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40)

2021. 6. 24. 22:08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참고 : 아래 내용은 이전에도 여기에 중복 발표한 적이 있는 내용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리 바가반이 보여준 자기탐구의 기법과 이제까지 경전에서 우리가 배웠던 진아 탐구의 기법 간에는 차이가 있다. 지난 오랜 세월동안 경전들은 "그대가 누구인가? 그대는 물, 생기, 마음, 지성, 에고 따위가 아니고 진아이다. 그대는 의식, 곧 진아이다." 라고 선언해 왔다. 

그러나 경전들은 "비진아인 다섯 껍질을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neti, neti)로 제거하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경전은 누가 그것을 제거하는지, 제거하는 실제적 방법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으며, 비진아를 제거하기 위한 적절한 단서를 정확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베단타를 폭넓게 공부한 사람들조차도 진지(jnana) -에고, 곧 '나는 몸이다'하는 의식의 상실-에 대한 실제적 체험을 결여하고 있다. 

이것은 경전을 공부하지만 아직 수행에 착수하지 않은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전에서 배운 것을 실천에 옮겨 보려고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진지한 구도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좌절하면서도 거듭거듭 분투하며 시도하지만, 비이원적 지(知)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성취하지 못한다.

반면에 본래적 진아의식에 영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인들은 "그 진아 체험은 지금 여기에서 늘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스리 바가반과 오로지 진아지의 체험을 얻기 위해 당신을 찾아간 제자들이 기뻐서 "아! 진아를 아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실로 가장 쉬운 것이다!"라고 외치는 까닭은, 자기탐구의 길에서는 세련되고 실천하기 쉬운 어떤 새로운 단서를 스리 바가반이 제시하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이 단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다 ! (deham naham koham? soham!) - 이것이 경전에 나오는 진아탐구의 핵심이며, 그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경전들은 다음 네 가지 수행법을 제시한다. 

1. 영원한 것과 찰나적인 것 간의 분별

2. 이 세상과 여타의 세상에서의 온갖 즐김에 대한 무욕

3. 평온 등 여섯가지 자질 (평온,절제, 물러남,인내,믿음,집중)

4. 해탈에 대한 강력한 열망

 

구도자는 영원한 것과 찰나적인 것 간의 분별을 통해 해탈이 유일하게 영원한 것임을 알게 되므로, 해탈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얻게 되고, 그렇게 해서 다른 모든 즐김에 대한 무욕을 얻은 다음에 평온 등 여섯 가지 자질을 닦는데 힘을 쏟는다. 따라서 세번 째 수행인 여섯가지 지질에서 경전은 그가 진아지를 성취할 수 있도록 그들이 줄 수 있는 모든 방편을 그에게 제공한다. 따라서 그가 이 세번째 수행에 힘을 쏟을 때는, 첫 번째, 두번 째 그리고 네번 째 수행은 이미 완성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무욕을 통해 감각기관과 행위기관을 제어하고, 헤메는 마음을 브라만 위에 고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세 번째 수행의 여섯 가지 항복 중 핵심적인 두 가지 사항이다. 

그러나 성숙했고 엄청난 열의를 가진 구도자가 실제로 행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의 주된 수행은 감각대상에 대한 욕망과 싸우면서, 그가 '브라만', 곧 절대적 실재라고 생각하는 어떤 2인칭이나 3인칭에 대해 생각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경전에 그에게 제시하는 유일한 방편은 '나는 브라만이다(aham brahmasmi)', '내가 그다(soham), '그대가 그것이다(tat tvam brahmasmi)와 같은 큰말씀들 뿐이다. 

 

그런 큰 말씀에 대한 상념관(想念觀)을 닦을 때, 그 구도자의 노력은 '이 나가 브라만이다'라는 한 가지 생각의 형태로 어떤 2인칭이나 3인칭을 향해 흐를 뿐이다. 

이 생각은 마음의 상(想)일 뿐이다. 

'나는 부라만이다'나 '내가 그것이다'라는 이러한 명상에서 그가 '나'라는 것은 마음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을 그는 그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명상하는 그 사람은 잠이 끝난 뒤에야 일어난 첫번째 생각인 반면,

그가 명상하는 브라만은 하나의 3인칭이며, 그가 일어난 뒤에야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에고 ('나는 몸이다'라는 의식)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브라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것이 2인칭이나 3인칭 중 하나를 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뿐, 다른 어떤 것을 뜻한다고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이미 존재하고 1인칭을 의미하므로, '브라만'이라는 2인칭이거나 3인칭을 의미한다고 여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면밀히 살펴보면 '내가 그다'나 '나는 브라만이다'와 같은 명상은 이처럼 2인칭이나 3인칭을 향해 분화되는 마음의 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활동인 이러한 명상들과 바가반 스리 라마나가 가르친 자기 주시, 곧 마음의 어떤 고요함 간에는 (산과 계곡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째서 그런지 살펴보자.

 

'나는 브라만이다' 명상을 수행할 때 '나는'이라는 말에 의해 일어나는 1인칭 느낌은 즉시 '브라만'이라는 단어에 의해 방해 받고 2인칭이나 3인칭으로 전환된다. 

바가반 스리 라마나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오직 이 문제를 피하기 위해, 

"'나, 나'하고 부단히 생각하기만 해도 그것이 그곳(브라만의 상태)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 라고 하였다. 

바늘에 실을 꿸때 실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으면, 바늘귀에 들어가는 한 가닥조차도 다른 한 가닥에 당겨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는 브라만이다'를 명상할 때는 '나는'이라는 말에 의해 일어나는 1인칭의 느낌 조차도 (진아안주 안에 머무를 수 있기는 커녕) '브라만'이라는 단어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어떤 2인칭 또는 3인칭의 느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구도자는 이처럼 1인칭 느낌에서 2인칭으로, 다시 2인칭에서 1인칭 느낌으로 오고가는 자기 내면의 이 미세한 마음 활동을 진아탐구로 착각한다 ! 

또 그러한 미세한 활동으로 인해 마음이 너무 기진맥진하여 가끔 쉬고 있으면 구도자는 이 마음의 고요함(마노라야)을 진아 깨달음으로 착각한다. 

 

만약 이것이 참된 진아 깨달음이라면 그가 잠에서 깨어날 때 '나는 몸이다'하는 동일시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러한 몸 동일시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명상의 끈을 다시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구도자는 잠에서 깨자마자 명상을 재개하니, 그것은 그 명상을 통해 그가 성취한 것은 잠과 같은 안식상태인 '라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가? 

꿈에서 깨어난 뒤에는 우리가 결코 그 꿈의 몸을 '나'와 동일시 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진아의식의 상태(진아깨달음)로 깨어난 진인은 '나는 브라만이다'라고 명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에고가 거짓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 우리는 항상 그것인데, 왜 계속 '우리는 그것'이라고 명상해야 하는가? 

사람이 '나는 사람이다'라고 명상하는가? 

                                            -<실재사십송, 36연>-

 

 

                                                           - 대성 번역 <스리 라마나의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