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오후 한 때, 내 마음 안의 장미꽃 향기

2022. 6. 30. 20:16무한진인/無爲閑人 心身不二

 



올해도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었다, 

전에는 거의 매일 낮 시간 동안에는 일상을 등산 활동으로 보냈는데,

요즘 몇칠간 비가 와서 산에도 못가고, 

집안에서만 빈둥빈둥 할일없이 시간을 보내던가, 

가만히 정좌하고 앉아서 졸음삼매에 들어 가던가,

혹은 묵은 책을 뒤적거린다든가, 

핸드폰 뉴스나 유튜브 들여다 보며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아니면 전철타고 이마트나 혹은 서점 같은 데를 휭하니 한바퀴 돌며 

뭔가 구할 것도 없으면서 여기 저기 싱겁게 기웃거리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난폭한 집중호우가 쏟아져서 

집안에서 그냥 편안히 쉴까 하다가,

몇칠 동안 별로 운동을 않했더니, 몸이 근질근질 거려서 

폭우가 쏫아지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가까운 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로 작정했다. 

 

집안에서 가장 큰 우산을 골라 잡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억수같이 쏫아져 금방 신발과 바지의 종아리 부분이 젖었다. 

공원에는 억수처럼 폭우가 쏫아지는데도 몇몇 부지런한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스마트 워치를 보니 이제 겨우 5000보 밖에 안 걸었다. 

최소한 하루에 10000보 이상은 걸어야지. 

 

다시 오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다른 코스를 택해서 돌았다. 

비는 한 30분 정도 억수같이 쏫아지다가 잠깐 쉬는 듯 하더니

한 10분 정도 멈칫하다가 다시 억수같이 쏫아지곤 했다. 

가장 큰 대형 우산을 썻는데도 그새 아랫도리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 

 

걸으면서 공원 곳곳에 피어있는 꽃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으나 

비가 와서 제대로 싱싱하게 피어있는 꽃송이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만한 마땅한 소재도 별로 없었다. 

비 내리는 숲 풍경이나 나무, 비맞고 있는 화초들,한산한 산책 길 풍경을 몇 카트 찍었다.

 

그렇게 싱겁게 산책을 하다가 장미 나무가 있는 화단을 지나면서 보니

시들어진 장미꽃이 비를 맞으며 몇 송이가 처량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빗 속에 시들어진 장미꽃의 가련한 모습, 조~치, 한 번 찍어 볼까나!

피어있긴 하지만 거의 시들어서 초최해 보이는 장미꽃 몇송이를 찍고,

다시 마지막에 그중 좀 더 싱싱해 보이는 장미꽃을 정성스레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는 장미향기를 맡기 위해 무심결에 방금 찍은 카메라 사진에 코를 갖다대고 향기를 맡았다.

비에 젖어 시들어버린 장미꽃이지만, 

싱싱한 장미꽃 향기가 코 안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장미꽃 향기릃 맡아보네, 향기가 싱그롭구나, 좋네 !'

 

비가 억수같이 쏫아지는 속에서

우산을 어깨에 맨 채 핸드폰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화단에서 내려왔다.

화단에서 두어 발자국 내려오다가 스스로 깜짝 놀랐다.

"아차 내가 저 피어있는 장미꽃 향기를 직접 맡은 것이 아니라,

카메라 속의 장미꽃 사진의 향기를 맡았구나 ! 내가 착각했나? 치매 초기 아냐?'

"그런데 이상하다. 왜 카메라 사진에서 장미꽃 향기가 나지?"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첩을 열고 

방금 찍은 장미꽃송이 사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봤다. 

아무리 핸드폰 사진에 코를 비벼대며 냄새를 맡아도 

장미향기는 커녕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다시 화단에 올라가서 방금 찍은 핑크색 장미꽃과 다른 꽃송이에도 코를 바짝 대고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아봐도 

방금 전에 맡아 보았던 그런 비슷한 향기가  나지 않았다. 약간의 풀냄새만 나는 것 같았다.

장미나무 주변에서 이리 저리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아무리 찾아봐도 아까 맡아보았던 그 장미꽃 냄새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꽃송이가 비에 젖어 시들어져서 향기를 빼겼는지는 몰라도

그 약간 시든 꽃송이들에서도 아까 맡은 것 같은 싱그러운 장미향기는 나지 않았다. 

 

혹시 내 손에서 장미향기가 났나? 

핸드폰 카바의 앞뒤, 핸드폰 화면과 카메라를 들었던 오른 손 손바닥 손등 손가락, 왼손 손바닥, 손등,손가락을 

아무리 앞뒤 뒤집어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아도 

조금 전에 사진 찍은 후의 바로 그 향기로운 장미향기는 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히 카메라로 장미꽃을 찍고나서, 

장미 향기를 맡을 때는,지금 생생하게 피어있는 장미꽃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이

내가 잠깐 착각을 해서 핸드폰 카메라에다 코를 갖다 댔지만 

그래도 거기서 짙은 장미꽃 향기를 맡았었는데 - - -. 참으로 이상하네 ! 이게 도데체 뭐야? '

 

돌아오는 길로 산책을 계속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결국은 이런 해답으로 나름대로 스스로 핑계 겸 결론을 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장미꽃 향기"를 스스로 맡았던 것이었다고. 

내 마음이 만들어 낸 내마음 안의 장미꽃 향기를 스스로 맡은 것 아닌가. 

 

무심하게 사진을 찍는 순간과 그 뒤 몇 초간은, 꽃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장미의 모양이나 향기가 내 마음 안에 하나로써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핸드폰 카메라에서 장미꽃 향기를 맡는 순간에도 

내 마음 안에서 만든 장미는 그 모양과 향기가 몇초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 카메라에서 장미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장미화단에서 몇 발자국 내려와서 장미꽃과 떨어질 때에는 이미,

내 마음과 하나 되었던 장미와 핸드폰 카메라, 이 모든 것이,

다시 마음으로부터 대상화로 떨어져 나가 내 마음과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화단에서 몇 발자국 걸어서 다시 핸드폰 카메라에다 코를 대고 재확인 했을 때는 

이미 내 마음과 장미향기는 이원화로 떨어져 저멀리 가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전, 사진 찍는 순간에는 "내 마음 안의 장미향기"를 스스로 만들어 맡았던 것이다.

 

비오는 날 오후 한 때에 내 마음 안에서 만든 장미꽃 향기를 우연히 스스로 맡은 것은 

그렇게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이것에 대해서 

'너 만의 착각이나 환상'이라는 핀잔과 비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남들의 견해와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긍정하고 수용할 것이다.

그것이 환상이든, 착각이든, 치매초기든, 마음이 만든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이 진정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 2022. 6,30. 閑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