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식이 말하다(34)

2021. 2. 12. 20:10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질문자: 여러 작용이 여러 다른 유기체에 의해서 실행되는데 여기서 연속성을 찾으라고 하면 바로 원인과 결과군요? 

 

라메쉬: 바로 그렇죠! 

 

질문자: 그럼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참전체성이 새로운 구조체를 나타내고 그것을 통해서 기능하는 일이 매번 일어난다는 말이군요? 

 

라메쉬: 그렇죠! 바로 그말이예요. 

 

질문자: 부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인가요? 

 

라메쉬: 그게 바로 부활이예요. 카르마도 있고 부활도 있지만 특정한 개체가 부활하는 게 아니예요. 부활(復活)이라는 단어에서 그 "부(復-다시 돌아오는)"라는 글자 때문에 오해가 생기죠. 새로운 탄생, 새로운 성격, 새로운 유기체들은 있지만 부활은 없어요. 부활이라는 말이 카르마와 한데 얽히면서 온갖 혼동을 다 일으키죠. 

 

질문자: '절대'는 결코 태어난 적도 없고 죽지도 않는군요? 

 

라메쉬: 정확한 말이예요. 계속해서 작용하지요. 

 

질문자: 교훈이나 얻을 목적으로 어디서 환생할지를 선택하는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마치 바보같아 보이네요. 

 

라메쉬: 개똥같은 소리죠! (웃음) 무엇보다도 "영혼"이라는 것. 보시면, 마음은 개념을 만들어 내고 싶어해요. 마음은 몸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마음, 즉 "나"는 영원히 살고싶어해요. 이 몸이 영원하지 못하니까 이 몸이 아니면 어떤 다른 몸에서라도 계속 살아가고 싶어해요. 그래서 마음은 영혼이 몸에서 몸으로 옮겨다닌다는 개념을 만들어내는데, 이건 마치 참의식이 매번 일어나는 생에서 벌이나 주고 상이나 주면서 "영혼들"을 다루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들리죠. 

 

질문자: 어떤 사람이 전생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전생에 구루였다든지 갑옷을 입은 기사나 염소 따위였다고 말하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요? 

 

라메쉬: 핵심은 기억이예요. 그럼요. 전생의 기억. 왜 안됩니까? 과거의 삶이 있었다면 기억도 과거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단지 자신이 "어떤 하나의" 전생을 기억한다고 해서 왜 그게 "자신의" 전생입니까? 

 

질문자: 그럼 기억하는 전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게 실수네요? 

 

라메쉬: 그럼요! 전생, 확실히 있어요. 기억이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란 법은 없죠. 하지만 왜 "자신의" 전생입니까? 단지 자신이 기억하기 때문에? 

 

질문자: 마음의 장난이군요? 

 

라메쉬: 그럼요. 마음의 장난이죠. 

 

질문자: 하지만 어젯밤에 라마나 마하라쉬에 관해서 말씀하시면서 그분은 깨달을 준비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그렇게까지 준비가 되려면 그분이 거쳐온 전생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라메쉬: 아니죠. 전생들이 있긴 있었죠. 그런 궁극적 유기체를 향해서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거쳐온 전생들이 분명이 있었죠. 하지만 "그분의" 생들은 아니죠. 

 

질문자: 티베트 불교도들은 영혼 따위를 믿는 것 같아요. 새로운 라마를 뽑을 때... 

 

라메쉬: 그럼요. 보시면, 그들은 본디 이런 영적 진화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유기체가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고도로 발달된 마음이 전생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이 미래로 뛰어 넘어가 보지 못할 이유도 없는 거죠. 그러니 미래의 라마가 될 유기체를 보려고 마음에 비춰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어요. 하지만 같은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고 같은 라마가 새로운 몸-마음을 얻어서 오는 것도 아니예요. 그럼 이제, 부처가 환생에 관해서 한 말을 들어봅시다. 이보다 더 분명한 말은 없어요. 부처는 "자아가 없으므로 자아의 윤회도 없다."라고 말했어요. 이제, "자아"를 "영혼"으로 바꾸어 읽어 봅시다. "영혼이 없으므로 영혼의 윤회도 없다. 하지만 행위는 일어나고 행위의 결과는 따라온다. 행해지는 행위는 있으되, 행위자는 없다. 윤회하는 개체란 없고 옮겨다니는 자아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 소리 난 음성이 있고 음성의 메아리가 돌아온다." 그러니 불교에서 가장 핵심으로 여기는 환생에 관해서 부처는 여기서 환생하는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하지만 이후에 오는 승려와 성직자들이 이 말을 듣지 않아요. 마치 많은 기독교 종교 해설자들이 그리스도 본연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지요. 

 

질문자: 저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데요. 이 사람들은 몸이 있던 전생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생들 사이에서 육체가 없었을 때의 경험조차도 기억을 해요. 그럼 이건 뭘까요? 몸-마음 유기체는 아니죠? 

