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도 없고,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1

2021. 11. 5. 23:01성인들 가르침/슈리 푼자

   - 슈리 푼자와의 면담 : 라마 크라우월, 1993년 럭나우 -

 

방문자 : 쌍카라는 그의 가르침이 반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당신의 가르침을 한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슈리 푼자 : 가르침도 없고,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방문자 : 그러면 우리는 오늘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슈리 푼자 : 그대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어떤 종류의 가르침을 찾아 가려면, 그대는 집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대는 희말라야의 어떤 쎈터나, 아니면 그곳의 동굴에서 살고 있는 어떤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스승을 찾았으면, 그대는 예전의 생활과 가족을 떨쳐 버리고 그 스승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그가 그 자신의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나 아니면 어떤 책에서 읽은 그런 어떤 가르침 뿐입니다. 그러니 그가 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든 간에,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가 그대에게 줄 어떤 가르침도 그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며, 만약 그대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제자라면, 그대는 그것을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그대가 스승, 가르침 그리고 제자라는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으면, 그대는 마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속하는 모든 것은 과거입니다. 만약 스승이 그의 가르침을 어떤 책에서 가져 온다면, 그 가르침은 과거로부터 오겠지요. 제가 하는 것은, 저는 이것을 가르침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침묵하고 계십시오. 어떤 스승도, 어떤 가르침도, 어떤 의도(意圖)도, 어떤 관념도, 어떤 사상도 좇아가지 마십시오.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 가정생활일 수도 있고, 군대생활일 수도 있고, 혹은 사업가일 수도 있지만 - 저는 그에게 똑같은 것을 말해 줍니다. 즉, '침묵을 지키고, 모든 관념과 모든 생각을 피하라'고 말입니다. 

그대는 어떤 가르침을 필요로 합니까? 만약 어떤 스승을 찾아가고 싶다면, 그대는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어디로 가야 합니다. 그대가 벤쿠버에서 럭나우까지 지리적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그대가 무엇을 얻겠습니까? 

 

방문자 : 스승님, 과거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없습니까? 

 

슈리 푼자 : 그대가 과거로부터 유일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은, 과거 안에 머무르는 법입니다. 어떻게 과거를 없애지요? 어떻게 현재 안에 있습니까? 과거로부터 그대는 무엇을 배우려 합니까? 과거는 하나의 묘지입니다. 만약 그대가 묘지에 들어가서 무덤들을 판다면, 그대는 땅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서 무엇을 배우려고 합니까? 

 

방문자 : 당신께서는 '침묵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에게 숨을 쉬지 말라고 요구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저에게 들립니다. 사람은 그의 과거의 산물입니다. <법구경>에서 말하기를, '사람은 그의 행위와 생각이 만들어 온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조건지워진, 즉 과거에 의해 조건지워진 사람들 대부분에게 있어서 과거로부터 도피하고 과거를 부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어떤 말씀은 없습니까? 

 

슈리 푼자  : 전 우주 안의 모든 것이 과거입니다. 창조가 과거이고, 행성과 별들이 과거이며, 창조주 자신이 과거입니다. 신 자신이 과거인 것입니다. 

어떤 힌두 철학자들은, 창조주 브라마가 우주 창조를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우주가 일단 창조되면, 그는 자기가 창조한 모든 존재들을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지주(維持主) 비슈누가 됩니다. 그런 다음 우주를 파괴해야 할 때가 되면 파괴주(破壞主) 쉬바가 나옵니다. 창조, 유지, 그리고 파괴라는 이 모든 개념들은 어디서 나옵니까? 창조주는 누가 창조했습니까? 우리가 이 현상계 내의 어떤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창조주에게로 소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누가 창조했습니까? 

 

방문자 : 스승님, 경전들은 왜 존재합니까? 왜 과거의 위대한 분들은 우리에게 경전을 공부하라고 했으며, 왜 그들은 세간적 지식과 영적인 지식 사이에 구분을 지었습니까?

