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57)

2022. 1. 26. 22:35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스승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저에게 달을 보여주십시오. 이것이 말씀드리고 싶은 전부입니다.

 

슈리 푼자 : 좋다. 어떤 달을 보고 싶은가? 하늘에 있는 달은 누구나 안다. 그렇지 않은가? 낮 동안에 그대는 태양을 본다. 밤에는 달을 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떤 달을 보고 싶은가?

(그는 스승님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고요히 있다)

 

알았다. 알았어 - - -

 

달은 그대의 내면에 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신선함, 달콤함.

그대는 그대 스스로 이 달을 보아야 한다. 밖에 있는 어떤 대상을 보지 말라.

모든 것이 밖에 있다. 그대 육신조차 그러하다.

만져지고, 보여지며 냄새 맡아지는 것은 모두 거절하라. 

지금 당장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말대로 하라. 보여지는 어떤 것도 보지 말라.

접촉되는 어떤 것도 만지지 말라.

냄새 맡아지는 어떤 것도 냄새 맡지 말라.

그때 그대는 달이 무엇인지 

그대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젊은 나이에 그대가 이곳에 와서 나는 매우 흐믓하다. 

그대는 어떤 이유로 와야만 했다. 무엇인가가 그대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에 틀림없다. 

 

--------------------------

 

방문자 : 은총이 그 자신을 드러내도록 고요를 지키면서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슈리 푼자 : 그대의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라. 대상을 쫓아 밖을 향하지 말라. 마음이 내면으로 향해질 때 거기에는 집착되어질 수 있는 아무런 대상들이 없다.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대는 마치 파도가 바다 속으로 잠기듯 사라질 것이다. 그때 그대는 어떤 대상도, 사람도, 관념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이렇게 한다면, 그것이 그 자신을 그대에게 드러낼 것이다. 이 순간 동안에 어떤 노력도, 어떤 욕망도, 어떤 대상에 집착되지도 말라. 아주 짧은 동안만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면 그대는 결과를 볼 것이며, 그대의 해야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전부다. 그대는 할 수 있다. 

 

방문자 : 내면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 근원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술이 필요합니다. 

 

슈리 푼자 : 그대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바깥 대상에 대한 집착은 고요히 앉는 것도, 명상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치 잠에서 그대가 평화로운 밤을 보내듯

모든 바깥 대상에 대한 집착들을 잠시동안만 피하라. 

바깥 대상에 대한 그대의 모든 집착들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대는 거대한 사랑과 행복을 맛 볼 것이다. 

그때 서서히 그대는 밖을 보기를 멈출 것이다. 

안과 밖이 같아져, 마침내 둘이 존재하기를 그칠 것이다. 

 

이 방의 안팎의 차이는 단지 2인치 두께의 문이 만든다. 

문이 없다면, 안도 밖도 없다. 이 문이 마음이다. 

마음이 마음의 갈망들을 충족시키려 할 때, 그것은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래서 안이 또한 만들어진다. 

마음이 고요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참나가 된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는 전에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이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비록 그대가 그것을 사랑할지라도, 

그대는 무엇이 그대에게 이 마음의 평화와 희열을 주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이 순간에 머문다면 그대는 예전의 기분은 잊어버리고 희열 속으로 녹아들어 희열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쉬운 기술이다.  

 

방문자 : 만약 그 문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쉽습니다. 

 

슈리 푼자 : 이 '만약'이 문이다. 그대가 '만약'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방문자 : 문을 찾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무런 문이 없습니다! 안도 밖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것 모두 입니다! 

 

슈리 푼자 : 그래! 그래! 그것이 이것 모두이다 ! 

 

----------------

 

방문자 : 더 이상 의문들은 없습니다. 저는 고요한 마음과 참나 사이의 끈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고요히 있으면, 배경 속에 숨어 있는 낯선 실체가 보이는 듯 합니다. 이것이 참나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마음의 속임수입니까? 

 

슈리 푼자 : 그대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마음의 속임수이다. 그대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대는 마음 때문에 항상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마음은 속임수를 쓸 것이며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 속임수를 볼 것이고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실재라고 생각한다. 

그대 앞에 실재로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실재가 아니다. 이것을 붓다가 바로 이 5월에 깨달았다. 모든 것들은 마음의 속임수이다. 마음에 속지 않기 위해, 그대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저 고요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의 말은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노력도 하지 말고, 고요히 하라고 나는 말했다. 

나에게 고요히 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그대에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법을 묻는다면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보라고 나는 제안하겠다. 

그대의 얼굴을 그것으로 향하라. 

마음의 대상을 보지 말고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보라. 

