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55)

2021. 7. 9. 20:28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경청하기 -- 

 

질문자: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최고의 방법은 침묵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전 이점이 궁금한데요. 혼자서 침묵하는 것보다 깨달음을 얻는 사람의 현존에서 침묵하는 것이 더 낫나요? 만일 그렇다면 왜 그런가요? 

 

라메쉬: 기본적으로 구루가 필요한지를 묻고 싶은 게 아닙니까? 

 

질문자: 그 점도 있긴 하지만, 깨우친 존재와 같이 있을 때 일어나는 침묵이 가치가 있어 보이네요. 

 

라메쉬: 침묵의 가치, 즉 침묵 그 자체가 깨달음이 일어나는 궁극적 지점이지요.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부재한다는 뜻이죠. 현상세계에 나타나는 "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본체는 나타날 수가 없지요. "내"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침묵이고 침묵이 깨달음입니다. 

 

질문자: 스승에게서 비롯되는 그런 가치를 받아들일 수가 있나요? 말하자면, 완전히 빠져드는 거죠. 

 

라메쉬: 그럼요. 제가 말했듯이 완전히 경청한다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러면 경청을 통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이 꼭 한 특정한 몸-마음 구조체를 통해서 일어나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수용성이 생겨나고 이해가 일어나고 신의 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지요. 신의 의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나"의 의지는 자동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나"의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은 "나"의 부재를 뜻할 겁니다. 이렇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수평적으로 생각해 봤지만 실상 이해가 일어날 때는 이 모두가 하나의 일이지요. 수직적으로 그냥 하나의 일입니다. 수평적으로 보면 하나의 일이 다른 하나의 일을 이끌어내듯이 보이죠. 그래서 수직적으로 이렇게 신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갑작스러운 일과 완전한 항복과 침묵은 모두 하나죠. 이런 까닭에 깨달음은 늘 갑작스럽고 고요하며 수직적입니다. 

 

-- 제자가 깨닫게 될 때 -- 

 

질문자: 제자 자신이 몸-마음 구조체와 동일시하기를 멈추게 되면 제자의 선생, 즉 구루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라메쉬: 제자와 구루 사이에 달라질 것은 전혀 없어요. 둘 다 같은 상태에 있지요. 인도에서는 이런 관계가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 지속되지요. 하지만 제가 읽고 들은 바로는 중국에서는 제자에게 깨달음이 일어날 때 구루가 제자의 눈을 응시하고 이 상황을 보고 둘 다 웃기 시작한다더군요. 둘이 부둥켜 안고 웃고 때로는 바닥에 때굴때굴 구는다죠. 둘 다 이미 거기에 있는 뭔가를 얻으려고 그 무언가에 도달할려고 쏟아부었던 그 모든 노력이 터무니 없었다는 사실을 깨우친 거죠. 인도에서는 아직 이런 일은 한 번도 못 봤어요. 격식이 남아있죠. 

 

질문자: 바닥에서 때굴때굴 구르는 것은 못 보셨다고요? 

 

라메쉬: 격식이 남아있죠. 

 

질문자: 마하라지께서 돌아가실 때, 그분은 몸과 동일시하는 일이 이미 오래 전에 멈추지 않았습니까? 

 

라메쉬: 독립된 존재로, 분리된 개체라고 동일시하던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죠. 

 

질문자: 그렇죠. 그래서 위대한 죽음 이후에, 그 조그마한 죽음은 신경 쓸만큼 큰 일이 전혀 아니라고들 하는군요. 

 

라메쉬: 물론 그렇죠. 

 

-- 스승을 떠나 보내기 -- 

 

질문자: 선생님 자신과 마하라지 사이의 분리에 관해서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라메쉬: 분리란 없어요. 분리는 마음 속에 있지요. 

 

질문자: 선생님께서 자신을 마하라지에게서 분리시켰다는 개념이 있던데요. 이런 개념이 사라진다든지, 분리됨이 떨어져 나간다든지 하면서 어떻게든 통합되는 경험을 하셨습니까? 

 

라메쉬: 그럼요. "나"와 마하라지 사이의 분리 뿐만이 아니라 이 "나"와 다른 모든 것 사이의 분리죠. 

 

질문자: 그 둘 다 똑 같지 않습니까? 마하라지가 더는 아니라는 것처럼요? 개념에게 더는 큰 힘이 나머지 자연세상보다 없다는?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마하라지의 제자로서 자신을 동일시했다면 구루는 아주 강력한 정체성을 갖겠죠.

