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4. 00:01ㆍ무한진인/참나 찾아가는 길목
금강경에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이라는 구절이 있다.
육조 혜능이 깨달았다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렇다면 이 應無所住(응무소주), '응당 머무는 바 없는 상태'는 어떤 것일까?
이 머무는 바 없는 마음상태는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 속으로 깊히 들어 가야 알수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속에 어떤 답도 찾지 말고 오직 물음 ????에만 머물면,
결국은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머문바 없는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그 상태가 바로 '내가 있다'는 순수한 존재앎의 상태이다. 이원화 마음을 지켜보는 주시자 상태이다.
즉 이때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머무는 바 없는 마음상태라고 볼 수 있다.
자기가 무한하게 되는 우주적 존재의식상태이다.
또 而生其心(이생기심)-그 마음을 내라,는 말은 그러한 번뇌없는 무심상태에 있으라는 말인데,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보살의 순수하고 집착없는 넓은 마음을 무위적으로 쓰라는 것이다.
즉 보살의 자비심을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유위적인 마음이 아니라, 무위적(無爲的)인 마음의 행(行)을 말한다.
따라서 <應無所住 而生其心>을 알려면 "나는 누구인가?"로 자아탐구를 깊히 해서
그 '나는 누구인가?"마저 넘어가야 한다.
거꾸로 "나는 누구인가?"자아탐구는 바로 금강경의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경지로 들어가는 방편이 된다.
간화선의 화두들도 이러한 <응무소주이생기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방편인데,
유위적이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채칙질하는 억지 수행 행위를 하기 때문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여하튼 화두 중에서 조주의 "無", '뜰앞의 짓나무' 같은 화두 뿐 아니라, 특히 '이뭣꼬?'나 '나는 무엇인가?' '부모미생전본래면목?' 같은 화두들도 직접적으로 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방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인 방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탐구법인 것 같다.
-무한진인-
[부록]
[아래 글은 옹달샘 카폐에서 어느 분이 질문한 것에 대하여 답변한 내용인데,
쓰고 보니깐,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 수행을 하시는 수행자분들에게 약간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기에 복사해서 다시 실어 봅니다. 답변 내용은 덧글에다 쓴 것인데, 무한진인 본인 답변중 자아탐구에 대한 내용만 덧글에서 복사해서 올리고, 나중에 일부 내용을 좀 더 보완하고 수정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
- 무한진인-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탐구법 수행에 대하여-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탐구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 호흡이나 만트라, 염불등으로 잠시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기본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서 내면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마음의 기본준비자세가 세워진 다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내면으로 묻습니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보통 느끼는 아는 주체로서 나타난(대상화로 인식되는) '나라는 생각 또는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대상으로 인식되는 가짜 아는 주체인 '나'(에고)입니다.
또 '누구인가?'는 미지의 상태이며, 이원적 앎으로는 모르는 것이며, 무한한 공(空)이 배면에 있습니다.
'누구인가?'는 의심하는 말뿐이고, 그 배경은 경계없는 무한 공(空) 또는 침묵입니다.
따라서 오랫 동안 탐구하다 보면 가짜 주체인 에고 '나'는 '누구인가?'의 배경인 무한공(내가 있다)에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그때에 우주적 자아상태(내가 있다는 순수존재의식상태,에고 뿌리))가 되며,
비로소 절대 진아로 들어가는 실마리를 얻거나 또는 절대진아의 문고리를 잡게되는 것입니다.
궁극에 가서는 배경인 '내가 있다' 순수존재의식도 마지막 백그라운드인 절대진아에 흡수됩니다.
탐구요령은 -
맨 처음에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은 한 번만 묻고,
계속 "누구인가?'라는 말없는 의문을 마음 속에서 ???? 품고, 끊질기게 의문의 촛점을 유지한 채 '나라는 느낌'에 꽉 붙잡고 머물러서 있으십시오. "자기가 나온 존재 뿌리 또는 근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아는 '나'라는 대상적인 느낌에 집중하여 "누구인가?하고 묻고 가만히 있으면,
기존 '나'라고 느끼던 것(에고)의 넘어 배면으로 넘어 가게 됩니다.