 

슈리 푼자 : 그들은 우리에게 이런 온갖 책들 - 우빠니샤드, 베다서, 경전,교전 -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어느 날 우리가 그것들에 진력이 날 것이니까, 그런 다음 나중에, 그대는 침묵할 수 있습니다. 베다서와 같은 책들을 읽어서 그대가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침묵을 지키고 ,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방문자 : 자유에의 열망은 자발적으로 일어납니까? 우리는 먼저 권위있는 출처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슈리 푼자 : 그 열망은 이미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미 있지만, 그대가 온갖 관념들로 그것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 베다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 브라마라고 하는 창조주가 있다'. 이런 관념들 말입니다. 

 

방문자 : 이러한 관념들도 어떤 효용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스승들은 그것을 가르칩니까? 

 

슈리 푼자 : 스승은 이런 것들을 가르치겠지만, 그대가 그것을 배우고 나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베다에서는 온갖 유형의 영적인 주제들에 관한 저작들로 가들 차 있지만, 같은 베다서에서 궁극적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시인합니다. 거기서는 말합니다. '네띠-네띠'(neti-neti), 즉 '그것은 이게 아니다, 그것은 이게 아니다'라고,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베다(veda)는 지(知)를 의미합니다. 베다서는 지(知)의 책들입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들입니다.

그러나 베다서는 그 진리를 묘사할 수 없다고 아주 정직하게 시인하고 있습니다. '네띠-네띠',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그대가 베다서의 이 아주 정직한 진술을 믿는다면, 그대는 베다서에 씌어져 있는 어떤 것도 진리라고는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말하는 것과 부합됩니다. 

(탁자 위의 당신 앞에 있는 두 개의 금속제 컵을 가리키며)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컵들 사이의 공간을 가리키며) 이것 사이와 저것 사이, 이것 저것(탁자 위에서 두 컵을 치운다) 

자, 이제 '이것'이 사라지고 '저것'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무엇이 있습니까? 

 

방문자 : 아무 것도 없습니다. 

 

슈리 푼자 : 아무것도 없지요. 이 아무 것도 없음(無)은, 이 컵들이 있기 전에는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방문자 : 그야 물론, 있었습니다. 

 

슈리 푼자 : 있었지요. 그것은 이 컵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것은 컵들이 있든 없든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컵들이 나타났지만, 무(無)는 방해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컵이 무엇입니까? 이름과 형상입니다. 

 

방문자 : 알겠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한 아무리 많은 행위도 우리를 과거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행위는 무지(無知)를 상대할 수 없고, 오직 지(知)만이 무지를 상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까? 이 무지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무지는 개아(個我) 안의 어디에 특정하게 내재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항까라(에고) 그 자체의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마나스(생각하는 능력) 안입니까. 아니면 찌따(마음) 안입니까? 당신께서는 속박이 무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무지는 개아 안의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만약 저의 참된 성품이 항상 자유롭다면, 만약 제가 순수의식 그 자체라면, 어떻게 개아가 속박되게 되었습니까? 이 무지는 어디서 일어납니까? 

 

슈리 푼자 : 그대는 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무지가 아닌 것이 지(知)라고 했습니다. 그대가 보지 못할 때, 무지가 있습니다. 

 

방문자 : 그 무지가 우리 안의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님?

 

슈리 푼자 : 그것은 그 같은 근원에서 일어납니다. 

 

방문자 : 지(知)와 같은 근원 말입니까? 

 

슈리 푼자 : 지(知)가 일어나는 곳에서, 거기서 무지 또한 일어납니다. 다른 곳이 없습니다. 다른 어디서 그것이 일어나겠습니까? 

 

방문자 : 예, 그것이 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아할까라에서 옵니까, 아니면 마나스에서 옵니까? 찌다에서 옵니까, 아니면 붓디(지성)에서 옵니까? 

 

슈리 푼자 : 존재하는 것은 뭐든지 하나의 근원에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그것과 별개의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재(實在)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여야 합니다. 두 가지 실재, 즉 하나는 어느 하나의 근원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것의 근원인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체는 그 하나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데이비드 가드먼 엮음, 대성 옮김 <빠빠지 면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