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속박이라는 생각은 오직 무지한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2022. 2. 20. 13:2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9강- ② 

 

제9강 주제 : 자유와 속박이라는 생각은 오직 무지한 상태에서만 존재한다. 

본성은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유나 속박이 아니다. 

                                                                - [다스보드 7장 6절 52문장]

 

속박과 해방을 말하는 사람들은 프라크리티(환상의 성질)만을 이야기합니다

진리나 진아의 본성은 스스로 자명(自明)합니다. 

그곳에서 속박과 해방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속박 당했다고 말하는 이는 이 세속의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이고, 

해방됐다고 말하는 이는 세속의 바다 속의 악어입니다.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생각의 형태로, 돌로 자신을 묶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가지 죄와 행실을 범하여 구속되어 있었으나, 

이제 나는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이는 세속존재의 바다 깊숙한 곳까지 바로 갑니다. 

그는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실재'에 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 - 깨달은 이들(Dnyanis)은 그런 사람들을 바보로 취급합니다 

죄를 지을 때조차도 그는 진아가 되어 있었지만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제 자기를 안다고 말한다면 뭐가 그리 대단합니까. 

이 이원성이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찾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너'의 개념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해방됩니다. 

라우(Rahu)와 Ketu(케투)에서 "후(hu)는 '나(I)'이고 '투(Tu)'는 '너(you)'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개념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여전히 어두운 상태입니다. 

자신의 본성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저 육체를 초월해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몸과 동일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속박 당하고 있는 것은 몸입니다. 

만약 자기가 육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속박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리'에 대한 가장 순수한 지식을 깨달은 사람은 속박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모두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크리티(환상)가 사라지거나 이름과 형태가 끝나면 모든 단어가 침묵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해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말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모든 속박은 자신이 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나'라는 느낌에서 자유롭습니다. 

그에게 속박과 해방은 망상일 뿐이고, '구속'과 '해탈'은 개념일 뿐입니다. 

개념은 결코 실재하지 않으며, 마야(환상)를 이해한 사람은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나는 브라만이 된 후에 요가를 수련할 것이다 - 즉 나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신기루에서 물을 찾으러 가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기루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신기루를 실재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것에 속박됩니다. 

깨어난 사람에게는 꿈이 사라집니다. 

같은 방식으로 깨달은 사람은 환상의 형태인 이 신기루가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