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관론(絶觀論)-14

2021. 12. 29. 22:06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본문] 

또 묻는다. 

"도(道)를 수학(修學)하는 이가 지계(持戒)를 오로지 하여 지키지 아니하고,

계(戒)를 호지(護持)한 위의(威儀)를 행하지 아니하며, 부지런히 정진하지 아니하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며, 술 취한 듯 마음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다니니 그 모습이 마치 폐인과 같은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답한다.

"대체로 이것은 견(見)을 멸(滅)한 행이다. 비록 밖으로는 술 취한 듯 제멋대로 행하는 모습이지만, 안으로 담장 안을(內心을) 살피고 있는지라 버릴 것이 없다 "

[해설]

이러한 행자(行者)가 모두 견(見)을 멸(滅)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그렇다고 하였다. 후대에 갈수록 진짜보다는 흉내를 내거나 거짓으로 견(見)을 멸한 경지에서 하는 것인 양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자가 많아졌다. 리(理)가 본래 일체에 걸림없는데 사(事), 특히 지계(持戒)나 선법(善法), 악법(惡法)에 걸리게 되기 쉽다. 자심(自心)에서 요지(要知)한 대승의 심의(深義) 내지는 리(理)가 철저하게 구현되는 과정에서 본문의 예와 같은 걸림없는 행이 나올 수 있으니, 이는 일체의 견(見)으로부터 걸림없이 자재(自在)한 본래의 심성(心性)에 계합하여 가는 과정이다.

 

[본문]

또 묻는다. 

"이러한 행자(行者)가 다시 다른 소아(小兒)의 견(見: 형편없는 견)을 내었다면 어찌 견(見)을 멸하였다고 하겠습니까? "

답한다.

"단지 이미 견(見)을 멸하였는데 어찌 다른 견이 생긴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비유컨대 물고기가 개천(연못)을 찾았는데 어찌 다시 (연못 찾을) 생각을 하겠는가." 

 

[본문]

묻는다.

" 만약 이러한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버림을 불평한다면 어찌 대사(大士: 보살)라 하겠습니가?"

답한다.

" 손해와 이익은 단지 공명(空名)일 뿐이고, 생(生)과 불생(不生)은 너의 마음이 스스로 집착한 것이다. 지금 네가 말하고, 그러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자생(自生)인가, 타생(他生)인가"

[해설]

마음의 분별이 자생(自生:자체에서 생함)도 아니고 타생(他生: 다른 것으로부터 생함)도 아니어서 본래 무생(無生)임을 일깨우고 있다. 

 

[본문]

또 묻는다.

"만약 안으로 대리(大理)에 통하고 밖으로는 보잘 것 없는 위의(威儀)를 드러낸다면 자타(自他)가 같은데 어찌 법에 손상됨이 있겠습니까?"

답한다.
" 네가 지금 묶여 있어 죽을 지경인데 저 노인이 어린애의 장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도리를 얻는 데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답한다.

"증득해야 알고, 깨달아야 능히 알 수 있느니라." 

[해설]

질문자를 '지금 묶여 죽을 지경'이라 한 것은 오온(五蘊)에 묶여 환(幻)을 좇고 있어 제정신이 아니니 죽게 될 지경이라는 것이고, 노인이 어린애 장난을 함이란 견(見)을 멸함을 이룬 이가 어린애처럼 아무렇게나 행하는 것을 말한다. 견을 멸함을 이룬 이가 행하는 그러한 행위가 아직 오온의 굴레에 묶인 너의 수행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말이다. 증득하고 깨달아야 그러한 행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한 행에 대해 머리 굴려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본문]

또 묻는다.

"이와 같이 견(見)을 멸함을 이룬 보살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

또 묻는다.

"이와 같이 견을 멸함을 이룬 보살도 또한 화생(化生)할 수 있습니까? " 

답한다.

" 어떻게 해가 떴는데 비추지 않을 것이며, 등불을 들었는데 밝지 않을 것인가?"

[해설]

해가 뜨고, 등불을 들었다란 곧 견(見)을 멸함을 이룬 보살의 청정하고 밝은 광명이 온 법계를 두루 비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은 드러나는 것이고, 중생계에 화생(化生)하여 보살행을 한다. 

 

[본문]

또 묻는다.

"어떠한 방편으로 어떻게 크나큰 이익을 얻습니까?"

답한다.

" 사물(事物)을 대하게 되면 명(名)과 사(事)가 다르게 되는데, 마땅히 (그 자리에서) 마음으로 분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연(緣)을 끊어야 비로소 크나큰 이익을 이루느니라."

 

[본문]

또 묻는다.

"경에서 말하는 사유방편(思惟方便)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

답한다.
"모든 부처님은 불생(不生)이다. 단지 마음으로부터 나올 뿐이다. 인연으로 만유(萬有)가 화작(化作)되는 것이니, 법은 본래 이름이 없다."

[해설]

오직 마음 뿐이기에 무엇이 생겼다 할 것이 없다.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기에 인연법이 가능하고, 인연법 그대로가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인연으로 생함 그대로가 무생(無生)이고, 무생의 리(理)가 부처이다. 무생이고 오직 마음일 뿐이기에 모든 존재는 본래 이름과 상(相)이 없다. 

이름과 상(相)에 끌림을 떠나게 하기 위해 경전에서 많은 사유방편이 설해졌다. 그러한 사유방편도 모두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사유방편 또한 얻을 바 없다. 사유방편의 올바르고 깊은 뜻을 알았다면, 즉 마음 뿐임을 알았다면 그 사유방편에도 행함이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념, 당처를 떠나 환(幻)을 좇아가는 것이 되어버린다. 

 

[본문]

또 묻는다.

"저는 왜 불(佛)이라 하고 , 왜 도(道)라 이름하며, 변화(變化)가 무엇이고, 무엇을 상주(常住)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답한다.

"사물이 없음을 깨달음을 불(佛)이라 하고, 일체를 통달함을 도(道)라 하며, 법계가 출현함을 변화라 하고, 구경(究竟) 적멸(寂滅)인 까닭에 상주라 한다."

 

                                                        -박건주 역주 <절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