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은 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幻像)이다.

2021. 8. 26. 21:34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방문자 : 사람이 구속받는 까닭은 시간과 공간의 얽혀있음 때문이라고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구속을 낳는가 하고 늘 생각해 보았지만 이해가 안갑니다.

 

마하리지 : 먼저 우리가 말하려는 것에 대해서 명확히 해 봅시다. 선생이 말하는 구속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무엇에 구속받는다는 건가요? 선생이 실재라고 생각해 온 이 세계에 만족한다면 선생이 말하는 구속이 어디 있을까요? 

 

방문자 : 세상이 실재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제가 세상에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뚜렷한 목적도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지만, 저는 그러한 삶 그 이상의 것이 틀림없이 있다고 갚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서 삶 그 자체가 구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하리지 : 선생이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선생이 어렸을 때는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워하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점차 성장하여 두 마리의 코끼리와도 씨름할 만큼 힘이 센 젊은이가 되었을 때는 이 세상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중년이 되어 약간은 주름지고 힘도 예전 같지가 않지만 선생은 자신을 성공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며 훌륭히 커준 자식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앞으로 10년이나 20년쯤 후에 선생의 모습은 어떨까요? 지나온 선생의 모든 모습과는 전혀 다를 겁니다. 

이 많은 선생의 모습 중에 어떤 것을 진정한 선생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봅시다. 이러한 숱한 변화 가운데서도 변한 적도 없고 변하지도 않을 특별한 실체가 있습니까? 

 

방문자 : 선생님의 말씀대로 저 자신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나"라는 단어를 쓴 것 같습니다. 제가 저라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하리지 : 그러나 그 숱한 세월의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계속되는 의식, 선생이 "존재한다"는 의식입니다. "나는 존재한다(I am)"는 이 의식 또는 느낌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생의 지속적인 모습입니다. 선생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 사실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필요없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선생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선생은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겁니다. 선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겠어요? 

 

방문자 : 잠잘 때나 의식이 없을 때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마하리지 : 바로 말했군요. 이제 좀 더 넓혀서 생각해 봅시다. 선생이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첫순간에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식의 존재감 아닙니까? 개인적인 사람으로써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I am)" 는 그 존재감 말입니다. 

 

방문자 : 맞습니다. 제 몸과 주변의 것들을 보게 될 때 비로소 개인적인 내가 존재하게 됩니다. 

 

마하리지 : 선생이 사물을 본다고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선생의 감각들의 외부, 즉 선생의 육체 바깥에서 온 자극에 대해 반응한 겁니다. 그리고 선생의 감각들이 받아들이고 마음이 해석해 낸 것은 의식 속에서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느낌은 하나의 사건으로 세워지고 이것은 시간이 지속됨에 따라 공간에 명백한 실재로 확장되어 버립니다. 이렇듯, 모든 현시(顯示)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불리우는 그 두 가지가 아주 강하게 결합된 것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과 공간의 얽힘 없이는 어떠한 것도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내말을 잘 따라오고 있어요? 

 

방문자 : 선생님의 말씀 잘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개체로서의 제가 속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마하리지 : 그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모든 "존재"란 대상화가 계속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서로 서로의 대상으로만, 우리를 인지하는 의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겁니다. 깊은 잠 속에서처럼 객관화가 중단될 때에는 실재한다고 믿던 우주는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이 자신을 전체에서 분리된 한 개인으로 생각하는 한은 전체적 실상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을 세계의 종속적 도구라고 생각하여 분리된 개인이라고 느끼는 것은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을 나타내는 매개물에 불과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나 느낌 혹은 지각은 의식 안에서 반영될 뿐이며, 그것이 계속되면 지속이라는 환상을 낳습니다. 개인적 나라는 것은 단지 지속이라는 이러한 환상으로 비롯된 기억 때문에 존재하는 듯한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라는 추측을 현재에 투사시켜 마치 개인적인 나가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이지요. 과거나 미래가 없는 찰라로 선생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개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해 보세요. 그리하여 선생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세요.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없습니다. 기억이나 추측조차도 현재, 바로 지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정신적 상태는 관찰 아래 있습니다. 

 

방문자 :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 고요히 앉아 완전히 새로운 생각의 방식을 완전히 받아들이도록 해야겠습니다.

 

마하리지 : 의식을 따라 흐르면서 지각할 수 있도록 현시를 만들어 내는 시간과 공간이 어째서 범죄자가 되는지 이제 이해하겠어요? 선생이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존재를 의미하는 "나는 존재한다(I am)"입니다. 

분리된 개체로서의 "나"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구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찾고자 하는 선생의 모든 노력을 놓게 할 것입니다. 선생이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억과 예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상의 것임을 깨닫게 될 때, 선생의 탐색은 끝나고 허환으로써 허환으로 가득한 지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초연하게 될 것입니다.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담배가계의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