 않지만 그것을 비춰보면 천 가지 차이가 있다.
[해설]
마음은 본래 고요한 진여이다.
그러나 마음이 본래 고요한 진여이고 평등한 불성이라고 해도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또한 수천가지의 현상적 차별상이 빚어져 나온다.
진여로부터 갖가지 념이 일어나고 미혹한 견해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마음의 근원이 교요한 진여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미혹한 생각의 바탕에는 무념의 진여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무념의 진여가 있어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 수천가지 상이한 념들, 미혹한 념들이 일어난다.
행정은 이렇게 말한다. "견(見) 번뇌와 애(愛) 번뇌는 분연하게 치달려 흩어지지만 항상 하나의 고요한 진공이다. 신령한 지혜는 그 모양이 없지만, 근기를 살펴서 모나거나 둥굴어야 하는 바를 따른다.
일체 상이한 념들이 실은 모두 적적성성한 신령한 근원 및 지혜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
<구리시 아치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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