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7. 21:55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또 묻는다.
"제가 듣기에 성인은 (누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설한다 하였는데 왜 질문을 기다려서 설합니까?"
답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까닭에 약을 설하고, 병이 본래 없는 까닭에 꼭 설하지 않는다. 이것은(지금 대화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설하는 것이다. "
[본문]
또 묻는다.
"타인이 아직 말하지(질문하지) 않았는데 성인이 말한다는 것은 그 병이 아직 발생되지 않았는데도 병에 약 주는 것이니 어찌 꼭 그래야 하겠습니까?"
답한다.
"하늘에 벼락과 뇌성이 울리면 반드시 응함이 있듯이, 약이 있게되면 꼭 (그 약을 먹고 낫게 될 ) 병자가 있는 것이다."
[본문]
또 묻는다
"대성(大聖)이 이미 없는데 어떻게 생하는 연(緣)이 있으며, 어떻게 세상에 보이게 된 것입니까?"
답한다.
"태평의 세(世)에는 상서로운 풀이 인연따라 생한다."
[본문]
또 묻는다.
"대성(大聖)은 이미 멸진(滅盡)함이 없는 것인데 왜 입멸(入滅)함을 보이는 것입니까?
답한다.
"굶주림의 세(世)에는 오곡(五穀)이 인연 따라 멸한다.
[본문]
또 묻는다.
"제가 듣기에, 성인께서는 처음 공(空)에서 생기(生起)하여 (중생구제의) 자비심으로 화생(化生)하셨으며,걸림없고 대통(大通)하신다 하였는데, 어찌 상서로운 풀이 생긴 것과 같겠습니까?
답한다.
" 공이란(공에서 생기하였다 함은) 법신(法身)에서 생기하였음을 말하며, 화신(化身)과 법신은 똑같이 묶임이 없음을 말한다. 화신은 연(緣)에 의지한 묘생(苗生:싹으로 생함)이 아니고, 텅 비어 어디에나 통하게 이루어진 까닭에 걸림없는 (無碍) 생(生)이라 칭한다."
[본문]
묻는다.
"무엇을 비(悲)라고 합니끼?"
답한다.
"단지 화신(化身)으로 사려(思慮)함이 없어 체가 진공(眞空)에 합일되면 인(人)과 사물에 무심(無心)하나, (진공에서) 그것에 (人과 事物에) 묶이면 이를 비(悲)라고 하느니라"
[해설]
깨달음을 성취하여 진공에 합일되니 무심하나, 또한 생사윤회하는 가엾은 중생에 향하게 되니 연민의 마음이 悲가 나온다. 깨달은 후의 보살행이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보살도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무심임을 증득하여 병든 가운데 무심임을 아는 까닭에 어려운 보살행을 헤쳐 달 수 있다.
[본문]
또 묻는다.
"중생은 수도(修道)하여 언제 여래와 비슷한 자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
답한다.
" 깨닫지 못하였을 때에는 설사 항사겁 동안 전전하며 닦는다하더라도 (여래에) 이르지 못한다.
깨달았을 때에는 중생이 곧 그대로 여래인데, 어떻게 비슷한 자리를 얻을 수 있는가 하고 논하겠는가."
[본문]
또 묻는다.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여래를 응당 쉽게 성취할 수 있을 것인데 왜 삼대겁(三大劫)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
답한다.
"(여래를 성취함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
또 묻는다.
"이미 (앞에서 말씀하신바) 도가 바로 그러하건대 왜 오히려 (여래를 성취함이) 어렵다고 하십니까? "
답한다.
"무릇 심(心)을 두 가지로 (生과 滅, 有와 無, 一과 異 등) 일으킴은 쉽고, 두 가지로 전전(展轉)함을 멸함은 어렵다. 행하는 자가 있고 몸이 있다고 봄은 쉽고, 행하는 자가 없으며 몸도 없다고 봄은 어렵다. 까닭에 현공(玄功)을 아는 데 이르기는 어렵고, 묘리(妙理)에 합치하는 것도 어렵다. 부동(不動)이면 곧 진불(眞佛)이고,무상(無相)이 법이 되면 곧 삼성(三聖)이 함께 존중하나니 나만 홀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註: 화엄삼성: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 미타삼성 :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이에 연문(緣門)이 긴 탄성을 내고,
온 시방이 고요하여 아무 소리 없는 가운데 활연대오하였다.
현광(玄光)과 청정한 지혜가 이에 앞의 의문들을 씻어내 버리고,
무시(無始)의 시비(是非)도 이로 인해 영원히 종식됨에 비로소 도를 배운다는 것이 기묘하고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박건주 역주 <절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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