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5. 21:04ㆍ성인들 가르침/라메쉬 발세카
-- 참전체성의 비개인적 작용 --
질문자: 라메쉬 선생님, 현상세계에서 참의식은 스스로를 "나"라는 이름표가 붙은 구조체와 동일시합니다.
라메쉬: 그렇죠.
질문자: 인생의 과정은 개인적으로 진행됩니다.
라메쉬: 그렇죠.
질문자: 탈정체성이 일어나면서 동일시된 의식은 삶의 과정이 비개인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우칩니다.
라메쉬: 그렇죠.
질문자: 그럼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참의식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택이군요.
라메쉬: 그럼요. 초콜릿 칩 쿠키 한 상자를 다 먹겠다고 참 의식이 선택할 수도 있을 테지만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겠죠. 어떤 음식을 먹겠다고 선택하거나 명상을 하겠다고 선택하면서 마음-몸 구조체가 기분 좋게 느낄 수도 있어요.
질문자: 관찰자가 비개인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듯이 과정을 비개인적으로 접근하면 참의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선택이 이것을 먹겠다는 것이든지, 여기 앉아있겠다는 것이든지, 아니면 명상을 하겠다는 것이든지 간에, 무엇을 하든지 괜찮군요. 하지만 다른 식으로 접근한다면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군요.
라메쉬: 보시면, 무슨 행동이 일어나든지, 아이스크림을 먹든지, 명상을 하든지 간에 그 순간에는 다르게 행동할 수가 없어요.
질문자: 마음-몸 구조체가 계속 명상하든지, 명상하지 않든지, 수련회에 가든지, 수련회에 가지 않든지 정말로 문제가 안되는군요.
라메쉬: 물론 그렇죠.
질문자: 제게 초콜릿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하지만 초콜릿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갈등이 생겨요.
라메쉬: 그렇죠. 그런데 일어날 일은 정확히 일어나지요.
질문자: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려요.
라메쉬: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초콜릿을 먹지 않겠다고, 자신이 결정한다고 생각하면서, 결정하면 건강해지겠지요. 그렇지 않고 당신이 건강해질 운명이 아니라면 초콜릿을 먹겠다는 결정을 내릴 겁니다.
질문자: 그럼 제가 빠져 나갈 길이 없군요.
라메쉬: 그것이 요점이지요. 꼼짝 못해요. 이렇게 얘기해보죠. 사람들은 "내가 투자를 잘못해서 돈을 잃었어."라고 말해요. 어떤 사람은 "내가 투자를 잘해서 수익을 냈어."라고 말하지요. 제 말은, 당신이 돈을 잃어버리기로 되어 있다면 좋지 않는 투자처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당신이 돈을 벌기로 되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어오고 그 생각 때문에 당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투자를 하게 될 거예요.
질문자: 제 선택이 아니군요.
라메쉬: 당신 선택이 아니죠. 당신은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게끔 되어 있는 겁니다. 우스운 상황이죠.
질문자: 그게 문제군요.
라메쉬: 문제지요. 더 나아가서, 당신은 탈정체성의 과정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기로 되어 있어요.
질문자: 발세카르 선생님, "누가 알고자 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마치 다른 개념들을 독살해 버리는 것과 같지 않나요? 이렇게 묻는 것이 마음을 완전히 고요한 상태로 이끌어주지 않나요?
라메쉬: 아주 옳은 말이예요.
질문자: 제가 내가 누구인지 물을 때면 원을 한 바퀴 완전히 돌아서 오기 때문입니다.
라메쉬: 그게 요점이예요. 정확히 그래요.
질문자: 그 순환고리에서 빠져 나갈 수가 없군요. 거기에 완전히 갇혀버리네요.
라메쉬: 그럼요. 자신의 정신을 내려치는 몽둥이죠.
질문자: 그런데도 가끔 "누구"라고 물을 때면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저를 참근원으로 데려다 주네요.
라메쉬: 참으로 멋진 표현입니다. 그게 그렇지요.
질문자: 그럼, 이것이 핵심...
라메쉬: 그것이 핵심이죠! 그것이 바로 핵심이예요.
질문자: 하지만 이런 물음은 특정한 방식으로 물어야하지 않나요?
라메쉬: 이런 물음은 정확히 묻기로 예정된 그 방식대로 물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시간에 "잘못된" 방식으로 묻기로 되어 있다면, 그 "잘못된" 방식으로 묻게 될 겁니다.
질문자: 정말로 예정된 숙명이군요? 라메쉬: 물론이지요.
질문자: 누구에 의해서요?
라메쉬: 누구에 의해서라? (웃음) 여기에 어떤 식으로 "누구"와 "무엇"과 "어떻게"가 일어나는지 한 번 봐요!
질문자: 그럼 이 몸-마음 구조체를 통해서 기능하는 오래된 비개인적 과정이 있군요.
라메쉬: 물론이죠. 그리고 그 진화의 과정에서 성취될 것이 있다면 이 몸-마음 구조체를 통해서 성취가 될 겁니다. 더도 덜도 없어요.
질문자: 그럼 이 "내"가 다른 누군가의 소유물을 다루고 있군요.
라메쉬: 그럼요. 물론 그렇지요. 그리고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문제와 다른 누군가의 책임을 떠 맡고 있지요. 다른 누군가의 죄를, 다른 누군가의 책임을 왜 떠맡습니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질문자: 그 말씀 속에 고유의 아름다움이, 숭고함이 있군요. 눈물이 흐르겠군요. 행복이 있군요.
라메쉬: 물론입니다. 말했듯이 이런 행복은 다름이 아니라 받아들임입니다. 원한다면 항복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진정으로 받아들임이지요.
