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58)

2022. 2. 13. 22:06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만약 그것을 떠남이 없이 우리가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그 스프라나가 개인성의 느낌을 완전히 절멸하면서 에고, 

즉 '나는 몸이다'는 마치 장뇌의 불길이 꺼지듯 최종적으로 종식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인들과 경전이 해탈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오랜 세월 되풀이 되어 온 감각대상들로 향하는 습 때문에 생각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무수히 일어나겠지만, 앞에서 말한 자기 주시가 점점 더 강렬해짐에 따라 그것들은 모두 소멸될 것입니다. 

'이것들을 모두 소멸하고 진아로서만 머무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심조차도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일어날 여지를 주지 말고 끈질기게 자기 주시를 단단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아, 나는 죄인이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고  한탄하지 않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그 생각마저도 완전히 포기하고 확고히 자기 주시를 해 나가면 그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무욕을 가지고 자기 내면으로 깊히 뛰어들어 진아라는 진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마음 속에 감각 대상들을 향한 습이 있는 한, (그것들이 늘 어떤 미세하거나 거친 세계라는 겉모습을 창조할 것이므로)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가 필요합니다.

생각들이 저절로 일어날 때마다 그것들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탐구를 통해 그것들을 절멸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절멸하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만일 다른 생각이 일어나서 자기 주시를 방해하면, 그 생각들을 완성하려하지 말고,  '이것은 누구에게 일어나는가?'하고 물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나에게'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때 즉시 '생각하는 이 나는 누구인가?'하고 관찰하면 마음(이제까지 2인칭이나 3인칭듫을 생각하던 우리의 주의력)은 그 근원(진아)로 돌아 갈 것입니다. 

따라서 (그 생각들에 주의를 기울일 사람이 없으므로) 일어났던 다른 생각들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거듭 거듭 이렇게 수행하면 그 근원에 머무르는 마음의 힘이 증가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심장 안에 머무르면, 다른 모든 생각의 뿌리인 첫 번째 생각 '나('나는 몸이다', 곧 나의 일어남)'자체가 사라지면서,늘 존재하는 진아(있음인 '나')만이 빛날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나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몸이다, 브라만이다.'등)의 자취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곳(혹은 상태)이야말로 진아입니다. 그것이 바로 침묵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경전의 최종 판정은 마음의 그러한 소멸이야말로 해탈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한 없이 경전을 읽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마음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 내면에서는 탐구하지 않고 경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하여 알 수 있겠습니까? 

라마가 자신이 라마임을 알게 위해 거울을 필요로 합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기 주시를 통해 자신이 '내가 있다'임을 알기 위하여 경전이 필요한가?) 

'자기 자신'은 다섯 껍질 안에 있는 반면 경전은 그것의 바깥에 있습니다. 

따라서 다섯껍질조차도 젖혀두고 내면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탐구해야 할) 자기 자신을, 어떻게 경전에서 발견하겠습니까? 경전 탐구는 부질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포기하고 자기 탐구를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스리 바가반은 말씀하신다. 

 

하나의 비유를 들어 스리 바가반의 위의 말씀에서 묘사한 대로 주의를 자기에게만 고정하는 이 기법을 더 분명히 해 보자. 그러나 진아의 성품은 독특하고 비교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누구도 어떤 비유를 통해서도 그것을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의 지적인 발전정도와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 제시하는 비유의 대부분은 상당히 적절할 수도 있지만, 이 지각력 없는 비유들은 지각력있는 진아를 결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스리 바가반은 영사기의 비유를 종종 들었으나, 다음에 나오는 거울에서 반사되는 햇빛의 비유는 오로지 독자들의 많은 의문을 해소하고 그들의 이해를 충분히 해 주기 위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젖은 희다"는 말을 들은 장님이 " 우리 아이가 두루미를 삼켰다"고 말하듯이, 

이 비유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는 오류에 떨어져서는 안된다. 

[역주 : 장님이야기 : 한번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 경사스러운 일을 아직 기뻐하고 있던 다음 날, 그는 그 아이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슬퍼하면서 물었다. "내 아이가 어떻게 죽었소?" "젖을 먹고 죽었습니다." "젖은 어떤 것이요?" "젖은 흰색입니다." "흰색이란 어떤 것이요?" "흰색은 두루미 같은 것입니다." "두루미는 어떤 것이요?" 소식을 전한 사람은 참다 못해 자신의 손을 두루미처럼 구부려 장님에게 그 손을 만져보게하고는 말했다. "두루미는 이와 같습니다" 그러자 장님이 즉시 한탄하면서 외쳤다."아, 내 어린 아이가 이렇게 큰 것을 먹었으니 죽을 수 밖에 !"]  

 

                                                                             -스리 라마나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