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선사의 참선공부 요령

2022. 7. 15. 21:48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참선공부 

미혹의 상태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찾으려면 먼저 인생의 의혹부터 알아야 한다.

경봉스님은 인생의 커다란 의혹을 네 가지로 나누어 자주 설하셨다.

인생의 4대의혹(四大疑惑)

ㅇ.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모른다.

ㅇ. 부모 태중(胎中)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마음자리가 있었던 곳을 모른다.

ㅇ. 죽은 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ㅇ. 죽는 날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와같은 의혹을 품고 있으면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각박한 현실에 쫓기고  돈과 사람의 문제에 결박 당한 채 죽음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봉스님은 이들 의혹을 해소하고 자기 생명을 찾게 하고자 여러가지 방편을 보이셨다.

염불, 참선, 주력(呪力), 경공부, 선행 등등 - - -.

스님은 그 중에서도 특히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공부를 많이 권하였다.

"참선은 도이며 도는 진리다. 진리는 인생의 자기 생명을 찾는 일이다.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마음을 안주시킬만한 안심입명처(安心立命處)는 어디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삶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라.

잘 입고 잘 먹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사는 목적 마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을 합네'하고 바삐 지내지만,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특별한 자취가 있는가?"

 

그래서 경봉스님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가? 

그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깊히 생각해서 참선수행을 하되,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역력하고 외로운 경지가 눈 앞에 나타날 때까지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경봉 스님은 1천 7백가지 화두 중에서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밝히는 '이 무엇고(是甚麽)'화두와 부모 태중으로 들어가기 전의 본래면목을 밝히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로 많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특히 '이 무엇고'에 대해서는 많은 말씀이 있었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 몸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모르겠다'고 하는 이가 태반이나 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마음이요'라고 답한다. 

그래서 '마음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정신' 또는 '혼'이라고 대답을 하지만, 정신이 어떤 것이고 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역시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니 무엇이 이 몸을 끌고 다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 몸은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생리적으로 철학적으로 따져 봐야 부모의 물건이다. 

결국 남의 물건을 받아 가지고 끌고 다니는 것일 뿐, 이 몸을 운전하는 운전수가 바로 참된 나인 것이다. 

남의 차를 잠시 얻어 타도 운전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 마련인데, 이 몸을 수십년이나 끌고 다니면서 주인공을 모르고 있으니 될 말인가."  

 

경봉 스님은 '마음,정신,혼' 등의 거짓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오로지 지극한 의심으로 이 화두를 타파하라고 하셨다. "밥 먹고 옷 입고 대소변 보고 산 송장 길 위에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가?"

"이 몸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가?"

"이 무엇인고?"

"무엇고?"

"?"

이와같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되 고양이가 쥐잡듯이, 닭이 알을 품 듯이, 배고픈 이기가 엄마 젖을 찾듯이 하면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생각으로 헤아리거나 관법(觀法)조차 용납하지 않는 이 화두를 참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꾸만 '이뭣고 이뭣고'하며 입으로만 외우기도 한다.경봉스님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또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이것이 무엇인고?', 옷 입을 때는 '옷 입는 이것이 무엇인고?', 

걸을 때는 '걷는 이 놈이 무엇인고?'하면서 화두를 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하셨다.

다만, 밥 먹고 옷 입고 앉고 서고 산 송장 길 위에 끌고 다니는 이것 모두가 '이 무엇인고'라는 의문 속에 오로지 함께 들리게끔 해야지, 요리조리 따지려 드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스님은 수도에 전념할 수 없는 재가신도(在家信徒)들에게도 화두를 참구할 것을 권장했었다.

"호흡만 떨어지면 죽게 되고, 죽으면 곧 내생(來生)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전부 남의 다리 긁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마음을 뜻대로 하려면 나를 찾아야 하고, 나를 찾으려면 정신을 통일해야 한다. 

우리들의 생활은 무척 바쁘고 고되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마음을 찾아 보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정신통일을 시도해 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아홉시간 일하고 다섯시간 쉬고 여섯시간 자면 네 시간이 남는데, 이 네 시간을 무료하고 한가하게 보낼 것이 아니다. 네 시간이 다 안되면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조금씩 매일 화두를 들어야 한다. 이것이 계속되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집중되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묘(妙)를 얻게 된다. " 

비록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못하더라도, 정신이 집중되면 관찰력과 판단력이 빨라지고 기억력이 좋아지고 하찮은 생각이 바른 생각으로 돌아서고 몸에 병이 없어지고 맑은 지혜가 나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경영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된다고 하시면서, 재가인들도 참선할 것을 적극 권장하셨던 것이다.

