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환(幻)이고, 보는 자는 실재인 브라만이다.

2022. 4. 27. 20:47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보이는 것은 뭐든 실재하지 않습니다. 

보는 자만이 실재합니다.

세계에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환입니다. 

보는 자는 브라만입니다. 

그 보는 자만이 실재합니다.

보이는 것을 실재한다고 여기는 자는 사멸됩니다.

실재하는 것을 버리고 거짓된 것을 진짜라고 여기는 것은 멸망합니다.

가장 내면에 있는 그것을 인식하면 여러분이 그것을 성취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명상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됩니다.

'일체를 보는 자'를 숭상하는 사람은 '일체를 보는 자'가 됩니다.

 

만일 '보이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우리 눈으로 그것을 봅니까?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그것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당연시 하십시오.

그것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아가 유일한 실재입니다.

만일 거울 두개가 서로 마주보면, 이 거울들 사이에 있는 대상이 여러 개로 보입니다. 

하나가 그 다음 것으로 계속 이어지는 이 대상들의 줄이 실재합니까?

코끼리 앞의 물에 비치는 코끼리의 반영(反影)을 사려고 누가 거금을 지불하겠습니까?

세상에는 그와 같은 거짓된 창조물이 많습니다. 

화가가 그리는 이미지는 참됩니까?

영리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느라고 바쁩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상상의 유희입니다.

환 속의 거짓된 겉모습에 최면이 걸리면, 여러분도 그것들 만큼이나 찰나적으로 됩니다. 

'보는 자'인 브라만을 알면 여러분이 곧 지고아 빠라마뜨만입니다.

 

이런 힌디어 격언이 있습니다.(성자 까비르의 말이라고 함).

"나는 아무도 갈 수 없는 그 나라에 가서 살았다. 

나는 까마귀였으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카스트와 가문을 잃음으로써 백조가 되었다"

 

삶 속의 온갖 겉모습들은 모두 흙으로 만들어졌고, 그들이 먹는 것도 흙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사계(死界), 즉 '죽음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이 흙을 실재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죽고 나서도 그 송장을 처리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누구도 송장을 사려고 돈을 내지는 않겠지요.

저에게 저 자신의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는 스승이 있습니까?

그런 스승이 존재한다면 흙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와, 결국 너를 먹어치우는 시간을 죽이는 자다. 

나는 나 자신의 성품상 파괴 불가능하다. 나에게 소멸이란 없다"

 

사람들은 과일의 속살을 먹는데, 딱딱한 껍질을 먹으려 드는 사람은 이빨이 부러질 것입니다. 

지고아 빠라마뜨만을 알고, 빠라마트만이 되십시오.

                                                   -대성 번역<그대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