마음과 생각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마음은 생각의 묶음이며 생각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가 일어날 때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일어날 때 감각들이 일어나며, 

감각들이 일어날 때 모든 감각들은 감각의 대상들을 제각기 만들어 낸다.

눈은 보기 위한 것이며, 코는 꽃의 냄새를 맡기 위한 것이며, 귀는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며,

혀는 맛을 보기 위한 것이며, 손은 접촉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모두가 감각이 가지는 대상이다. 

실제로 감각과 대상은 같다. 감각이 있을 때, 대상이 거기에 있다. 

이제 감각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천천히 되돌아가라. 감각들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대상-감각-마음. 마음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자아다!

마음과 자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자아가 일어나는 곳은 어디인가? 

이 말은 '나'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지를 뜻한다. 

이것을 그대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나'가 일어나는 곳을 보라. 그곳을 잡아라. 

이렇게 하면 그대는 '나'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곳으로 녹아들 것이다.

그곳은 누구에 의해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 

스승이나 연설가, 종교서적, 붓다의 경전에서도 여태 기술되지 않았다.

 

방문자 : 스승님께서는 '나'와 마음의 근원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탐구를 지속해야 합니까? 

 

슈리 푼자 : 탐구는, 걸으면서, 말하면서, 잠자면서, 깨어있으면서, 꿈꾸면서, 지속되어야 한다. 탐구가 그대의 성품이 될 때까지. 그대가 이 탐구의 근원으로 들어갈 때 그대는 바다 가까이에 있다. 이 탐구를 계속하라. 그러면 그대 편에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수면 중에조차 이 탐구가 진행됨을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을 위해 앉아 있을 때 탐구를 시작하고 일어날 때 끝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사랑에 푹 빠졌을 때 상대에 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지속되듯이, 탐구도 그러해야 한다. 

탐구는 그대가 무엇을 하든, 하루종일 지속되는 두통이나 치통처럼 그렇게 지속되어야 한다. 두통이나 치통의 아픔은 애쓰지 않아도 일을 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지속된다. 깨어 있거나 잠자거나, 마음이 활동할 때조차도 이 탐구를 계속하라. 이 탐구는 호흡처럼 지속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탐구는 호흠처럼 자연스럽게 계속될 것이다. 

 

방문자 : 탐구가 일어나 제가 찾던 것을 발견할 때, 그것은 분명해질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마음으로 잘못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말이 맞지요? 

 

슈리 푼자 : 그대는 머리로 말하고 있다! 내 말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과 머리는 차이가 없다! 그대의 말은 너무나 지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얼굴을 할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정말로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다. 사랑하는 님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감각들로는 이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오직 겉모습의 아름다움이다. 사랑하는 님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은 흔치 않다. 카비르,차이타니아와 미라 같은 분들은 이 아름다움을 본후 세상의 다른 것은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본 이들은 이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그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 속으로 용해된다. 

그대는 이제껏 그 냄새를 맡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가 님에게 가면, 그는 냄새 맡은 적 없는 사람을 가려낼 것이다. 냄새 맡지 않은 꽃을 님에게 주어야 한다. 꿀벌은 안다. 벌은 꽃에 입맞춘다. 아무도 벌이 장미에게서 가져간 것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그 냄새를 맡더라도 그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방문자 :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마음을 완전히 없애야 합니까?

 

슈리 푼자 : 마음을 없애야 깨달음이 가능하다.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대의 평화가 사라지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음에 틀림없다. 실재와 비실재를,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진정으로 가치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그대가 사랑하는 파트너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대는 참나를 위해서만 그 파트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진리이다. 

스승과 함께 머물면서 늘 참나를 명상함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라. 기쁨 역시 마음을 없앤다. 일단 그대가 마음을 묻었다면 다시는 마음을 퍼내지 말라. 대상에 대한 모든 집착들을 버려야 한다. 마음의 고요는 참나에 대한 집착을 제외한 모든 집착들을 버릴 때 온다. 일시적인 대상에 집착할 때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일시적인 대상이나 세상에 대해서는 잠들고, 참나에 대해서는 깨어있어라. 탐구하지 않는 것은 삼사라이며, 대상에 대해 깨어 있으면 참나에 대한 잠이 된다. 탐구는 참나에게 깨어 있음이며, 감각에 대하여 잠드는 것이다. 

생각들은 태양을 가리면서 일시적으로 떠도는 구름이다. 마음이라는 구름을 알아차려라. 마음은 이것 저것을 원하는 갈망이다. 생각들, 나라는 생각조차 떠도는 구름이라는 사실을 알 때, 그대는 더 이상 그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고요할 때, 마음은 더 이상 없으며, 그대 그대는 정말로 깨어 있다. 

 

                                                                - 김병채 옮김 <그대는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