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61)

2022. 5. 8. 12:3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바가반 :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자기탐구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습니다. 

다른 수단에 의해서도 마음이 가라앉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외관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다시 일어납니다. 

이것이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다른 모든 방법은 에고를 유지하면서 수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많은 의문이 일이나고 궁극적인 의문은 마지막까지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에서는 그 마지막 의문이 유일한 의문이며, 바로 처음부터 그것을 제기합니다. 

자기탐구는 그대로 하여금 아직 진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애들을 제거함으로써 곧바로 진아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명상은 명상을 할 대상을 필요로 하지만, 자기탐구에 있어서는 주체만 있고 대상이 없습니다. 

그것이 명상과 탐구 간의 차이점입니다. 

 

헌신자 : 왜 자기 탐구만을 깨달음에 이르는 직접적인 길로 보아야 합니까? 

 

바가반 : 자기 탐구 외의 모든 수행법에서는 그것을 따르는 도구로서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전제가 되며, 마음이 없이는 그것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에고는 수행의 여러 단계에서 보다 미묘한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결코 (그 자체로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자기탐구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에고나 마음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마치 도둑이 경찰관을 가장해서 도둑인 자기 자신을 체포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탐구만이 에고도 마음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드러낼 수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진아, 곧 절대자의 순수하고 무차별적인 존재를 깨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주해(註解,아서 오즈번) : 자기 탐구의 방법에서는 마음이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을 사람들이 항상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바가반은 그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그것은 마음을 하나의 실체로 당연히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의 존재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이 마음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몰아내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설명햇다. 

 

바가반 : 마음에게 마음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경찰관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그대와 동행하여 도둑을 잡는 척 하겠지만, 아무 소득이 없겠지요. 따라서 그대는 내면으로 돌아서서 마음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주해 : 이 답변과 관련하여, 빨리꼬뚜에서 수년간 사두로서 살아온 자푸나의 슈리 땀비 또라이가 나에게,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서 그 근원을 찾는 것도 마음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데바라자 무달라이아)는 이 의심을 바가반께 말씀드렸다. 

 

바가반 : 물론 우리는 마음을 사용합니다. 마음의 도움을 받아야만 마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이란 것이 있는데 내가 이것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기보다는, 그것의 근원을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마음은 바깥으로 향하면 생각과 대상들을 낳습니다. 안으로 향하면 그것은 그 자체로 진아가 됩니다. 

 

주해 : 마음이 사라진다거나 그것이 진아로 변형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실제로는 동일하다. 

그것은 사람이 목석과 같이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진아의 순수의식이 더 이상 개인화된 마음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는 더 이상 하나의 유리를 통해 어둡게 보지 않고, 선묭하고 눈부신 시각으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바가반 : 마음의 성품에 대한 부단하고 지속적인 탐구에 의해, 마음은 '나'가 가리키는 '그것'으로 변형되며, 그것은 사실 진아입니다. 마음은 어떤 거친 것에 그 존재성을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제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미묘체, 에고,개아 혹은 영혼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물리적 육체 안에서 '나'로서 일어나는 것이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나'라는 생각이 육체 안의 어디서 처음 일어나는지를 탐구하면, 그것이 흐리다얌, 즉 심장(心藏)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근원이며 토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스스로 마음 속으로 '나-나'라고 계속 반복하면서 온 마음을 거기에 고정하기만 해도, 같은 근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 중에서 첫째이며 으뜸가는 생각은 원초적인 '나'라는 생각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거나 시발한 뒤에 이 무수한 다른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다른 말로, 1인칭 대명사가 일어난 다음에야, 2, 3인칭의 대명사(너, 그 등)들이 마음에 일어나며, 1인칭 대명사 없이는 그것들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생각은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날 수 있고, 마음이란 생각들의 다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마음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를 통해서만 가라앉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탐구에 함축되어 있는 통상적인 '나'라는 생각은, 다른 모든 생각들을 소멸한 뒤에 그 자신도 마치 화장터의 장작을 뒤집는 막대기가 타 버리듯이 마지막에는 소멸되거나 소진됩니다. 

 

주해 : 이러한 언급에 비추어 보면 바가반이 가르친 자기탐구는 심리학자들의 내면 성찰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 이미 분명하다. 사실 그것은 실제로도 하나의 심적인 과정이 전혀 아니다. 

내면 성찰은 마음의 구조와 내용을 연구하는 것을 뜻하지만, 

이것은 마음 이면으로 들어가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인 진아를 알려는 시도인 것이다. 

 

바가반 : 어느 경우에나 마음 혹은 에고를 내버려야 하는데, 왜 그것을 분석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합니까? 

'속박되어 있는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음으로써 자신의 참된 성품을 아는 것만이 해탈입니다. 

마음을 부단히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진아 안에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자기탐구입니다. 

수거해서 내버려야 할 쓰레기를 조사하는 것은 아무 쓸데 없는 짓이듯이,

진아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진아를 감싸고 있는 범주들(현상계를 구성하는 단계적 심리 껍질질들)을 내버리지 않고, 그 개수를 헤아리거나 조사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관련하여, 현상 세계를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해 : 마찬가지로 자기 탐구는 정신분석이나 다른 어떤 정신심리적 치료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한 치료는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통일성 있는 인간을 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을 뿐이지, 개인의 인간적 상태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햇고, 자신들이 밟지 않은 길을 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초기 단계의 자기탐구가 정신심리적 치료와 공통점이 있는 것은, 그것이 숨겨진 생각과 불순물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 내는 역활을 한다는 점이다. 

 

헌신자 : 명상을 하려고 하면 다른 생각들이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바가반 : 그렇습니다. 명상 중에는 온갖 종류의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극히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내면에 숨겨 있던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소멸할 수 있습니까? 

생각들은 자발적으로 (저절로) 일어나지만 때가 되면 소멸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해서 마음의 힘을 키우게 됩니다. 

 

헌신자 : 제가 집중을 하면, 온갖 생각들이 일어나서 저를 방해합니다.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가반 :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기 마련입니다.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밖으로 나오려고 하겠지요. 마음이 헤메고 싶어 할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어 진아 안에 고정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헌신자 : 바가반께서는 우리가 탐구를 처음 시작할 떼에는 다른 생각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들은 끝이 없습니다. 한 생각들을 물리치면 다른 생각기 일어나서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바가반 : 생각을 계속 물리쳐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대 자신에게, 즉 '나'라는 생각에 매달리면, 그대의 관심은 그대를 그 한 생각에 붙들어 두게 되고, 다른 생각들은 배제되어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주해 : 자기탐구는 심리학자들이 이해하는 그런 내면성찰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자들이 이해하는 그러한 논변이나 사변도 아니다. 

 

헌신자 : 제가 '나는 누구인가?'하고 생각할 때마다 이런 답이 나옵니다. '나는 이 죽어 없어질 육신이 아니라 의식, 즉 진아이다' 그러면 다른 생각이 갑자기 일어납니다. '진아는 왜(세계로) 나타났는가?' 다른 말로, '신은 왜 세계를 창조했는가?'하는 것입니다. 

 

바가반 :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는 실제로는 에고, 즉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육신이 아니다'와 같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근원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모든 생각을 없애는 수단이 됩니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은 다른 어떤 생각이 들어설 여지를 주면 안 되며,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누구에게 일어나는지 묻고, ,'나에게'란 답이 나오면 다시 '이 "나"는 무엇이며, 그 근원은 무엇인가?'하고 물어서,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발견하는 데 주의를 고정해야 합니다. 

 

                                           -어서 오즈번 엮음, 대성 번역 <바가반이 친히 말씀하신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