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 현각 선사의 지관(止觀) 법문(27)

2022. 3. 22. 21:14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3. 지혜와 경계의 불이(不二 : 지경명합)

 

[본문]

무슨 까닭인가? 

<① 경계(境)는 지혜(智)가 아니면 요달하지 못하고,

②지혜(智)는 경계(境)가 아니면 생기지 않는다. 

②지혜가 생기는 것은 경계를 요달하기에 생기는 것이고,

① 경계를 요달하는 것은 지혜가 생기기에 요달하는 것이다>

 

[해설]

'무슨 까닭인가?'의 물음은 지혜와 경계가 끝이 없이 무변이며 하나로 명합하게 되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영가집은 비파사나 송 서두에서 이미 논한 구절로써 답한다. 

괄호 < > 속의 문장은 비파사나 송 서두에 나온 문장 그대로이다. 

지혜가 생겨야 경계를 요달하고, 경계를 요달해야 지혜가 생긴다는 것, 

그렇게 '지생'과 '료경'이 서로 순환을 이룬다는 것은 결국 지혜와 경계, 앎과 대상, 나와 세계가 주와 객으로 이원화 되기 이전 근본 심층에서는 그둘이 주객무분별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혜와 경계의 그윽한 하나됨인 명합(冥合)이라고 한다. 

경지명합(境智冥合)의 차원에서 보면 일체 존재는 그 자체 진여이고 반야이다. 

 

행정은 위의 물음과 답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계와 지혜가 끝이 없음을 제시하고는 앞의 문장을 인용해서 통하게 해석하였다. 

여기서 각별히 논해서 어려움을 방지하고 경계와 지혜가 현묘하고 미묘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문> 무정설법(無情說法)에 다시 주와 객(伴)이 서겠는가, 안 서겠는가? 만약 선다면 유익한 모습은 무엇이며, 만약 서지 않는다면 설한다는 의미는 어디 있는가? 

<답> 글(답)이 아래에 있다. 

유정의 인간 뿐 아니라 무정의 우주 만물일체가 진리를 성하고 있다는 것이 '무정설법'이다. 

지혜와 경계가 일여인 차원에서는 유정의 인간 뿐 아니라 무정의 사물들도 모두 진리를 설하고 있다. 

우주 만물 안에 진리가 담겨 있고, 그만큼 반야지혜가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행정은 이하 경계와 지혜를 진리를 설하고 듣는 설법에 있어서의 경계와 지혜로 설명한다. 

경계가 법을 설함으로써 청자에게 지혜가 생기게 한다. 즉 경계가 설법하는 주리고, 지혜가 설법을 듣는 반이된다. 

"경계가 능생이고 지혜는 소생이며, 지혜기 능료이고 경계는 소료이다. 경계가 주(主)이고 지혜가 반(伴)이니, 설법과 청법이 항상 그러하다. 경계가 지혜를 일으킴이 '생'이고, 지혜가 경계와 명합함이 '료'이다. 

설법을 듣는 자의 앎이 지혜(智)이고, 들려지는 설법진리는 지혜의 경계(境)이다. 

설법의 진리가 지혜를 이르키므로 진리의 경계가 능생이고 지혜가 소생이며, 

지혜가 설법을 이해하므로 지혜가 능료이고 진리인 경계가 소료가 된다. 

 

함허는 이에 대해 " 요달(了)로써 능과 소를 논하면, 지혜가 능료가 되고 경계가 소료가 된다. 

생으로써 능소를 논하면 경계가 능이 되고, 지혜가 소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행정이 언급한 '경계가 주, 지혜가 반(伴)'에 대해 함허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스승은 지혜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으니 그가 주(主)가 될만하고, 제자(資)는 그 지혜를 일으킴(發智)으로 인하여 지혜가 일어나므로 그가 반(伴)이 될만하다. 설법은 주(主)에 속하고 청법은 반(伴)에 속한다. 

경계가 주이고 지혜가 반이라는 것은 응당 이에 따라야 할 것이다.  

 

[본문]

<① 지혜가 생겨서 (경계를) 요달하는데, 요달하되 요달되는 것이 없다. 

②경계를 알아서 (지혜가) 생기는데, 생기되 능히 생기게 하는 자가 없다>

 

[해설]

지혜와 경계가 하나로 명합하면 그 둘이 능소로 분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가 경계를 요달하되 요달되는 것이 따로 없고, 

지혜가 생기되 생기게 하는 것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즉 지혜와 경계가 능과 소로서 분별된 차원에서 성립하지 않고 무분별적 하나로서 알려진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지혜가 경계를 객관화하고 대상화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능소분별을 넘어서서 하나됨으로써 아는 것이다. 괄호< > 속의 문장은 다시 비파사나 송 서두의 문장 그대로이다. 

행정은 "능료의 지혜로써 소료의 경계를 벗어나고, 소료의 경계로써 능료의 지혜를 벗어난다. "고 말하였다. 

지혜와 경계가 능소로서 대립된 지혜가 아니라 경계를 포괄하는 지혜가 된다는 말이고, 

소료인 경계가 능료인 지혜를 벗어난다는 말은 경계가 지혜와 대립된 경계로서 머무르지 않고 지혜와 하나가 되어 지혜를 포괄하는 경계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지혜와 경계가 각각 능소의 분별을 넘어 하나로 명합한다. 

지혜가 경계를 요달하되 능소대립으로싸가 아니라 능소분별없이 아는 것이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