즉 잠깐이나마 어떤 생각도 없는 무심상태가 됩니다.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잘 안됩니다.
시간이 좀 흐르면 그 의심이 이내 사그라져서 멍청해진다든가,
쓸데없는 잡념이 떠오른다든가, 또는 어떤 마음의 반응을 기다린다든가, 생각(망상)들이 나오는데,
이것들을 극복해야 됩니다.
"나"라는 존재성의 느낌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나의 근원은 어디인가?를 찾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 입니다. 보통 어떤 이상한 동물이 불쑥 나오면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나왔냐?" 하고 의심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나는 누구냐?"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르는 어떤 동물에게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서 나왔냐?'하고 묻듯이,
처음에는 '나라는 느낌'을 향해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나왔는가?'라고 묻습니다.
"나라는 느낌'은 모든 것을 아는 배면의 '아는 주체'를 말하며,
대상적으로 알려지는 어떤 느낌이 아니고,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주체의 느낌을 말합니다.
그 아는 주체인, "나"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지, 그 내면 속의 근원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잘 이해하고 자아탐구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라는 생각"이 나오는 어두운(모르는) 뒷 배경 속으로 들어가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고 진지하게 한 번 물으면, 저절로 내면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구도자들은 그 의문이 내면으로 진입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므로, 자꾸 염불하듯 반복한다든가, 다른 생각을 한다든가하여 문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얼쩡얼쩡 대기만 합니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강렬한 의문의 일념집중을 가지고 내면으로 들어가서 아무 생각도 없는 그 상태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누구인가?' 라는 의심으로 지금 현재에 편안하고 꾸준하게 일념집중(一念集中)상태로 고요하게 머물러있기만 하십시오. 자꾸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 하면서 염불하듯 반복 반복하지 마십시오.
질문을 자꾸 반복할수록 이원화 상태와 비이원화 상태 사이에서 교대로 체바퀴 돌듯 계속 맴돌 뿐 입니다.
불교 간화선을 수십년씩이나 수행한 오래된 화두선 고참수행자들이 아무리 오십년씩 열심히 노력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화두의 의심을 강력하게 붙잡기 위해서 계속 화두를 반복 반복해서 끊임없이 되뇌이고 상기하려고 마음을 움직이며 단 한시도 고정되어 한곳으로 깊히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기 때문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 미련을 가지고 화두만 붙들고 일상생활로 회귀하지 못하고 선원에서 좌선상태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화두든 자아탐구든 단 한 번에 바로 일념으로 무심해져서 그 속으로 들어가야지, 생각이나 말(화두)을 반복하는 것은 망상만 자꾸 돌리는 헛된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처음에 딱 한 번만 명확하게 붙잡고 강력한 의심의 촛점을 마음 속에 확보한 다음에는,
더 이상 화두를 반복하여 외는 행위가 그쳐야 합니다.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반복만 하면 이원화상태에서 비이원화 상태로 왔다리 갔다리 뱅글 뱅글 체바퀴돌듯 맴돌기만 하고, 의심의 촛점이 한곳으로 깊히 파고드는 일념 집중이 안되기 때문에 내면의 중심인 비이원화 상태로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의심의 강력한 촛점을 가지고 끊기지 말고 계속 '누구인가??????'라는 일념 집중으로 가만히(무심으로) ???? 속에 머물러 있다가 보면,
의심의 촛점이 흐릿해지면서 정신이 멍청해지는 무기(혼침)상태에 빠지거나, 다른 잡생각(망념,산란)이 자꾸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이때에는 즉시 정신차려서 '알아차림'기법을 발휘하여 혼침과 무기 그 산란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라고 묻던가, 또는 '누가 생각하는가?' 또는 '누가 무기(혼침)에 빠졌나?'라고 알아차림과 함께 되물으면 곧바로 무기와 망념의 상태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면 다시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습니다
'나에게서'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그런 모든 망상들이 '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린 후에, 다시 한 번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고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지금 현재에만 말없이 머무릅니다.그냥 계속 머물기만 하면 또 무기나 혼침, 산란에 빠질수도 있으므로,
주시자로써 알아차림을 가지고 바짝 깨어 있는 채 전체적 주시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누가 아는가?" "누가 생각하는가?" "누가 보는가" "누가 탐구하는가?"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무기나 혼침, 산란상태가 올 때에 '누가 생각하는가?', "누가 혼침을 겪고 있는가?'라고 내면으로 물으면 곧바로 무심의 공(空)으로 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빨리 알아차려서 배면(背面)의 아는 자에게 주의를 되돌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 생각하는가?"에서 '누구'는 1인칭 주체이므로 무(無) 또는 무한한 공(空)이며, '생각하다'는 2인칭 술어이므로, 술어인 '생각하다'가 1인칭 주어인 무한 공(空,침묵) 속으로 흡수되어 저절로 무념상태가 옵니다.
