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7. 22:40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자유롭고 싶습니다.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슈리 푼자 : 마음을 수술하여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찾아내라.
마음이 아닌 다른 것을 수술한다면 그대는 평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내라.
외과의사처럼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라.
마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아내라. 마음에 어떤 병과 종양이 있는지 알아보라.
마음을 바라보는 행위로 그렇게 하라. 마음은 오직 생각이니, 생각을 바라보라.
생각을 바라보는 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를 수술해야 한다. '나'가 오는 곳을 찾아내라. 이것이 그대가 원하는 충고이다.
온힘을 다해, 사력을 다해 '나'가 나오는 곳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면 그대는 성공할 것이다.
방문자 : 이런 수술을 하기 위해 고요해지는 법은 무엇입니까?
슈리 푼자 : 나는 고요할 수 있는 눈과 그렇지 못한 눈을 구별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원숭이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는 신성한 눈을 가지고 있다.
신성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고요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암시다.
그대의 활동들을 그만 두어라. 이것은 사랑,행복 , 니르바나라고 불린다.
삿상에서 이렇게 머무르며 삿상 밖에서도 이처럼 머물러라.
그대의 마음이 삿상에 오기를 원했다는 것에 대해 그대의 운명의 별들에게 감사하라!
이것으로 아주 충분하다. 감각들에 집착한 마음은 고통이지만, 감각들에 초연한 마음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삿상에서 마음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지켜보라. 경계하라.
수백만년 동안 마음이 그대를 통제했으므로 마음을 지켜보는데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대의 차례이다. 그대는 마음이 활동하는 것을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항상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것은 고요와 자유를 오게 할 것이다.
어렵지 않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
노력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
주의 깊어라.
그러면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것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하는 데는 시간이 들지 않는다.
자유는 항상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를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생각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이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마음과 함께
마음이 시작된 곳인 마음의 근원으로 뛰어들어라.
그때 그대는 항상 그대가 자유이었음을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고 있다.
감각들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깨어 있다.
진정으로 깨어 있을 때
깨어있음도, 수면도, 꿈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이뜨만이며
이해되어질 수 없는 그것이다.
그대는 그것 그 자체이다 !
자신이 묶여 있거나 묶일 수 있다는 생각은
다름 아닌 두려움을 환영하는 것이다.
삿상에서 이 두려움을 벗어 버려라.
그대가 죽음과 탄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라.
그대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은 실재가 아니다. 고통은 잠이 들면 사라지고 깨어 있거나 꿈 상태에서는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면 상태에서는 아무런 고통이 없다. 거기에는 대상도, 주체도,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있는 곳에는 고통도 있다.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에 가까이 가지 말라. 그냥 생각하지 말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궁극적 본성인 희열에 들게 될 것이다.
시간과 마음은 같은 것이다. 마음을 멈추어라.
그러면 그대는 본성인 희열의 자유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하라. 생각하지 말라. 노력하지 말라.
방문자 : 고요함을 혼란시키는 '나'를 어떻게 정말로 놓아버릴 수 있습니까?
슈리 푼자 : 삿상에서 그대는 날마다 '나'를 놓는 방법을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우리는 이 일, 즉 '나'를 놓는 방법을 작업해 왔다.
'나'가 일어날 때 '나'는 틀림없이 어딘가로부터 일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그대는 이 '나'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물론 이 '나'는 몸을 의미한다. '나'는 간다. '나'는 온다.
'나'는 고통받는다. '나'는 죽어 간다. 이런 '나'는 이름과 모습을 지닌 몸이었다.
그대가 이 '나'를 놓아줄 때 그대는 진정한 '나', 그대 자신의 진정한 의식을 발견할 것이다.
'나'를 놓아버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내라.
방문자 : 그것은 '나'를 환대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나'가 누구인지 묻는 것은 '나'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까?
방문자 : 아니다. '나'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내라. '나'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낼 때 그대는 고요해진다.
이것이 '나'를 놓아버리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의 얼굴 표정으로 알 수 있겠다.
'나'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내라. 대답해 보라. 안경, 귀, 발, 셔츠, 바지인가?
그것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대 내면으로부터 일어남에 틀림없다.
