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 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 (28)

2021. 2. 11. 22:27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어느 날 저녁 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어스름이 막 깔리기 시작한 상태에서 소년은 가지와 잎들이 잘려나간 나무 둥치를 하나 보았다.

소년은 겁에 질려 외쳤다. "아버지! 저기 보세요. 유령이예요!"

아버지는 그것이 나무 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년을 이렇게 안심시켰다.

"아, 저 유령! 저건 너에게 해도 끼칠 수 없어. 내가 여기 있고 저걸 살펴 볼 테니 안심해라!"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소년을 다른 데로 데려갔다. 

용기를 북돋우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소년은, 그 의미가 " 아버지는 저 유령보다 힘이 세니까 그것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이런 결론은 저 빤디뜨들이 요가 경전과 베단타 경전들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 날 저녁, 자기 선생님과 함께 같은 길로 산책을 가던 소년이 외쳤다. 

"선생님! 보세요! 저기 유령이 있어요. 우리가 어제도 보았어요" 

선생님은 소년의 무지를 딱하게 여기며 말했다.

"저건 유령이 아니란다" 

그러나 소년은 우겼다. 

"아니에요, 선생님, 아버지도 어제 보시고는, 아버지가 그것을 살펴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저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것이 전혀 유령이 아니라고 하시네요." 

선생님이 그렇게 쉽게 양보하겠는가?

그는 말했다 " 가까이 가서 직접 살펴보아라. 내가 플래시를 비춰주마. 만약 유령이라면 나도 살펴보마."

 

경전들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같다. 

아버지도 그것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전들을 베푼 위대한 진인들도 에고, 몸 혹은 세계같은 것은 어느 것도 아예 생겨난 적이 없다는 절대적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때 너무 겁을 먹은 상태여서 더 자세히 살펴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자신도 아들이 상상하는 가짜 유령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다. 

그와 같이 말하기는 했으나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의 공포심을 얼른 덜어주기 위해 "저 유령은 너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실로 진실이었다 !

그러나 다음 날 선생님이 소년에게 한 말은 절대적 진실이었다. 

그것이 유령이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은 아버지의 말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실 유령이 소년에게 아무 해도 끼칠 수 없다고 한 아버지의 말이 목적한 바를 더 뒷받침해주지 않는가? 

 

결국 그것이 나무 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소년이 직접 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선생님의 말은 아버지의 목적을 성취시켜 주면서 아버지의 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지 않는가? 

만약 소년이 이렇게 이해하지 않고 '선생님이 아버지를 비난했다'거나 '아버지의 말씀은 순전히 거짓밀이었다'고 결론 짓는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스리 바가반은 경전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경전이 거짓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경전들도 비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독자가 스리 바가반에 대해 이런 그릇된 결론에 이른다면, 그는 이 이야기의 소년만큼이나 잘못된 셈이 될 것이다.  

 

둘째로, 타밀어로 된 표준적인 비이원론적 저작인 <해탈정수>(제1편, 제103-104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진인에게는 미래생에 열매를 맺을 누적된 과거업의 열매(누적업)가 지(知)의 불에 의해 타 버린다. 

그가 금생에 한 행위들의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미래업)는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과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생각,말,행위를 통해 그에게 이로움을 주거나 해로움을 주는 사람들)이 각기 가져가서 없어진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세 번째 업, 곧 과거의 행위 중 현생에 열매를 맺는 것(발현업)만 그의 몸이 존속하는 동안 그가 경험하게 되고, 그의 몸이 죽으면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스리 바가반은 이렇게 판정한다. 

 

누적업(累積業)과 미래업(未來業)은 진인에게 붙지 않지만 발현업(發現業)은 남는다고 말하는 것은, 남들의 질문에 대한 (피상적인) 답변일 뿐이네. 남편이 죽으면 과부가 되지 않는 아내들이 없듯이, 행위자(에고)가 죽으면 세 가지 업 모두 소멸된다네. 이와같이 알아야 하네!   -  <실제사십송 -보유, 33연>

 

​스리 바가반은 진인에게 발현업이 남는다는 지(知) 경전의 말은 "남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스리 바가반은 누구를 ;남들'이라고 지칭하는가? 

"진지(jnana) 그 자체가 진인(jnani)이며, 그는 인간 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인을 몸을 가진 사람으로 - 하나의 몸 형상으로, 즉 한 개인으로 - 보는 무지한 사람들 (위 이야기의 소년과 같이 미혹의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 것일 뿐이다 ! 

 

그런 사람들은 "진인은 어떻게 걷는가, 진인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진인은 어떻게 일하는가?" 등등을 거둡 거듭 물을 것이다. 진인이 '나는 몸이다.'의 동일시가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도데체 어떻게 가능한지는,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그 무엇이다. 

그래서 스리 바가반은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에게는 그런 답변 밖에 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 용기를 가지고 당신을 찾아온 성숙한 구도자들에게는 (왜냐하면 그들만이 참으로 당신의 제자들이므로), 스리 바가반이 위연의 후반부에서 "남편이 죽으면 과부가 되지 않는 아내들이 없듯이, 행위자가 죽으면 세 가지 업 모두 소멸된다네. 이와 같이 알아야 하네!" 라고 하여, 아무 것도 숨김 없이 진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아내 셋인 어떤 사람이 죽으면 세 아내 모두 과부가 될 것이고, 어느 한 사람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행위를 한 자(행위자 의식)가 참 된 지(知) 안에서 죽는 순간 세 가지 업의 열매가 모두 끝이 난다. 왜냐하면 그것을 경험하는 자(경험자 의식)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리 바가반이 <해탈정수>를 비판했거나 그것과 모순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스리 바가반의 말씀은 확실히 비난이 아니다. 

왜냐하면 위 연의 전반부에서 당신은 <해탈정수>에서 그렇게 말한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성 옮김 <스리 라마나의 길>-

 

 

 

 

 

설명절 연휴기간, 

편안하고 여유로운 휴일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도 역시 아무런 병고 없이 건강하시고 

만사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대각(大覺)의 무량한 연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2021. 2,11  무한진인 드림.-

 

 

 

              뚜벅 ~ 뚜벅 ~ 뚜벅 ~   

              나는야 ~ 

              오늘도  그냥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