이것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와 같은 것인데, 자아탐구를 하다보면 저절로 이 회광반조가 굳건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이것은 자아탐구를 오래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空)이나 무(無), 무심(無心)상태를 마음으로 상상하거나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생각하면 바로 이원화 지옥으로 타락해 버립니다.
만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가 잘 안되면,
"내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나의 본래모습(참나)는 어떻했나?"하고 내면 깊히 탐구해 보십시오.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몸과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아무 것도 없는 無상태에 머물러서 계속 탐구(의문?)하면서 그 탐구하는 나의 배면(뒷편,보는자) 쪽으로 주의를 향하면 (회광반조 하면) 마음이 조용해질 때가 옵니다.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십시오.
정신수행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아무 생각도 없는 고요한 상태(無心)"입니다.
자아탐구나 명상 중에에서 그 결과를 시선이나 느낌으로 무엇이 일어나나 자꾸 기다리지 마십시오.
의식적이든 시각적이든 느낌이든 어떤 결과를 기다리면 아무 소용도 없고 이원적인 망상과 잡념과 산만만 생기면서 이원적인 대상화 마음 상태로 타락됩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말고, 무조건 무소뿔처럼 깊은 내면으로만 주의를 주시기 바랍니다.
자아탐구는 오직 대상화된 상에서 벗어나서 주체인 참나 (비이원적인 상태)에 안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만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 (모름)속에서는 주의가 눈 뒤의 뒤퉁수 쪽으로, 또는 가슴 깊은 곳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회광반조)향하게 됩니다. 화두선을 하든, 염불선을 하든, 자아탐구수행을 하든, 항상 눈 뒤편의 뒤퉁수쪽, 배면의 무한 배경,혹은 가슴 깊은 곳, 혹은 단전 아래 에 대해 자연스럽게 주의가 향하게 됩니다.
그것이 내면으로 향하는 것(회광반조)과 같은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밑에서 어떤 기운이 올라와 전체를 지배하면서 육체감각이 가벼워지고 생각이 없는 고요한 상태가 안정되면 그 자리에 그냥 편안히 머무십시오.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도 말고, 느끼려고 하지도 말고,억지로 조용히 있으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편안하게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런 상태에 오랫동안 안정되게 머물게 되면 점차로 평안이 자리잡게 되고, 그 상태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저절로 깨어있는 잠과 같은 깊은 삼매상태(또는 망각상태 같은 어듬) 속에 잠기게 됩니다. 얼마간의 긴 삼매상태를 겪으면서 무심하게 그냥 조용히 지내다가 보면, 어느 계기로 문득 전체적인 앎(무분별지)이 새벽처럼 밝아오면서 이 세상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들어설 수가 있게 됩니다.
아무쪼록. 힘내고 인내심을 가지고 정진하십시오.
자기 현재 신세 타령은 하지 마시고 깊은 내면 속에 꾸준하게 편안하게 머무세여 ^^
(추신 : 이 답변내용은 질문자의 개인적 질문 내용에 적절하게 맞추어서 답변한 특정 내용이므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리니, 너무 진지하게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자기가 공부하는데,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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