 

바보가 되거라.

화두를 참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옛 조사(祖師)들이 그랫듯이, 스님이 특히 경계한 것도 망상과 졸음과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에 지겹도록 시달려서 스스로 용기를 잃고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님은 참선 수행을 하려면 집에 주춧돌 놓듯이 먼저 큰 원력(願力)을 세워서 대신심(大信心)을 일으키고, 옛 성현(聖賢)들처럼 기필코 내 마음을 깨우치겠다는 대분발심(大奮發心)을 내어야 하며, 

화두에 대한 큰 의심(大疑情)을 가져야만 부처나 조사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하시고, 

이를 먼저 갖출 것을 당부하셨다.

스님은 80 고령에도 밤을 세우며 정진하셨다. 

선방(禪房) 수좌들이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 들어가거나 세 시간만 자는 가행정진(加行精進)이 시작되면, 경봉 스님은 수좌들이 잠을 깨우기 위해 밤새 헛기침을 하시거나 한밤중에 과자 봉지를 들고 선방으로 찾아가시곤 했다. 조는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고, 과자를 나누어 주시면서 간단한 선문답과 격려의 말씀을 들려 주셨다. 

특히 화두 공부가 잘 안되어 찾아 오는 구도자가 있으면 스님은 여러 가지 말로써 무섭도록 불어 넣어 주셨다.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 데서 참사람이 나온다"

"이 공부는 철저하게 생명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쪼록 한 생(生) 나오지 않은 요량하고 마음을 비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무칼로 목을 베듯 하지 말고 단박에 결판지을 일이다."

"쇠가 아무리 굳어도 열이 3천도가 되면 녹는다. 

죽기를 각오하고 주인공에게 맹세를 하면서 공부를 해도 될듯 말듯 한데,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못견디면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졸음이 오면 허벅지를 꽉 꼬집어 비틀어서 잠을 쫓아버리고 용맹을 떨치며 공부해야 한다. "

"망상이 일어나거든, '네 이놈, 네 놈 말만 듣고 다니다가 내 신세가 요모양 요꼴이 되었으니 이제는 내 말좀 들어봐라. 죽나 사나 한번 해보자'하고 용맹을 내어야 한다."

또 어느 때는 피골이 상접하여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으며 새가 머리 위에 집을 지은 것도 모른 채 명상에 잠겨있는 석가모니의 설산고행상(雪山苦行相)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이것을 보아라. 이 분은 이렇게 공부하여 부처가 되셨다"고 하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셨다.

오히려 경봉스님은 망상과 산란과 무명(無明)의 불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다. 

무명의 불이 비록 흉악하고 가치없는 불이지만, 그 불이 작용하여 더욱 뛰어난 대장부를 단련해 내기 때문이다. 

특히 수좌들이 밤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등줄기와 허리, 삼백육십 골절의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프지만, 아픈 거기에서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가 나온다고 하시면서 수행승들에게 격려의 시를 적어 주시곤 했다.

다만 이 한 점 무명의 불이

인간의 대장부를 단련해 낸다네

只箇一點無明焰

煉出人間大丈夫

그리고 만약 이와같은 마음 가짐으로 화두를 들면 언젠가는 일상삼매(日常三昧)를 이루게 된다고 하셨다. 

오고 가고 생각하고 밥 먹고 대소변을 볼 때도 화두를 잡아 꾸준히 나아가면 탐심(貪心)과 진심(嗔心) 등의 모든 망상이 다 쉬어지고, 잡념이 붙으려 해도 붙을 수 없는 일상삼매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신 것이다.

이와 같이 거듭거듭 마음을 채찍질하여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면 마음이 차츰 맑아지는데,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되어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경봉 스님은 이 경지에 이를 때까지 잠시도 공부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됨을 특별히 강조했었다.

그리고 자기의 보배를 곧바로 캐내는 이 공부를 참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우고 업장(業障)을 참회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업장을 녹이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설혹 자기가 잘 했다고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절을 한번 하면 그 때가 바로 업장이 녹아질 때다.

잘못했다고 나무라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가슴에 꽉 차 있으면 업장이 녹아질 수가 없다.

그만 다 비우고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아무 생각없이 절을 하는 그때가 다겁다생(多怯多生)에 지은 죄악이 막 녹아 질 때다"

이유없는 참회는 바보의 행위일지 모르지만, 바보가 될 때 모든 업장은 녹아 해탈과 자유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revival post)

                                                                -김현준 지음, <바보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