 

라메쉬: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군요. 저는 구루라는 개념이 마지막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느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죠. 구루에 대해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죠. 이 관계가 신성하게 시작될 때는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충분하지 않아요. 구루를 자신과 분리된 어떤 것으로 여기는 개념이 사라져야 할 마지막 장애지요. 자라투스트라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을 보면 이런 점을 볼 수 있어요. "이제 무슨 말을 들었든지 모두 잊어버려라. 내가 한 모든 말을 잊어버리고 이것만 기억하라. 자라투스트라를 조심하라!" 

 

-- 마하라지 -- 

 

질문자: 언제부터 어떻게 사람들이 니사르가다타를 찾기 시작했나요? 

 

라메쉬: 모리스 프리드만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크리슈나무르티와 30, 40년간 지냈고 라마나 하라리쉬와도 수 년 동안을 지냈는데, 어떻게 해서 니사르가다타와 함께 있게 됐죠. 프리드만씨가 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죠. "제가 실수했던 것처럼 니사르가다타를 낮추어 보는 실수를 하지 마세요. 그분의 검소한 겉모습과 투박한 말투에 속지 마세요. 속지 마세요. 전 실수를 했지만 다행히도 바로 잡았죠." 서양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것은 '아이 앰 댓'(*모르스 프리드만이 마하라지의 가르침을 영어로 번역한 책. 1975년 체타나 출판사 출판. 한국어로는 '아이 앰 댓'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됨) 책이 출판된 직후였습니다. 

 

질문자: 모리스 프리드만이 결국 니사르가다타를 자신의 구루로 받아들였나요? 크리슈나무르티를 그렇게 받아들였나요? 

 

라메쉬: 그랬겠지만, 딱히 선언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질문자: 니사르가다타께서는 방언을 쓰셨나요? 

 

라메쉬: 마라티어를 쓰셨죠. 신기하게도 그분께서 평상시 하시는 말씀은 아주 범속한데, 가르침을 전할 때 쓰시는 말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합니다. 마하라지께서 자신에게서 어떻게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그분은 거의 문맹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하라지께서는 자신과 같은 구루을 모셨던 동료들은 자신들의 구루가 하시던 말씀을 자기가 앵무새처럼 따라 하지 않는다며 자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질문자: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니사르가다타를 처음 만나게 되셨는지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라메쉬: 그러죠! 아무도 그건 묻지 않을 줄 알았네요! (웃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니사르가다타의 대화를 책으로 편집했던 진 던이 마하라지와 그분의 책 '아이 앰 댓'에 관한 기사를 '더 마운틴 패스'(The Mountain Path) 잡지 1978년 10월 호에 실었는데, 그 잡지는 라마나 마하리쉬 아시람의 공식 정기 간행물이었고 저는 그 잡지를 초창기부터 25년간 구독해왔었죠. 그 기사에서는 그 책의 많은 구절을 인용했더군요. 그래서 전 바로 두 권을 샀습니다. 주말 동안 그 책을 다 읽고 월요일 날 아침에 마하라지를 찾아 뵈었죠. 제가 그분의 작은 다락방으로 난 계단을 처음 올라갔을 때 마하라지와 그분의 개인 점원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계단을 올라가서 그분 앞에 섰을 때 그분 첫 말씀이, "자네 마지막으로 찾아왔군. 안 그런가? 여기 와서 앉게."라고 하셨죠. 저는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줄 알고 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죠. 제게 가장 인상적으로 느겼던 것은 그분이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첫 말씀에 엄청나게 감화됐죠. 이렇게 제가 니사르가다타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질문자: 마하라지께서 선생이 자신의 후계자라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나요? 

 

라메쉬: 마하라지께서는 후계자는 신경 쓰지 않으셨어요.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라고는, "일곱이나 여덟 권의 책이 나올 거네."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마하라지께서 또한 "많은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라고 하셨는데, 마하라지의 구루를(*시드하라메쉬와르 마하리지, Sri Siddharameshwar Maharaj, 1888-1936 - 옮긴이) 따르던 다른 제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죠. "그들은 내가 나의 구루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이 말하기를 바란다네. 하지만 나는 내 구루께서 하신 말씀을 앵무새처럼 되뇌지는 않네.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이지." 그분의 구루께서는 전통적인 계보를 잊고 계셨죠. 마하라지에 관해 한 가지 말한다면, 그분께서는 계보에 관해서 불필요한 관심을 전혀 두지 않으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마하라지께서는 계보에 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치고 가르침의 핵심은 등한시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자네가 대담을 시작할 때는 내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지 않을 것이네." 그때 전 제가 대담을 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죠! 

 

질문자: 그럼 그분이 어느 정도 예견하셨군요. 

 

라메쉬: 부인, 예견하는 일은 일어날 뿐이죠. 그분은 예견하는 것에 관심 없으셨어요. (31cho)

 

 

                          - 리만 편집,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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