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7. 22:13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질문자 : 벨로르에 있을 때는 불행하기만 했는데, 선생님 앞에 앉아 있는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평온한지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쉬 : 지금 그대가 이곳에서 느끼는 것을 지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곳을 떠나면 그대는 다시 불행하다고 말하리라.
그러므로 지금 그대가 느끼고 있는 행복감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 행복감은 다른 곳에서 느꼈던 불행감과 뒤섞여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지복을 찾지 못한다.
진정한 지복이라면 영원해야 한다.
영원한 것은 그대의 존재 뿐이다.
참자아가 되라. 그것이 지복이다.
그대는 항상 지복상태에 있다.
참자아는 항상 깨달음 상태에 있다.
이미 그리고 항상 깨달음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달리 깨달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그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존재가 순수의식이며 참자아이다.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질문조차 할 수 없다.
그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대의 존재가 바로 참자아이며, 참자아의 주인공은 이미 깨달음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깨닫고자 하는 노력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그릇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의 참자아는 항상 깨달음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깨달음이라는 것은 없다.
질문자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는 데에 몇 년은 걸리겠군요.
마하리쉬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시간 관념은 그대의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
참자아 주인공에게는 시간 관념이 없다. 시간은 에고가 나타난 다음에 나타나는 하나의 관념이다.
그러나 그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참자아이다.
그대의 참존재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도 존재한다.
몇 년이 지나면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은, 지금은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설령 몇 년 뒤에 깨닫는다 해도 지금과 같은 깨달음이 없는 순간이 앞으로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
시간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깨달음은 영원한 깨달음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깨달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진실로 변화될 수 없는 영원한 상태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질문자 : 그러나 저는 인생을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쉬 : 그대는 이미 참자아이다.
시간과 공간은 참자아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대가 바라보는 주위의 모든 것은 그대 안에 있다.
이와 관련된 비유가 있다.
목에 아름다운 보석 목걸이를 걸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어느 날 바쁜 일로 서두르다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목걸이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졌으나 목걸이는 나오지 않았다.
친구와 이웃들에게 자기 목걸이를 못 봤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그 또한 허사였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네 목에 걸려 있는게 찾고 있는 목걸이 아니냐?'하고 되물었다.
그 여자는 그제야 늘 자기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찾았다.
그리고 매우 기뻐했다.
후에 사람들이 목걸이를 찾았느냐고 묻자,
그 여자는 목걸이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는 듯이,
'예, 찾았어요.'하고 대답했다.
진짜 목걸이를 잃어버린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목걸이는 늘 그 여자의 목에 걸려 있었다.
실제로 잃어버린 게 아니고, 잊어버렸다고 느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이 늘 참자아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참자아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질문자 :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어떤 목표와 그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있다는 생각이 잘못이다.
우리 자신이 목표이고 평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가 아니라는 관념만 극복하면 된다.
질문자 : 모든 경전에는, 스승의 인도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하리쉬 : 스승들은 결국 내가 지금 말하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스승은 그대가 이미 갖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그대에게 줄 수 없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얻을 수는 없다.
만약 새롭게 얻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된다.
오는 것은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만이 영원히 존재한다.
스승은 그대가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것을 그대에게 주지 못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생각을 버려라.
그대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관념만 버리면 된다.
우리는 항상 참자아 주인공이다.
다만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주인공을 찾아 이리저리 빙빙돈다.
그러다가 진정한 앎의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자신이 곧 참자아 주인공임을 깨닫는다.
일단 깨달음에 도달하면 이 세상에 섞여 살지라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마치 신발을 신으면 돌밭이나 가시밭길을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튼튼한 신발을 신은 사람은 앞에 산이 나타날지라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깨달음의 빛을 얻은 사람도 그와 같다.
그는 어떠한 일을 만나도 자연스럽다.
그 자신의 참자아 주인공과 분리되어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질문자 : 이 세상에 대한 환상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라야 본래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세상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마음이 없어지면 온 세상이 다 없어진다.
마음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이다. 마음이 사라지면 본래 상태는 저절로 드러난다.
그러면 항상 참자아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을 '나'라고 선언하는 상태가 된다.
참자아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이 모든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 안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뭘 찾겠다는 말인가?
고대의 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지혜(Jnana)의 빛을 얻은 사람은 온 세상이 브라흐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데이비드 갓맨 편집, 정창영 옮김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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