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속박이라는 생각은 오직 무지한 상태에서만 존재한다(3)

2022. 4. 8. 21:45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9강- ③ 

제9강 주제 :자유와 속박이라는 생각은 오직 무지한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본성은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유나 속박이 아니다. 

                                                                - [다스보드 7장 6절 52문장]

 

자신의 본성에 관한 한, 육체와의 관계는 그 자체가 실재하지 않습니다. 

생각 너머에 있는 상태를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브라만에 관한 한, 명상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만약 참나를 보거나 생각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사물에 대하여 사색하면 그 사물을 알 수 있습니다. 

진아의 본성은 마음의 수준까지 끌어내리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자각의 본질을 버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감각으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는 개념을 초월해 있습니다. 

명상을 시작할 때, 삼요소(보는 자, 보는 대상,보는 작용)가  만들어집니다. 

다른 모든 대상과 감각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우리가 진리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은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명상을 포기하면 큰 의심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일시적인 것인지, 

무엇이 참나이고 무엇이 참나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고 숙고한다면, 진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몸도 아닙니다. 

베다, 경전, 달, 태양 - 우리는 이들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그대가 그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나'라는 말은 '내면에서'에서 나온 말이므로, 

당신은 그 내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원인체라 하고, 무지(無知)라고도 합니다. 

물질적 육체보다는 미묘체에 더 많은 행복이 있습니다. 

물론 원인체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만약 모든 것을 버리면 모든 것을 버린 자만이 남습니다. 

남은 자가 주시자입니다. 

이것은 오직 각성(아는 능력). 

즉 절대자각의 징표만이 남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존재-의식-지복'(Sat-chit-ananda)입니다. 

잠자는 동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경험하거나 본 사람은 누구입니까? 

정답은 진정한 '나'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잠자는 동안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존재-의식-지복은 네 번째 몸입니다. 그가 신입니다. 

 

잠자는 동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마음의 도움 없이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가 있다" 에 홀로 그대로 있으면 , 

'내가 있다' 라고 말하는 마음의 변상도 휴식 속에 가라앉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는 볼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그것을 잊으면 그때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래서 그것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사색(생각)하는 수행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