 

라메쉬: 몸-마음 유기체는 아니예요. 일어나는 일은 정확히 이렇습니다. 어떤 행동들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반응이 있는 겁니다. 채워지지 않은 야망이나 일어난 어떤 행동에 대한 죄책감들일 수도 있어요. 이 모두가 참의식이라는 저수지로 들어가고 거기서 새롭게 창조되는 유기체들에 배분이 되요. 이런 식으로 새로운 유기체가 만들어지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유기체들을 통해서 앞으로의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어요. 행위들은 일어나고 있지만 행위자란 존재하지 않아요. 그리고 부처가 이점을 아주 명확하게 말해요. 

 

질문자: 말하자면, 행위들의 묶음이라는 말씀이네요. 

 

라메쉬: 그래요. 하지만 같은 묶음을 구성하던 요소들이 꼭 같이 옮겨지는 것은 아니예요. 이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예요. 모든 묶음이 한 데 모인 뒤에 구성요소들이 나누어지지만, 하나의 "영혼"이라는 묶음처럼 같은 묶음의 구성요소들이 하나의 묶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질문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현생에서 과거에 육체를 가진 삶과 삶, 그 사이에서 형상이 없이 하나의 묶음으로 있던 때를 기억하는데요. 

 

라메쉬: 어떤 사람들은 그렇죠. 

 

질문자: 그러고 보면 그 사람들도 한 데 모여서 나누어지는 때는 기억을 못하는군요. 하나의 묶음으로 있었을 때만 기억하지만... 

 

라메쉬: 바로 그말이예요. 하나의 묶음으로 있던 때만 기억할 겁니다. 

 

질문자: 자기 실수로 다시 분리된 개체가 되어버리는 물리 영역에 대비되는 아스트랄 영역이 존재하나요? 

 

라메쉬: 물질계만큼이나 아스트랄계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지만, 모두가 참의식 안에 있어요. 있는 모두가 참의식입니다. 그리고 참의식 안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지는 정말 상대적인 문제죠. 

 

질문자: 그러면 그런 세계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라메쉬: 그런 세계들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만큼이나 존재해요. 라마나 마하리쉬께 누가 이런 질문을 했지요. 힌두 신화에 나오는 신과 여신들이 실재하는지 안하는지를 물었어요. 라마나 마하리쉬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들도 당신만큼이나 실재합니다." (웃음) 

 

질문자: 저는 심리학자인데, 수년을 아주 극심한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전생에 관련된 일을 많이 했어요. 가수면 상태에서 사람들이 과거의 그 경험으로 돌아가서 다시 체험하고 나면 그런 공포증이 사라져요. 학계에서도 그렇고 저도 사람들이 가수면 상태에서 실제로 과거의 경험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은 그저 다른 누군가의 경험으로 돌아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라메쉬: 그럼요! 거의 그렇죠. 

 

질문자: 그리고 그런 경험의 기억이 그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군요? 

 

라메쉬: 그럼요. 그런데 그런 기억을 자기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 은총 -- 

 

질문자: 항복에서, 조건 없는 항복에서, 자신을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여전이 있는데 어떻게 조건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라메쉬: 맞아요. 그것은 진정한 항복이 아니죠. 

 

질문자: 아무리 진짜처럼 느껴지더라도 여전히 조건적이군요? 그 순간 참의식이 그냥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군요? 

 

라메쉬: 그렇죠. 

 

질문자: 은총이 일어나기로 되어있다면 일어나겠군요? 저와 다른 한 사람이 똑 같은 일을 했어도 은총이 둘 중 한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도 있겠군요? 

 

라메쉬: 누구에게는 일어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은총의 일이 꼭 영적인 일일 필요는 없어요. 한 사람이 제게 자기는 행글라이더 타는 것을 아주 열정적으로 좋아했다고 말했어요. 하루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잘 날아가고 있다가 돌연 행글라이더가 추락하면서 땅에 곤두박질 치려는 순간 "끝났구나."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끝나지 않았어요. 별안간 자기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더랍니다. 무슨 일인고 하니, 땅에 떨어지기 바로 몇 미터 전에 행글라이더가 전기 줄 사이로 부러지면서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었어요. 이 사람은 감전되지도 않았고 몸에 부러진 곳도 없었고 그냥 멀쩡하게 자기 두 다리로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죠! 이것이 은총이구나 하고 문득 깨우쳤다고 말하더군요.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그 유기체에게 운명의 마지막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엉. 그렇지만 이 사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은총이죠. 그리고 이건 사실이예요. 이렇게 살아남은 이 사람이 습관성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이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19년 동안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다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뜻밖에도 술을 마셔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알코올 중독이, 술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사라졌다더군요! 이 일이 두 번째로 일어난 은총이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이 은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어요. 세 번째로 일어난 은총은 1987년, 제가 처음으로 연 공개 대담에 우연히 참가하게 된 일이었다고 말하더군요.(20-1,jung)

 

                      - 리쿼만 편집, 김영진(관음)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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