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 미혹되면 참나인 신성을 찾지못한다

2022. 2. 8. 10:32성인들 가르침/기타 불교관련글

 

 

그림자를 실재로 착각한 소견(小見)은 자기가 생겨나기에 앞서 존재하는 영원한 “참된 자아”(眞我)인 신성(神性)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을 여우같은 의심이라 한다(신심명), 

또한 “거짓 자아”(假我)인 “변화하는 육체가 ‘나’(ego)라고 하는 것은 환영(幻影)” 변화하는 육체가 ‘나’(ego)라는 것이 환영(幻影)이라는 것은 현대물리학이 증명하고 있다. 

 

현미경으로 육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관찰하면 입자들의 진동을 볼 수 있다. 

모든 물질은 진동으로 이루어졌고 그 진동의 차이로 온갖 다양한 물질이 존재한다. 

즉 에너지가 진동하여 전자· 양자· 중성자, 이것들이 결합하여 원자, 원자가 결합하여 분자, 분자가 결합하여 물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눈앞의 모든 현상은 분별하는 마음이 지은 환영(幻影)에 불과하며, 오직 진리(One)만 존재한다. 

불경(佛經)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것’(One)을 일상삼매라고 하고, 이것을 계속 참구 수행함을 일행삼매라고 한다(육조단경, 요 17:21).

 

나의 정체성은 몸과 마음의 거짓 자아(ego)가 아니라, 영원한 신(神·빛)인 참 자아(true Self)이다(요 10:34, 도마복음 50).

또한 시간이나 공간 등에 의해 결코 제한받지 않으며, 

근원(아르케)부터 예수와 하나인 절대적인 존재(true Self)이다(人卽是佛, 요 15:27). 

육체는 현대물리학에서 증명하듯 에너지의 파동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 空이며, 마음(정신)이 만들어 낸 꿈과 안개와 같다(三界唯心, 전 1:2). 

 

자기 목숨(ego)을 소멸하고 ‘내면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예수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된 너희 각 사람이 진리를 보았으며, 자기 자신의 마음이 진리의 아버지임을 발견하여야 한다”(예수와 마태와의 대화)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 마음(true Self)은 불교에서와 같이 시공(時空)과 인과율에 얽매이지 않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초월하는 불성(佛性·神性)을 말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위대한 성자(聖者)인 카비르는 “그대 영혼 안에서 신(神·神性)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며, 신과학사상(新科學思想)에서도 “물질은 곧 의식(마음)이며, 또한 물질은 바로 생명이다”고 하나(One)의 진리인 神性(true Self)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마음이 청결하게 될 때 神을 보게 되며(마 5:8), 神과 하나(One)되는 구원을 이루게 된다(막 8:35).

왜냐하면 전체인 神에게서 구별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神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막 12:32). 

“모든 것이 마음이다”(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의미는 모든 것은 생명에너지(One)인 우주적 마음(佛性, 神性)의 나타남 즉 모두가 사실은 마음뿐이라는 것이다(화엄경). 

혜능대사는 세계는 내 의식 또는 인식 안에 있으므로 “마음이 만법의 근원이며, 외부세계는 다만 마음(true Self)이 지어낸다”(육조단경)고 하였다. 

 

현대물리학은 “내 의식 안에 없는 것은 인정되지 않고, 물질의 속성이란 파동 에너지의 속성과 동일함으로, 존재하는 것은 마음으로 지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신(神), 예수와 우리는 본래 하나인데 분리함으로 죄가 되었으며, 거듭남을 통하여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 천국이다(心佛衆生 是三無差別, 요 17:21)고 하는 것은 온 천지에 佛性(神性)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며(막 12:32), “神과 인간의 영(眞我)” 神과 인간의 영(眞我)은 하나(One)로서 같은 것의 두 가지 표현 양식이며, 진리(眞我)를 깨달은 사람이 몸을 떠나면, 마치 항아리가 부서지자마자 항아리 속의 허공은 편재하는 허공(진리)과 하나(One)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개체적 영혼”(ego)은 마음과 같이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One)의 진리”적으로 우주만물은 神(生命) 아님이 없으며(諸法實相, 막 12:32), 

세계는 세계가 아니므로 이를 세계라 부른다(金剛經). 

영적인 눈(慧眼) 으로 세계를 본다면 하나(One)의 텅 빈 허공가운데 묘한 佛性만이 밝게 빛나며(眞空妙有),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이 모두 진여(眞如)이다. 

따라서 전체가 하나임을 깨달은 마음이 반야(般若)이며 열반이다.

신은 본래 하나(One)이다.

따라서 나 자신은 개체성이 아니라 전체성인 신성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고통은 사라진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개개의 거짓 생명(자아)을 부인하고 보편적인 참 생명(영적자아)을 따르라고 말씀하였다(마 16:24).

분별하는 거짓 생명(ego)을 얻고자 하면 참 생명(true Self)을 잃지만, 거짓 생명을 버리면, 본래의 성품인 참 생명(그리스도)을 회복하게 된다(갈 2:20). 

이러한 진리의 깨달음을 위하여 ‘나는 누구인가’를 깨닫는 것은 ‘내가 神(부처)’임을 자각하는 것(요 10:34)이요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것 즉 하나(One)가 되는 것이며, 생명을 얻는 길이다(요 17:3). 

 

‘너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신(神)을 아는 것’(영지주의 복음서)으로,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우라노이스, 속사람)에 계신 분이며(마 23:9), 또한 우리의 근본(아르케)은 예수와 하나(One)이다(요 15:27). 

부처는 중생이 그와 더불어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人卽是佛), 

동방교회의 근본교의도 인간의 신화(神化)이다. 

따라서 진리(神)를 자각하면 ‘여자(귀네, ego)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와 같이 ‘겉 사람’(ego)은 저절로 소멸된다.

사진 픽사베이

‘참된 나’(時空이 끊어진 자리)는 본래 죄인이 아니라 생사(生死)를 초월한 청정심인 신성(神性)으로 예수, 부처와 차이가 없는 절대이다(화엄경).

이러한 우주에 충만한 하나(One)의 신성(神性)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극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요 3:3).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참 생명(神性)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으며(눅 9:25), 바울은 “오호로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 라고 고백하면서 무한한 신성(神性)을 찾고자 하였다. 

 

“신성(神性)의 본성이 사랑임을 깨닫는 것”(거듭남)이 천국을 향하는 길이며(요 3:3), 자신의 본성 우리의 본성과 모든 존재의 본성인 절대 진리의 세계(One)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한 공(空)이다. 또한 모든 존재는 생(生)과 사(死), 유(有)와 무(無)를 초월하여 인연에 따라 연기(緣起)하기에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부감(不增不減)임을 이해하여야 한다(空性). 

 

현대물리학자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소립자(素粒子)들은 다시 수많은(300여개) 소립자들로 상호 형성되어 서로 의존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는 우주의 신비를 밝혀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존재라도 고정된 실체는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수많은 인(因)과 연(緣)들이 상호 의존함으로써, 즉 인연 화합함으로써 비로소 생멸이 결정지어진다는 것이다.

불성(佛性·神性)을 깨닫는 것이 부처(神)가 되는 길이다(見性成佛).

그러므로 진리인 “참된 나”(神性)를 깨닫는 것이 구원이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막 8:35, 요 18:37).

글 구자만/개신교 장로& 신학박사 &신흥지앤티 회장

 

출처 : 휴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