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6. 22:17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3) 공과 연기의 관계
[본문]
법에는 정해진 상이 없어 연(緣)을 따라 모이며,
연(緣)에는 아(我)가 있지 않으므로 본성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공이므로 다르지 않아 만법이 모두 같다.
그러므로 경에서 '색은 곧 공이며 나머지 4온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다.
[해설]
상(相) : 연기 - 연기법에 따라 차별상을 보임
성(性) : 공 - 제법이 모두 같음.
일체 제법이 어떤 모습을 드러내는가는 그 자신의 독자적 본성이나 자성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둘러싼 인연(緣)을 따라 그렇게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드러나는 현상의 모습은 차별적으로 서로 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차별상 너머 일체의 본성은 모두 다 공이며 그 점에서 서로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만법이 다 같다고 말한다.
색수상행식 5온(蘊)을 보면, 색이든 수든 상이든 모두 연을 다라 화합한 것들이기에 모두 공일 뿐이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이고 나머지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한다.
행정은 "법에 정해진 모습(相)이 없어 선과 악이 정(情)으로부터 나온다.
정이 본래 공임을 요달하면 죄와 복에 주(主)가 없다.
천태지의는 '여(如)는 다르지 않음을 말하니 곧 공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고 말한다.
락과 고,복과 죄가 지은 업의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지
개인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이와 같은즉 어찌 유독 범부만이 인연을 따라 생겨나겠는가?
3승의 성인의 과(果)도 모두 인연을 따라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부처의 종자는 연(緣)을 따라 생긴다. '고 하였다.
[해설]
선,악의 업에 따라 고,락이 결정되듯이, 현생에서 범,성의 차이 또한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범부든 성인이든 그 본성은 공으로서 다 같다.
범부가 되느냐 성인이 되느냐는 단지 다가오는 인연에 따라 드러나는 현상적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범부든 성인이든 심(心) 자체는 자성청정심일 뿐이다.
행정은 이렇게 설명한다.
"10계(界)가 인연에 의해 일어나 범인과 상인의 둘로 나뉘니, 6취(趣)는 염오의 연이고 4성(聖)은 청정한 연이다.
염오와 청정이 비록 다르지만 연기인 것은 같다.
마치 맑은 물과 흐린 물이라고 해도 물결이나 습함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염오와 청정, 범부와 성인의 차이는 모두 다 연기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적 차이일 뿐이지,
그 본성의 공성에서는 모두가 다를 바가 없다.
[본문]
이 때문에 온갖 근기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지만 통달한 자에게는 도량 아닌 곳이 없고,
색의 형상이 끝이 없지만 깨우친 자에게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 '색이 끝이 없으므로 반야 역시 끝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해설]
깨달아 통달한 자의 눈으로 보면 우주만물일체가 살아 있는 불성의 드러남이며,
따라서 이 세계는 수없는 부처가 함께하는 도량이다.
삼계유심(三界唯心)이니 일체가 법신의 현현이며,
무한한 색은 곧 무한한 법신과 무한한 반야지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도처가 모두 도량이고 반야라는 것은 곧 모든 중생이 우주자연 삼라만상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혜와 경계가 분리되지 않는다.
지혜와 경계가 주객분별,능소분볋을 너머 하나로 명합(冥合)하여 무한으로 끝이 없는 것이다.
행정은 모든 곳이 도량이고 반야가 끝이 없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종횡의 만법이 진여를 넘지 않으니, 선덕은 '푸르른 대나무가 모두 진여다'라고 하였다.
세계(刹海)가 끝이 없는데 반야가 항상 비추니, 또 '울창한 황금빛 꽃이 반야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색(色)의 존재인 무정(無情)의 대나무가 곧 진여이고 반야라는 말이다.
주객일여의 경지를 말한다.
-한자경 지음 <선종영가집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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