방문자 : '나'는 자아로부터 나옵니다.
슈리 푼자 : 자아는 몸에 불과하다. 몸이 없을 때 아무런 자아도 없다.
태어나기 전에 자아는 없었으며 60년 후에 자아는 없을 것이다.
'나는 몸이다'를 아는 순간부터 자아가 시작된다.
그러면 사물이 그대에게 속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속한다. 이것이 자아다.
이 자아는 그대에게 휴식, 평화, 사랑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자아가 사라질 것이다. 몸이 사라질 때 자아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지금의 화신과 더불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자아의 충족되지 못한 갈망들이 있는 한 자아는 다시 올 것이다.
이 자아는 새로운 몸을 입고는 주어진 곳에서 못다한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이것은 수백년 동안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것을 끝내려면 " '나'가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라고 질문하라.
경계를 늦추지 말고 주의 깊게 살펴 보라.
그대의 얼굴이 전에는 향하지 않았던 어떤 곳으로 돌려졌다.
얼굴은 일반적으로 사람, 대상, 장소로 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그대는 언젠가 잃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찾아내라.
어떻게 영원한 것을 찾을 것인가? '나'의 근원을 찾아라!
그렇지 않으면 감각들은 밖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안을 보라. 그대가 집착하고 있는 사람, 장소, 대상 이 세가지를 그대는 보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대는 이것을 단 한 한순간에 해야한다. 이 순간 동안에 '나'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질문하라. 이해하기도, 산을 들어올리기도, 노력해서도 안된다. 그대는 생각조차 해서도 안된다.
방문자 : 그러면 제가 이 질문을 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슈리 푼자 : 노력하는 것은 머리에 200파운드의 짐을 이고 인디라나가르에서 하즈랏간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어떤 짐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냥 고요히 하라고 말할 뿐이다.
고요하기 위해 무슨 노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어떤 것을 말하려면 그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로 가서 그대의 기억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고요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는 노력이 들지 않는다.
방문자 : 지적으로 이해해서 얼마동안 그렇게 해왔습니다. 거기에 고요함과 존재함을 어슴푸레 느꼈지만, 이것이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슈리 푼자 : 그대는 얼마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나는 활동하지 말라고 말했다 !
얼마 동안 그렇게 해왔다는 것은 과거를 의미한다. 마음은 과거이다. 지성은 과거이다. 모든 것이 과거이다.
그대가 하는 모든 말도 과거이다. 관계는 모두 과거에 속한다. 이 '나'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내라!
이것은 그대가 어떤 다른 곳을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내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보라. 모든 생각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닌 것을 그대는 생각할 수 있는가?
과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을 나에게 말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순간 동안 과거를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때 이제까지 말하지 않았던 어떤 다른 곳에 그대는 놓여질 것이다.
방문자 : (그는 미소를 지으며 침묵 속에 앉아 잇다)
슈리 푼자 : 이것이 순간이다! 이것이 그대가 놓치고 있었던 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대는 미소짓고 있다.
이는 그대가 과거, 마음, 지성, 감각들과 관련을 맺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차이를 만든다.
이것이 여러 삶 동안 오고 가는 윤회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을 값싸게 얻을 수 있는데, 왜 흥정하지 않는가?
그대는 미소지었을 때는 마음이 없는 상태다. 마음이 없을 때 그대는 행복하다.
잠을 잘 경우도 그대는 마음을 수면상태로 가져가지 않는다. 마음을 밖에 두고서 그대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마음과 함께 한다면 그대는 잠 잘 수 없다. 마음은 과거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그대는 과거의 상태를 이미 가졌다.
이제 그대는 쉬고 싶어한다. 마음과 지성이 하루종일 활동하여 그대는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잠을 잔다.
이 평화와 휴식의 잠자리에 들어가려고 그대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그대는 "나는 잠자고 싶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때 그대는 평화와 사랑 속에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항상 평화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 평화를 새벽 5시 1분으로 가져 오라.
노력하지 말고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은 채 평화를 가져오라.
시간이 있는 곳에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11시 이후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아 보라.
- 슈리 푼자 지음, 김병채 옮김<그대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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