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들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라.

2021. 12. 12. 18:25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이 몸을 포함한 모든 것은 대상적입니다. 

마음이 대상적인 것들로 향해 있는 한 환(幻)이 지배합니다. 

학생들과 선생은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도 없습니다. 

선생이 없으면 학생도 없습니다. 

 

'나'라는 느낌이 있는 몸 안에서 어떻게 진아의 빛이 빛날 수 있겠습니까? 

만일'여러분'이 그 몸을 점유하고 있다면 신이 들어설 여지가 어디 있습니까? 

'14가지 세계의 왕국'을 얻는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브라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대상들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대상적인 것들에 대해 어떤 욕망도 품지 마십시오.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큰 전쟁에서 주(主) 크리슈나가 말했습니다.

"한 편에는 제가 있을 것이고, 상대편에는 저의 군대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저를 자기 편으로 삼기 원하면, 저는 홀로 그의 편에서 싸울 것입니다.

상대편에서는 전 세계가 저의 군대입니다."

듀로다나는 생각했습니다. 

'크리슈나 혼자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는 이 전쟁에서 그의 군대를 갖는 것이 좋겠다.' 

아르쥬나는 주 크리슈나를 자기 편으로 삼았습니다. 

신, 곧 크리슈나 없이는  - 진아 없이는 - 세상의 어떤 부(富)가 있다 해도 모두 헛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를 갖기를 원하면 세상의 부(富), 세간적 소유물 혹은 이기심이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여러분 곁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는 느낌이 어미이고, 그 뒤에 오는 모든 것은 그녀의 자식들입니다. 

만일 자식들이 사라지면 어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미가 사라지면 자식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곤히 잠드는 까닭은 깊은 잠 속에서는 일체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왕의 잠과 가난뱅이의 잠에 차이가 있습니까? 

가난뱡이라고 잠의 즐김이 어디 덜합니까? 

 

'나'가 욕망하는 것들 전부를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나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살해됩니다. 

무엇을 말하거나 주저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 또한 '나'가 사라지면 사라집니다. 

에고적 지성이 평안해집니다. 

마음은 그것이 기억하는 것만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 겉모습 모두를 거짓으로 간주하면 마음은 죽습니다. 

그것이 다시 일어난다면 저에게 물으십시오. 

하늘을 접을 수 있을지언정 마음을 제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상을 놓아버리면 마음이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깊히 잠든 사람이 "나는 자고 있으니 부디 나를 깨워주시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깨워야 합니까? 

 

밤낮으로 우리의 생각이 실재에 가 있으면 모든 대상은 거짓임이 자동적으로 드러납니다. 

만일 구도자가 자신이 대담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거나 명예를 원하면 그의 진보는 멈춥니다. 

영적인 능력(초능력)을 가지려는 의도나 욕망을 내면에서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능력들에 말려듭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가짜 대담함이기 때문입니다. 

세간적 삶에 대한 내면의 집요한 욕망이 참으로 끊어질 때만 지고아 파라브라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개아는 이 세간적 삶이라는 나무 열매를 먹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막기를 그치면 그는 자동적으로 신(시바)가 됩니다. 

대상들을 즐기는 것에서 떠나십시오. 

대상적인 것들과 접촉을 갖지 말고, 그것들에 대한 갈망을 멈추십시오. 

그러면 즉시 여러분은 시바입니다. 

모든 행위를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듯이 (자연스럽게) 하되, 그런 것들이 실재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대상들의 노예로 살지 마십시오. 

'나는 브라만이다' 하는 느낌을 유지하십시오.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한 어떤 슬픔이나 근심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부(富)가 있다고 오만해지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픔이 있어도 우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이 곧 신입니다. 

 

가난에 영향받지 않는 사람은 신과 같습니다. 

환(幻)은 말합니다. " 네가 원하는 뭐든 주겠다.네가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해도 좋지만, 너는 내 지배하에 있게 될 것이다." 환은 진인, 곧 깨달은 자 가까이 올 수 없습니다. 

진아지를 가진 사람이 참된 부라민(브라만을 아는 자)입니다. 

환이 늘 쫏아오고 있습니다. 

환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목이 매달린 사람들과 같습니다. 

 

영적인 삶은 버터처럼 부드럽지만 또한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합니다. 

삶을 반전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세속적인 데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십시오. 

삶에 비위를 맞춰져 봐야 그것은 파괴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먹어도 그것을 똥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남들의 것을 빼앗아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간적 삶에 신물이 난 사람은 누가 사정을 해도 그것을 돌아 보지 않을 것입니다.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은 마야라는 이 살인자를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마야 자신이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대상적인 것들은 결코 영원히 머무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 해도 말입니다. 

 

등불을 켜서 그 등불에게 빛을 발하지 말라고 하면 그것이 그 말에 따르겠습니까? 

켜진 등불은 물론 빛을 발하겠지요. 

내적인 몸들 모두를 포함한 일체를 신에게 드라는 것을 발리(Bali)라고 합니다. 

육체의식은 주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발리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흰두 신화에서 발리는 난쟁이로 화현한 주(主)비슈누에게 일체를 내놓았던 어느 왕의 이름입니다. 

(역주 : 비슈누는 난쟁이의 모습으로 삼계의 정복자 발리를 찾아가서 그가 가진 땅 중 자신이 세 걸음을 걷는 범위를 달라고 했다. 발리가 허락하자 비슈누는 무한히 큰 몸집이 되어 세 걸음으로 삼계를 모두 밣아 발리가 설 자리를 없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육신, 미세신,, 원인신 등 일체를 내놓았습니다. 

이 세 몸은 비슈누가 세 걸음에 정복한 세 세계입니다. 

그런 다음 발리는 하계(下界)로 갔습니다. 

 

여신 락슈미는 주 나라야나에게 총애받을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녀조차도 여러분 앞에 오게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지만, 여러분은 남들을 돕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그녀를 채용하거나 소유하려 들지 마십시오.

(역주: '부의 여신' 락슈미를 채용하거나 소유한다는 것은 부(富)를 많이 갖는다는 뜻이다. 락슈미는 비슈누의 반려자) 왜냐하면 그러다가 많은 문제에 얽혀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깨끗히 한다는 것은, 

대상들에 대한 모든 생각을 떨쳐 낸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순수해진 마음은 늘 빛납니다. 

그러면 그것은 실재, 곧 순수 존재 아닌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명상이나 내관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일자(一者)가 순수한 브라만입니다. 

 

                                                -대성 옮김 <그대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