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이 없는 것이 바로 걸림없이 아는 것이다.

2022. 3. 12. 19:51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질문 : 눈앞에 생멸이 있거늘 어찌하여 생멸이 없다고 합니까?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은 생겨났다고 할 수 없으니,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기 때문이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소멸하는 것은 스스로 소멸하지 못하니, 인연으로 말미암아 소멸하기 때문이다.

질문 :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은 생겨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은 다른 것에 말미암아 생겨난 것도 아니요,

스스로 생겨난 것도 아니요, 또 원인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또 생겨난 존재도 없고, 만들어 내는 주체도 없고, 생겨난 곳도 없다.

그러므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 앞에 생겨난 것은 허깨비(幻影)이 생겨난 것이니 생겨난 것이 아니며,

허깨비가 소멸한 것이니 소멸한 것이 아니다. 

질문 : 범부는 어찌하여 나쁜 갈래(惡道)에 떨어지게 됩니까?

 : 자아가 있기 때문이며, 어리석기 때문이다. 가정해 보자.

'나는 술을 마셨다'라고 말하면,

지혜로운 이가 '그대는 술이 없을 때, 어찌하여 없는 술을 마시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이가 또 말하기를 '나는 없는 술을 마셨다'라고 하면,

지혜로운 이가 '그대가 말하는 나라는 것은 도데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이가 또 말하기를 ' 나는 죄를 지었다'라고 하면,

지혜로운 이가 '그대가 말하는 죄는 어떤 것인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니 실체성이 없는 것이다.

생겨났을 때에 자아가 없음을 알고 있는 이상, 도데체 누가 짓고 누가 받는다는 말인가?

경에 이르기를 '범부는 억지로 분별하여 내가 탐욕하고, 내가 분노하고,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어리석은 이는 세 가지 나쁜 갈래로 떨어진다'라고 하였으며,

또 경에 이르기를

'죄의 본질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죄에 장소가 없음을 밝힌 것이며, 장소가 없다는 것은 곧 적멸을 뜻한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자기 마음에 자아가 있다고 여겨 상상하고 분별하여,

내가 나쁜 짓을 하였으니까 내가 앙갚음을 받아야 한다든가 생각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나쁜 업이다.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멋대로 상상하고 분별하여 무엇인가 잇다고 말하는 것이 나쁜 업이다.

질문 : 누가 자아를 구제할 수 있습니까?

 : 이법(理法, 본성,진아)이 자아를 구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물질의 형상에 얽매이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며, 

이법을 관찰하므로써 해탈을 얻는다.

만약 물질의 형상을 보고 상상하고 분별한다면, 바로 확탕지옥(鑊湯地獄)과 노탄지옥(爐炭地獄), 또는 우두(牛頭)와 아바(阿婆) 같은 옥졸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니, 곧 눈앞에 생사의 형상이 드러난다.

그러나 만약 법계가 본질적으로 열반임을 안다면 상상하고 분별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니,

그것이 그대로 법계의 본질이다..

질문 : 어떠한 것이 법계의 실체입니까?"

 : 마음 자체가 법계이다. 이 법계는 실체도 없고 또한 한계도 없다.

그 넓고 큼은 허공과 같아서 볼 수도 없으니, 이를 법계의 실체라고 한다.

 

질문 : 어떠한 것이 이법(理法,본성)을 아는 것입니까?"

 : 이법은 감각과 지각을 초월한 것이다. 

마음이 만약 감각이나 지각을 초월한다면,이 사람은 이법을 아는 것이다.

이법은 인식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니,

마음이 만약 인식할 수도 없고 볼 수 없다면 '이법을 보았다'고 한다.

일체의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이법을 알았다'고 하고,

일체의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을 '이법을 얻었다'하고,

일체의 법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이법을 보았다'하고,

일체의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이법을 분별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질문 : 이법은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것이 걸림없이 알고 보는 것입니까?

 : 앎이 없는 것이 바로 걸림없이 아는 것이요,

봄이 없는 것이 바로 걸림없이 보는 것이다.

 

질문 : 이법은 지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를 '깨달은 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이법을 가지고 지각할 수 없는 것이라 하고,부처를 깨달은 이라고 하는 것은,

지각할 수 없는 것을 지각한다고 하며,이법과 더불어 깨닫는 것을 부처의 깨달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힘써 마음의 형상을 살피고 이법의 형상을 보고, 힘써 마음 자리를 살피면,

이것이 적멸(寂滅)의 자리요,무주(無住)의 자리요,해탈의 자리요, 공(空)의 자리요, 보리(菩提,깨달음)의 자리이다.

마음의 바탕 자리는 자리가 없는 자리이니, 법계(法界)의 자리요, 도량(道場)의 자리요, 법문(法文)의 자리요, 지혜의 자리요, 선정의 자리요, 걸림없는 자리이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다.  

 

                                                                                               -보리달마사행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