질문자: 제 마음은 "그 눈물은 어디에서 오고, 그 웃음은 어디에서 오는가?"라고 묻네요. "어디에서"라고 묻는 이런 선입견을 놓아 버릴 수가 있다면 참으로 자유로울 텐데요.
라메쉬: 그 말을 수동태로 해보면 정확해질 겁니다.
질문자: "놓아져 진다면" 이렇게요?
라메쉬: 그래요. "내가 그런 선입견을 안 가지고 있다면"이라고 하면 맞지 않아요.
질문자: 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개인의 책임이 되네요.
라메쉬: 그럼요.
질문자: 근원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면 자유가 있겠군요.
라메쉬: 물론이죠! 그리고 그런 상황은 오직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정확한 몸-마음 구조체에서만 일어날 수 있어요.
질문자: 그럼 그때까지 저희는 늘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물어야...
라메쉬: 그렇죠. 그때까지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질문자: 왜 모두들 깨달음을 쫓을까요? 공연한 야단법석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에 도달해도 별것 없어 보여요. 깨달음이 섹스 다음으로 제가 아는 것들 중에 제일 과대 평가된 것 같군요
라메쉬: 그렇죠. 섹스나 깨달음 모두 별것 아닙니다. 제가 섹스와 깨달음만 예를 들었지만, 뭐든지 마찮가지입니다. 왜 별것으로 만듭니까? 삶과 생활 전체가 하나의 흐름인데 우리가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흐름을 따라가면 삶은 아주 단순해질 수 있어요. 우리가 현재 순간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삶과 싸우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요.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어해요. 우리는 지금 자기가 가진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원해요.
질문자: "고요한 작은 음성"(성경에서 인용된 말로써, 내면에서 들리는 신의 음성을 뜻한다. - 옮긴이)에 관해서 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메쉬: 그러죠. 히틀러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할지 알려준 그 "고요한 작은 음성"에 관해서 기록을 남겼어요. 히틀러는 진정으로 자기가 위대한 독일 국가를 건설하라고 신이 지상으로 보낸 신의 사자라고 생각했어요. 작고 고요한 음성은 왜곡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에게서 올바르게 등을 돌리지 않고서 신 또는 참실재를 향하게 되면 이러한 왜곡이 일어나지요. 이렇게 되면 고요한 작은 음성은 소름 끼치게 시끄러운 소음으로 변하지요.
질문자: 그 음성이 맞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죠?
라메쉬: 모르죠! 히틀러를 통해서 일어나야만 했던 행동들은 꼭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하나의 개체로서 히틀러는 일어난 그 행동들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히틀러는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그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쓰인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금방 물었듯이, 그 음성이 맞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자기 기만도 그때 일어난 참전체성 작용의 일부예요. 사탄이 조장하는 게 아니예요. 있는 모두가 참의식입니다. 있는 모두가 신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일어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신을 생각할 때 악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선한 것만을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왜 히틀러 같은 인물이 나타나야만 했는가? 왜 유사이래 종교 박해가 있어야만 했는가?"라고 의문을 던져요. 답은 "안될 이유는 뭔가?"입니다. 그 모든 일이 다 참전체성 작용의 일부로 일어났어요. 참전체성은 좋고 나쁜지를 따지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야 해요.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해지지요. 이런 받아들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은총 또는 그 어떤 이름이 됐든지 이것이 있으면서 이런 받아들임 또는 항복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때까지는 불행하기로 되어있는 운명이지요. 작년 6월에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한 사람이 뭄바이로 저를 찾아왔어요. 이 사람은 인도를 여행하기에 가장 나쁜 달인 3월과 4월, 5월을 거쳐서 인도를 여행하고 있었어요. 인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면서 귀중한 무언가를 찾기를 기대했지만 찾은 것이라고는 사원에 기거하면서 경전이나 앵무새처럼 되뇌는 사람들과 돈을 달라고 손이나 벌리는 욕심 많은 성직자들뿐이었다고 말하더군요. 무척이나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20분 동안 열변을 토했어요. 제가 시원한 물 한 병과 유리 컵을 갖다 주었더니 단숨에 꿀꺽 다 마셔버려서 한 병을 더 갖다 주었어요. 이 사람이 영적으로나 말 그대로 침착해졌을 때 "제게 뭔가 해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묻더군요. 제가 말했죠. "자네가 기회를 주면 그러지!" 그제서야 조용해지더군요. 이 사람 말이, 자기는 딸이 한 명있고 잘 자리잡은 성공한 기술자였다더군요. 하루는 이미 돈은 충분히 있는데 무엇을 위해 돈을 계속 벌고 있는지 의아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자기 사업을 팔고 이런 영적인 주제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어떤 무엇에 이끌려서 인도로 오게 되었어요. 저를 찾아오기 직전에 라마나 마하리쉬의 사원에 들렀고 거기 있는 동안 어떤 사람에게 이런 자신의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그 사람이 제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어서 전화를 걸고 저를 찾아오게 된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질문 하나를 할테니, 답을 생각해보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 당신이 가진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죠. 그 사람이 "정말 입니까?"라고 물었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잘 살던 한 기술자를 이렇게 비참한 찾는 이로 변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기 일을 포기하고 찾는 이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어떤 무언가가 당신을 찾는 이로 변하게 했습니까?" 저희는 한동안 이 질문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제가 말했어요. "만일 어떤 힘이 당신을 찾는 이로 변하게 했다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책임지는 것도 그 힘에게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왜 그렇게 치열합니까? 왜 느닷없이 그렇게 못견디게 갈구할까요?" (16jung)
- 리쿼만 편집, 김영진 번역<라메쉬 발세카와의 대담, 참의식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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